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거리에 한국 매장이 줄줄이… 유럽서 커지는 K컬처 상권
작성일
런던·베를린 중심상권, 한국 브랜드로 변모
유럽 주요 도시의 중심 상권에 한국 브랜드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현지 거리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인지도를 쌓은 K뷰티 브랜드가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는 가운데 한국 식품점과 외식업체까지 주변에 자리를 잡으면서 화장품과 식품, 외식이 한데 모이는 새로운 상권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영국 런던에서는 K뷰티 매장이 몰려 있는 거리에 한국 식품점과 음식점이 들어서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개별 브랜드가 각자 점포를 내는 수준을 넘어 한국 브랜드끼리 소비자를 공유하면서 이른바 ‘K리테일 클러스터’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영국 상업용 부동산 컨설팅업체 LM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LM이 성사시킨 K뷰티 매장 임대 계약은 18건이다. 한국 외식업체와 슈퍼마켓까지 포함하면 영국 주요 상권에서 중개한 한국 관련 업체의 신규 임대 면적은 5만5000ft²(약 5100㎡)에 달한다. 퓨어서울(PURESEOUL), 모이다(MOIDA) 등 K뷰티 브랜드뿐 아니라 오세요(Oseyo), 분식(Bunsik) 등 식품·외식 브랜드도 현지 상권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런던에서는 이런 변화가 실제 거리 단위로 나타나고 있다. 차링크로스로드(Charing Cross Road) 주변에는 모이다와 퓨어서울, 스킨큐피드 등 K뷰티 매장이 도보 약 5분 거리에 모여 있고, 인근에는 한국식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는 분식과 한국 식료품점 오세요, 서울플라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화장품을 사러 온 소비자가 식당이나 식품점을 함께 찾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K뷰티 브랜드가 오프라인으로 영역을 넓히는 배경에는 유럽에서 실제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5년 K뷰티의 글로벌 온라인 시장 규모는 150억달러로 전년보다 약 22% 증가했다. 이 가운데 서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3%에서 2025년 10%로 높아졌으며 영국과 독일이 주요 성장 시장으로 꼽혔다.
한국 화장품의 유럽 수출액에서도 성장세가 확인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글로벌 무역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유럽연합(EU) 대상 화장품 수출 가운데 기초화장품·메이크업 제품에 해당하는 HS 3304 품목 수출액은 9억5210만달러로 전년보다 69.5% 증가했다. 면도용품·탈취제 등은 84.6%, 비누·세안료는 72.7%, 두발용 제품은 58.0% 증가하는 등 스킨케어를 넘어 퍼스널케어 전반으로 수요가 확대됐다.
영국 시장에서도 한국 화장품의 존재감이 커졌다. 2025년 영국의 한국산 HS 3304 화장품 수입액은 1억8183만달러로 전년보다 54.19% 늘었다. 이 가운데 기초화장품이 1억6069만달러로 전체의 88.37%를 차지했으며, 립 메이크업 제품 수입액은 전년보다 132.08% 증가했다.
유럽에서 K뷰티가 주목받는 이유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한국식 스킨케어 루틴 자체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성분과 기능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제품의 사용 목적과 성분을 비교해 구매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스킨케어 시장에서도 성분의 투명성과 과학적 근거를 중시하는 소비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유로모니터는 K뷰티 브랜드가 과학·기능성을 강조하는 제품을 통해 수요를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에서 먼저 제품을 접한 소비자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매장 확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SNS와 영상 콘텐츠를 통해 제품을 알리고 구매를 유도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제품을 직접 보고 비교하거나 여러 상품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현지 소비자와 직접 접점을 만들면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K뷰티 매장이 모인 곳에 K푸드가 따라붙는 현상도 이런 소비 동선과 맞물린다. LM은 한국 브랜드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와 다양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면서 소비자의 매장 체류 시간을 늘리고 재방문을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화장품과 식품, 외식이 가까운 거리에 모이면 한 브랜드를 찾은 고객이 다른 한국 브랜드까지 방문할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BNP파리바 리얼에스테이트는 독일 주요 소매 상권에서 K뷰티 업체가 새로운 임대 수요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모이다는 지난 5월 독일 함부르크 중심 쇼핑거리에 약 1200㎡ 규모의 매장을 확보했다. 자동차·전자제품 업체가 주도했던 과거의 주요 신규 임차 수요에 K뷰티 브랜드가 새로운 축으로 등장한 것이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쇼핑몰이 한국 브랜드를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콘텐츠로 활용하는 사례도 나왔다. 연간 약 2200만명이 방문하는 것으로 소개된 몰 오브 베를린에는 핀란드계 K뷰티 유통업체 예포앤순수가 독일 첫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고, K푸드와 K팝 상품을 함께 판매하는 KPARC도 입점했다. 뷰티뿐 아니라 식품과 콘텐츠를 묶어 한국 문화를 하나의 쇼핑 경험으로 제공하는 형태다.
영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도 한국 브랜드의 움직임은 눈에 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콜리어스에 따르면 올해 1월 런던에서 신규 진입을 위해 점포를 찾은 리테일·외식·여가 업체는 25곳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8% 늘었다. 이 가운데 한국 업체는 4곳으로 미국 6곳, 아랍에미리트 5곳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한국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부동산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매장 하나의 임대 계약에 그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K뷰티 매장이 들어선 뒤 식품점과 음식점, K팝 관련 매장 등이 주변에 추가로 들어서면 해당 지역 자체가 한국 상품을 찾아가는 목적지로 바뀔 수 있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개별 점포 하나보다 여러 업종이 모여 소비자를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는 상권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 LM은 올해 K뷰티 업체와의 임대 계약 18건 외에도 한국 식품·외식업체의 추가 임대 수요를 확인하고 있다. 오세요는 케임브리지와 엑서터 등에서 점포를 확대했고, 분식 역시 사우샘프턴과 브리스틀 등으로 매장을 넓히고 있다. 한국 브랜드가 런던의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동시에 런던 밖 주요 도시로도 점포를 확대하는 흐름이다.
다만 유럽에서 K뷰티 매장이 늘어난다고 해서 모든 브랜드가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럽 화장품 시장은 현지 브랜드와 글로벌 대형 업체의 경쟁이 치열하고, 국가별 화장품 규제와 유통 구조도 다르다. 영국 시장 역시 대형 유통업체와 글로벌 브랜드, 자체 브랜드 제품이 경쟁하는 구조여서 현지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선택받기 위해서는 제품력과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유통망과 브랜드 신뢰도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
결국 유럽에서 나타나는 K뷰티 확산은 화장품 매장 숫자가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있다. 런던에서는 K뷰티와 K푸드 매장이 한 지역에 모이고, 독일에서는 K뷰티가 주요 상권의 새로운 임차 수요로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한국 브랜드의 인지도가 오프라인 매장과 상권으로 이어지면서 유럽의 소비 공간에서도 한국 브랜드가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