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하사, 극단 선택...“관사 문에 빨간 글씨로 실명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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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진료 기록 외면한 부적합심사, 군의 안전망 작동 멈췄나
22살의 나이에 공군 하사로 임관한 청년이 군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숨진 가운데, 유족이 생전 겪었던 군 복무 과정과 현역 복무 부적합심사 절차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고 김 모 하사는 지난해 6월 공군 하사로 임관했다. 가족에게 군 입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일이었지만, 수송 특기 훈련 과정에서 군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는 것이 유족의 설명이다.
유족에 따르면 김 하사는 수송 특기 훈련 중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이후 군 내부에서 복무 부적응자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런 시선이 이후 군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가족들은 주장했다.

자대 배치를 받은 뒤에는 업무에서 점차 소외됐다는 것이 유족의 기억이다. 김 하사의 어머니는 일반 병사도 할 수 있는 운전 업무를 주로 맡았다고 말했다. 반면 정작 하사로서 수행해야 할 업무에서는 충분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는 것이 가족 측 주장이다.
김 하사의 아버지는 사무실을 드나드는 병사와 간부들이 있는 가운데 아들이 사무실을 지키며 홀로 있는 날들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은 이런 상황이 김 하사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 하사는 결국 군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정상적인 군 복무가 어렵다고 판단한 장병을 대상으로 전역 여부를 심사하는 ‘현역 복무 부적합심사’를 부대에 요청했다.
현역 복무 부적합심사는 군 복무를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장병의 복무 적합 여부를 심사하는 절차다. 단순히 군 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전역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복무 상태와 질환, 근무 태도 등 여러 자료를 종합해 심사가 이뤄진다.

유족은 김 하사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관련 자료를 준비했고, 심사에 필요한 진단서도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은 김 하사의 상태를 보여주는 진단 내용이 심사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김 하사 어머니는 정신과 관련 기록이 심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단서까지 제출했지만, 부대에서는 김 하사의 지각이나 근무지 이탈 등 복무 태도와 관련된 내용이 중심적으로 다뤄졌다고 주장했다.
유족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김 하사의 어려움이 개인적인 복무 태도 문제로만 처리된 것은 아닌지 여부다. 정신과 진료 기록과 과거 극단적 선택 시도 등 위험 신호가 있었다면 이를 어떤 방식으로 확인하고 심사에 반영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가족 측 입장이다.
김 하사는 군을 떠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던 상황에서 추석 연휴를 맞았다. 지난 24일 본가를 찾은 김 하사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 뒤 찜질방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하사는 관사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는 군 생활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힘겨운 심경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에 따르면 유서에는 “끔찍한 세상, 힘들어서 못 살겠다”는 내용과 함께 자신의 시신을 화장해 뿌려달라는 취지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서 외에도 관사 화장실 문에는 붉은색 글씨로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함께 복무했던 부대원들의 이름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이 이름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 하사가 마지막 순간 이들의 이름을 적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특정 인물이나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었는지 등을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김 하사의 아버지는 아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됐는지 그 과정을 알고 싶다며 법적으로라도 진상을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김 하사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공군 수사단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군은 정확한 사망 경위와 함께 당시 복무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장실 문에 적힌 붉은색 이름들에 대해서도 군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인물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만큼, 실제 의미와 경위는 수사 결과를 통해 확인돼야 한다.
현역 복무 부적합심사와 관련해서도 김 하사가 어떤 자료를 제출했는지, 부대가 이를 어떻게 검토했는지, 심사 절차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실제 심사 자료에 포함됐는지와 함께 가족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사실관계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유족이 요구하는 것은 특정 개인을 지목해 책임을 묻는 것에 앞서 김 하사가 군 생활을 시작한 뒤 어떤 과정을 거쳐 군을 떠나려 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훈련 과정에서 발생한 어려움부터 자대 배치 이후의 업무와 부대 생활, 복무 부적합심사 신청 과정까지 전체 경위를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