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측, 역사 왜곡 및 배후 설정 논란 고조에 직접 입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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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여사 서거 약 50년 만에 스크린에 오른 암살 사건

암사자(들) 포스터 / 하이브미디어코프
암사자(들) 포스터 / 하이브미디어코프

고(故)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역사 왜곡 및 배후 설정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제작진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해당 작품은 수사당국의 기존 결론과 달리 다른 총탄의 출처와 배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정치권의 반발을 샀다.

제작진은 창작의 산물임을 강조하며 해명에 나섰으나 일부 여당 정치인들은 명백한 선동이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암살자(들)' 제작진은 28일 배포한 공식 자료를 통해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제작진은 "'암살자(들)'은 1974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당시 사건과 관련해 작성된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극영화"라며 "제작진은 공개된 기록과 자료 서적 다큐멘터리 등을 폭넓게 조사하고 실제 사건과 인물을 모티브로 하되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배후로 지목했다는 정치권의 주장을 부인했다.

제작진은 "본 작품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의 사실을 부정 왜곡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 또한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만큼 비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수용했다.

제작진은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다양한 해석과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제작진은 그러한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다만 작품 고유의 창작 의도와 성격을 넘어 특정한 정치적 목적 의도로 제작된 영화가 아님을 말씀드린다.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만 바라봐 주시기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영부인 저격 사건의 감춰진 배후를 쫓는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가 주연을 맡았으며 과거 '8월의 크리스마스'와 '덕혜옹주'를 연출한 허 감독의 연출작이다.

이 영화는 문세광의 총탄에 육 여사가 사망했다는 당시 수사당국의 결론과 달리, 육 여사를 맞힌 총탄의 출처와 사건 배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 같은 영화의 설정에 대해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비판을 제기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8일 페이스북에 "육영수 여사 피격의 배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는 참으로 황당한 스토리라고 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같은 당 유영하 의원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어 마치 육영수 여사 피격의 진짜 배후는 고 박정희 대통령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며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고 주장했다.

1974년 8월 15일 서울시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발생한 육 여사 피격 사건은 당시 수사당국의 수사 결과 발표에 따라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종결됐다.

사건 수사 기록에 따르면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이 스미스 앤 웨슨 38구경 권총을 발사했으며 박 전 대통령을 빗나간 총탄이 육 여사의 우측 두부를 가격했다.

범인 문세광은 사건 현장에서 체포돼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12월 20일 사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사건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탄 궤적 분석과 법의학적 의문이 다수의 전문가들을 통해 꾸준히 제기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출신 총기 분석가들이 참여한 과거 다큐멘터리 실험 자료에 따르면 문세광의 권총에서 발사된 탄도의 입사각과 실제 육 여사 두부에 남은 상흔의 각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물리적 데이터가 도출됐다.

또한 당시 현장에 녹음된 오디오 주파수 음향 분석 결과 수사 발표 기록인 5발을 초과하는 다수의 총성이 울렸다는 통계 자료도 존재한다.

당시 경찰과 경호처의 사건 대응 관련 공식 문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립중앙극장 내부에서 경호원들의 권총으로 다수의 대응 사격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합창단원으로 무대에 서 있던 고등학생이 유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는 2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현장 감식 과정에서 연단 주변과 객석 천장 벽면 등에 다수의 탄흔이 발견됐으나 발사된 총탄의 총량과 회수된 탄두의 개수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일부 문헌을 통해 확인됐다.

이러한 객관적 물증의 불일치는 훗날 창작자들이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제3의 배후설이나 유탄 피격설 등을 영상 시나리오의 요소로 결합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