'메이드 인 코리아' 만든 우민호 감독이 '실제 역사'를 결국 안 바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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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큰 줄기는 지키되, 창작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를 연출한 우민호 감독이 역사극에서 창작적 상상력을 활용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의 큰 줄기는 바꾸지 않아야 한다는 자신의 연출 기준을 밝혔다.

우민호 감독은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디어오늘 등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와 역사극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최근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싸고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의 경계를 놓고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다만 우 감독은 ‘암살자(들)’을 아직 보지 못했다며 해당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하지 않았다.

우 감독은 역사극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으로 역사적 사실의 큰 줄기를 꼽았다. 그는 “저의 경우 역사의 큰 줄기는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큰 역사의 줄기에 다른 가상의 인물을 집어넣을 수는 있다. 그건 영화적인 상상력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역사적인 큰 팩트는 건드리면 안 된다고 보는 사람 중 하나”라고 말했다.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장면 / 유튜브 '지무비 : G Movie'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장면 / 유튜브 '지무비 : G Movie'

자신이 연출한 영화 ‘하얼빈’을 예로 들기도 했다. 우 감독은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는데 사실은 안중근이 아니라 제3의 인물이 있었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게 되게 어렵다. 잘 써야 한다. 잘못 쓰면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예민한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작품일수록 창작자가 더 신중해야 한다고 봤다. 작품을 여러 편 만들었다고 해서 역사극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했다. 오히려 작품을 만들수록 역사와 허구를 구분해 다루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려움이 커진다고 했다.

우 감독의 이런 기준은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의 결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적용됐다. 시즌2는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을 배경으로 중앙정보부를 통해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백기태가 새로운 군부 세력의 등장과 함께 위기를 맞는 과정을 그린다.

마지막 회에서는 백기태가 총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생사에 대한 궁금증이 이어졌다. 우 감독은 당초 대본에서는 백기태가 죽는 설정이었지만 촬영을 진행하면서 캐릭터를 완전히 떠나보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우민호 감독 / 뉴스1
우민호 감독 / 뉴스1

그는 백기태가 총소리와 함께 죽은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결말을 선택했다며 “다시 백기태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나타나는 것이 제가 생각한 결말이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에 들린 총성 역시 백기태 개인의 행동을 의미하기보다 당시 시대를 상징하는 장치였다고 설명했다.

우 감독은 백기태가 새로운 권력자인 황대식을 이기는 결말도 고민했다고 밝혔다. 황대식은 실제 역사 속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그러나 백기태가 황대식을 물리치는 결말을 선택하면 실제 역사와 크게 달라진다는 점 때문에 해당 설정을 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저도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으로서 속 시원하게 백기태가 황대식을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며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역사를 크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0·26 사건 이후 중앙정보부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보안사가 부상한 실제 역사적 흐름을 고려하면 중앙정보부를 대표하는 백기태 역시 사라지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우 감독은 “백기태가 황대식을 죽이고 끝나는 것은 실제 역사에서는 전혀 없었던 일”이라며 “그런 결말을 원한다면 아예 그 사건을 가져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건을 작품의 배경으로 활용하면서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결과를 임의로 바꾸는 데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는 자신의 기준을 다시 강조한 셈이다.

시즌2 제작 과정에는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비상계엄을 직접 경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우 감독은 시즌1 촬영 당시 12·3 비상계엄이 발생했고, 당시 경험이 시즌2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출연자들 / 뉴스1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출연자들 / 뉴스1

그는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며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험이 1979년으로 돌아가는 시즌2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우 감독은 시즌2에서 당시의 군부독재와 권력 교체를 다루면서 시청자들이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다만 그 시대를 다시 보여주는 이유에 대해서는 비극적인 역사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백기태가 시청자들에게 응원을 받는 현상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작품 속 백기태는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키워가는 인물이지만, 일부 시청자는 그의 행동을 따라가며 캐릭터에 몰입했다.

우 감독은 당시 중앙정보부가 공포의 대상이었던 동시에 일부에게는 힘과 권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며 인간이 영화 속 권력을 가진 인물에게 감정이입하는 심리와 연결해 설명했다. 백기태라는 인물을 응원하게 만드는 것 역시 작품의 서사와 캐릭터에 대한 몰입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시즌1 이후 배우 정우성을 둘러싼 사생활 관련 논란이 알려진 것이 시즌2 연출에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에도 답했다. 우 감독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며 작품을 만들면서 조금 더 살펴보고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다만 비판과 비평은 창작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인격 모독까지 이어지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비평과 개인에 대한 공격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

우 감독이 한국 현대사를 반복해서 작품의 소재로 삼는 데에는 1970년대에 대한 관심도 자리하고 있다. 그는 1970년대를 권력이 노골적이고 폭력적으로 행사되던 시대이면서 동시에 낭만도 존재했던 시대로 바라봤다.

그는 당시 시대의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공존했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그 시대를 이해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욕망과 배신, 사랑처럼 인간을 움직이는 본질적인 감정은 시대가 달라져도 이어진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애국’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도를 설명했다. 우 감독은 특정한 형태의 애국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라 애국이라는 말이 때로는 얼마나 허망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장면 / 유튜브 '지무비 : G Movie'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장면 / 유튜브 '지무비 : G Movie'

작품 속 백기태와 장건영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애국을 이야기하면서 대립한다. 우 감독은 서로 다른 생각을 토론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서로에 대한 혐오로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즌3에 대한 구상도 공개했다. 우 감독은 아직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박은교 작가와 배우들과 시즌3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1990년대 문민정부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우 감독은 백기태가 필요한 시대가 오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즌3에서 백기태의 이야기를 이어갈 가능성을 열어둔 가운데 1990년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다루게 된다면 역사적 사실과 창작의 경계를 다시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역사와 허구를 함께 다루는 시대극은 역사적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작품과는 다른 창작 방식이 필요하지만, 우 감독은 그 과정에서도 역사적 사실의 큰 줄기는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의 결말 역시 이러한 기준에 따라 실제 역사와 충돌하는 설정을 피하면서 허구의 인물인 백기태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