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회사에 스카웃된 삼성 출신 한국인의 폭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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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CXMT CEO, 삼성 출신 기술진에 “18나노 레시피 가져와라” 협박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의 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 출신 한국인 기술진에게 삼성전자의 핵심 공정 정보를 빼 오라고 압박하며 "한국 정부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진술이 나왔다고 중앙일보가 29일 단독 보도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지하에서 직원 등이 오가고 있다. / 뉴스1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지하에서 직원 등이 오가고 있다. / 뉴스1

매체에 따르면 삼성전자 부장 출신으로 CXMT에서 설비투자를 담당했던 전모씨의 진술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CXMT의 급성장 뒤에 있던 삼성전자 기술 탈취 시도가 당시 CEO의 발언이 담긴 수사기관 진술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씨 진술에 따르면 데이비드 왕(왕닝궈) 전 CXMT CEO는 2016년 10~12월 전씨를 비롯한 한국팀을 불러 압박했다.

왕 전 CEO는 "너희가 갖고 있는 삼성전자 PRP와 설비 정보 모두 가져와라. 안 가져오면 한국 정부에 고발할 테니 잘 판단해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 전 CEO는 "진짜 (삼성전자 정보)인지 확인할 인맥이 있으니 함부로 거짓말로 넘어갈 생각은 말라"고도 경고했다는 게 전씨의 주장이다. 전씨는 "당시 무섭고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당시 CXMT 임원진은 삼성전자를 '옐로우마운틴(黃山)'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렀다.

전씨는 삼성전자에서 28년간 일하다 CXMT로 자리를 옮겼다. 전씨는 삼성전자가 1조600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18나노 D램 공정 기술을 무단으로 유출해 사용한 혐의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졌다. 전씨는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왕 전 CEO가 요구한 18나노 공정레시피(PRP·Process Recipe Plan)는 D램 제조공정 약 600단계의 순서와 장비, 조건값, 설비회사명, 모델명 등을 모두 담은 자료다. 반도체를 만드는 방법이 통째로 들어 있는 셈이다.

18나노는 반도체 회로 선폭이 18나노미터(㎚·10억분의 1m)에 불과한 미세공정이다. 2016년 당시 이 기술 개발에 성공한 곳은 삼성전자뿐이었다. 삼성전자는 미세공정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지하에서 직원 등이 오가고 있다. / 뉴스1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지하에서 직원 등이 오가고 있다. / 뉴스1

이 정보는 삼성전자 공정설계(PA) 엔지니어 출신 박모씨가 2016년 9월 노트 12장에 손으로 옮겨 적어 빼돌렸다. 박씨는 현재 인터폴 적색수배 중이다.

한 현직 검사는 중앙일보에 "CEO가 이들에게 '한국 정부에 고발하겠다'며 법적 조치로 으름장을 놓은 건 그들 스스로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왕 전 CEO의 압박 뒤에는 중국 정부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씨는 지난 9일 법정에서 "당시 중국 정부와 얘기할 때 18나노를 못 하면 (CXMT에) 투자비를 안 준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중국 정부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이냐"고 묻자 전씨는 "그렇다. 18나노를 해야 (중국 정부가) 투자한다는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CXMT가) 자체 개발할 생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답했다. 전씨는 CEO의 압박도 중국 정부에 투자비를 요청하는 회의를 준비하던 시기에 이뤄졌다고 진술했다.

CXMT는 설립 때부터 중국 정부 자금에 기대 왔다. CXMT는 2016년 허페이시 정부 산하 허페이산업투자가 144억 위안(약 3조원)을 직접 출자해 세운 회사다. 10년 가까이 적자에 시달리던 CXMT는 지난해 창사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냈다. 순이익은 71억 위안이었다.

중국 관영 매체 경제일보는 "허페이시가 해외 기업들의 독점 구도를 허물기 위해 CXMT에 10년 동안 투자를 이어왔다"고 평가했다.

인력 빼가기는 더 노골적이었다. 전씨는 지난달 25일 재판에서 "'삼성전자 현직이고 A급'이라고 추천하면 별문제가 없는 한 이력서를 달라고 했다. 연락처만 있어도 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일부 한국인 직원은 CXMT가 세운 비료 회사 명의로 입사했다. 다른 도시를 거쳐 허페이로 들어간 직원도 있었다.

대만 민주·사회·신흥기술연구소(DSET)는 보고서에서 "CXMT가 난야·이노테라 등 대만 출신 임원을 활용해 기존 연봉의 2~3배에 달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수백 명의 엔지니어를 '팀 단위'로 차출했다"고 밝혔다. CXMT는 이렇게 확보한 인력을 바탕으로 세계 4위 D램 업체로 올라섰다.

법조계에서는 중국 경영진이 개입한 정황 등이 인정되면 향후 국제분쟁에서 삼성 측이 유리한 위치에 설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는 삼성디스플레이와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영업비밀 분쟁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침해를 인정하고 14년8개월간의 미국 수입 금지를 권고하자 결국 특허료로 1조원 안팎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장검사 출신인 조재빈 법무법인 바른 산업기술유출대응센터 변호사는 중앙일보에 "천문학적 연구개발비가 드는 첨단 산업은 핵심 정보를 빼돌리면 막대한 이익으로 직결되는 만큼 전 세계적으로 기술 안보 차원에서 엄격히 보호하는 흐름"이라며 "특히 국내 형사 유죄 판결은 법원이 기술 유출을 공식 인정한 것이어서 ITC 제소 시 반박이 까다로워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