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군기지 교신 도청하다 붙잡힌 중국인의 '섬뜩한 정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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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감청부대서 40년 근무 사실 밝혀져

한국 공군기지 주변에서 한미 전투기 조종사와 관제탑 사이 교신을 몰래 엿들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중국인이 중국 인민해방군 감청부대 간부 출신으로 드러났다. 주한미군을 포섭해 군 관련 자료를 빼낸 혐의를 받는 40대 조선족 중국인 역시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 001호기가 22일 공군에 인도된 뒤 경남 사천기지에서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 공군 제공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 001호기가 22일 공군에 인도된 뒤 경남 사천기지에서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 공군 제공

29일자 조선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이달 기소된 중국인 A씨가 베이징에 있는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감청부대에서 40년 동안 근무한 중교 출신이다. 중교는 한국군 중령에 해당하는 계급이다.

조선일보가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3월부터 지난 8월까지 모두 13차례에 걸쳐 국내 주요 군사기지 주변에서 군 통신을 도청한 혐의를 받는다. A씨가 노린 곳은 전북 군산과 경기 오산, 광주(光州) 공군기지를 비롯해 경기 평택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와 부산 해군기지 등이다.

수법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했다. A씨는 공군 관제탑이나 활주로와 가까운 호텔에 방을 잡은 뒤 객실 안에 전파 수신기와 안테나 등을 설치했다. 이렇게 꾸린 장비로 전투기 조종사와 관제탑이 주고받는 교신을 엿들었다. 도청 13차례 가운데 7차례는 한미 공군이 함께 주둔하는 군산공항이 표적이었다. 오산과 광주 기지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A씨가 사용한 장비는 SDR(Software Defined Radio) 수신기였다. SDR은 전파를 받기만 하는 단방향 수신 기기다. 노트북 소프트웨어로 원하는 주파수를 잡을 수 있다. 업데이트를 하면 수신 채널을 여러 갈래로 넓힐 수도 있다.

검찰은 A씨가 도청 녹음 파일과 도청에 필요한 주파수 정보 등을 외장하드에 담아 중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파악했다. A씨가 저장한 자료는 13.9테라바이트(TB)에 이르렀다.

A씨는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를 앞둔 지난 8월 초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지난달 7일 군산의 한 호텔에서 도청하던 A씨를 현행범으로 붙잡아 구속했다. 경찰은 입수한 첩보를 토대로 A씨를 추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 001호기가 22일 공군에 인도된 뒤 경남 사천기지에서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 공군 제공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 001호기가 22일 공군에 인도된 뒤 경남 사천기지에서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 공군 제공

경찰은 A씨가 2024년 1월부터 관광비자로 한국을 드나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A씨가 한미 공군 훈련 기간에 맞춰 입국한 점에 주목했다. 입국 목적 자체가 도청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경찰은 A씨가 중국군에서 오래 복무한 이력을 고려하면 수집한 정보를 외부로 넘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민간 항공기 교신 내용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고 그 취미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조선일보는 A씨가 도청 혐의에 대해 "취미 생활이었다"며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A씨와 비슷한 시기에 구속된 조선족 중국인 B씨의 이력도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B씨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와 공안국에서 근무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B씨는 중국 공산당에도 입당했던 것으로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B씨는 2016년 재외동포(F-4)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2021년 11월부터 지난 5월까지는 평택 캠프 험프리스 인근에서 군장점을 운영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B씨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주한미군 C씨와 미 8군사령부 비서실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 군무원을 알게 됐다. B씨는 이들에게 꾸준히 밥을 사고 선물을 건네며 가까워졌다. 이후 각종 군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B씨가 현역 미군인 C씨에게서 받아낸 자료에는 아파치 공격헬기와 F-35 전투기의 비행·이착륙 훈련 장면이 담겼다. 미군의 낙하산 강하·집결 훈련 영상도 포함됐다. 군무원에게서는 미군 지휘관 취임식 사진과 미군 장성 근무처 조회 자료를 받아냈다. 2023년 을지훈련 사후 검토 자료까지 B씨 손에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 8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B씨가 캠프 험프리스에서 쓰는 무기의 이동 현황을 관찰해 사진으로 남긴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B씨는 이렇게 모은 자료를 요약·정리해 외부로 빼돌렸다. 'B-52 전략폭격기 한국 최초 착륙', '최근 남북한 정세 상황' 같은 제목을 붙인 자료가 중국 메신저를 통해 밖으로 전송됐다. 일부는 B씨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갔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훈련 동향, 주한미군 사드·패트리엇 체계 동향을 정리한 자료도 있었다.

법원은 8월 10일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당시 B씨에게 자료를 건넨 한국인 1명을 배임수재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혐의가 더 구체화되면 일반이적 혐의 적용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군장점 사업에 필요한 정보를 모은 것뿐이다"라고 진술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B씨는 군장점 사업을 하다가 군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았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달 A씨와 B씨를 일반이적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A씨에게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B씨에게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 혐의가 함께 적용됐다. 형법상 일반이적죄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은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 군사기지법 위반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모두 인민해방군 첩보·특수부대 출신으로 확인되면서 중국이 군 경력자들을 한국에 보내 조직적인 첩보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군사 전문가들이 이번 사건을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겨냥한 중국의 간첩 활동일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전문가는 조선일보에 "한국이 중국 첩보 작전의 운동장이 됐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중국인이 한국 군사시설을 촬영하거나 엿듣다 붙잡힌 사례는 최근 잇따르고 있다. 2024년 6월에는 부산 해군기지와 군함 등을 촬영하던 중국인 유학생 2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지난 6월 징역 1년 6개월 등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3월에는 경기 오산 등 주요 공군기지에서 전투기를 무단으로 찍은 중국인 고교생 2명이 붙잡혀 각각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중국 국적 10대 청소년이 제주공항 전망대에서 사설 무전기로 관제탑과 항공기 사이 교신을 엿듣다 경찰에 체포됐다.

방첩 역량이 약해진 상황에서 중국의 첩보 활동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이 폐지된 데다 국군방첩사령부가 계엄 연루를 이유로 해체됐다고 지적했다. 공안 수사를 맡아온 검찰의 수사권도 곧 폐지될 예정이다. 조선일보는 방첩 수사를 주도하는 경찰의 관련 수사 인력이 100여 명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