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노무현을 헌신짝처럼 버린 건 내가 아니라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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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비난 묵묵히 감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려온 진보 진영을 향해 "당시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킨 것은 그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결코 내 뜻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진실을 아는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중앙일보 더중앙플러스를 통해 회고록을 연재 중인 이 전 대통령은 25일 공개된 '노무현 수사를 말하다' 편두 번째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다룬 글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중앙일보 측은 해당 글에 <“盧 헌신짝처럼 버린 건 좌파” 17년 만에 침묵 깬 이명박>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전 대통령은 "좌파 진영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 직후 일어난 비극의 책임을 전적으로 나에게 지워왔다"고 적었다. 이어 "내가 검찰 수사를 배후에서 총지휘하면서 그를 압박하고 핍박해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게 그들 주장의 요지다"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그러나 당시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킨 것은 그들이었다"며 "수사가 시작되자 민주당을 비롯해 좌파 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을 향해 날 선 비판과 야유를 쏟아냈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의 심경을 짐작하는 대목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내가 아는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나 상대 정파의 비난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라며 "그러나 자기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한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거다"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러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그 화살을 내게 돌린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오랜 세월 일체의 반박 없이 그 비난과 억측을 묵묵히 감내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회고록에는 2009년 5월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사진도 실렸다. 백원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이 전 대통령을 향해 "사과하라"고 소리치는 장면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서거 이후 17년 동안 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그사이 그 사안을 보는 시각은 분화했고 성숙해졌다"고 적었다. 다만 "물론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을 성역화, 순교자화하면서 일체의 다른 해석을 허용치 않으려는 이들이 좌파 진영의 주류인 게 사실이다"라고 했다.

진보 진영 내부의 변화도 거론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무현의 죽음을 이용하는 세력'이라고 그들을 비판하면서 객관적 분석을 요구하는 이들이 좌파 진영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썼다. 이어 "공세의 대상이던 보수 진영에서 이 사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입을 연 이유를 두고 "나 역시 이제는 그때의 일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박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그를 둘러싼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는 결코 내 뜻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를 억제하려 했다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나는 검찰이 과잉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직간접적 제어를 시도했고,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노 전 대통령 곁에 있던 인물들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그는 "당시 노 전 대통령 주변에 있었던 이들은 진실을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얼마나 그를 보호하려 했으며, 얼마나 예우를 갖추려 노력했는지 말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중 한 명이 당시 변호인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일 거다"라고 썼다.

두 사람의 인연도 소개했다. 이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1996년 4월 15대 총선 때 서울 종로 지역구에 나란히 출마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낙선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해 여름 종로구의 한 유명 삼계탕집에서 노 전 대통령과 우연히 마주쳤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먼저 "아니, 이명박 의원님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 전 대통령이 "노 의원님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 식사하러 오셨나 보죠?"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아닙니다. 여기는 제가 개인적으로 자주 오는 곳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의 팬이던 식당 주인이 "사무실처럼 사용하시라"며 방을 하나 내준 곳이었다는 게 이 전 대통령의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 별다른 친분이 없었던 나는 이후 그 식당에서 여러 번 그와 마주치면서 꽤 가까워졌다"며 "그러면서 솔직하고 털털하며 인간적이던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의원직을 사퇴한 뒤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종로 국회의원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되짚어 보면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라며 "내 국회의원 자리를 물려받은 그가 대통령 자리를 나에게 물려줬으니 말이다"라고 적었다.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을 유임시킨 일화도 다시 꺼냈다. 임 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17대 대선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2007년 11월 24일 임명한 검찰총장이다. 이 전 대통령에게는 첫 검찰총장이자 노 전 대통령에게는 마지막 검찰총장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10년 만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서 임 전 총장이 최단명 총장이 될 위기에 놓였다고 했다. 그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어 하는 건 모든 정권의 본능이다"라며 "특히 검찰총장 같은 권력기관 총수는 자기 사람으로 앉히는 게 상례였다"고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2008년 초 삼청동 안가에서 만난 임 전 총장은 "당선인님, 저는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입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당선인께서 원하시는 분을 새 총장으로 임명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저는 사직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사직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임 총장을 유임시킬 작정입니다"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임 전 총장은 "정말이십니까. 왜 저를 유임시키려 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앞서 2일 올린 글에서 이 대통령은 놀란 임 전 총장에게 "당신이 있어야 노무현 대통령을 지킬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2일 글에서 이 전 대통령은 원세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을 통해 임 전 총장에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방문조사를 권했다고 주장했다. 김경한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는 "노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좀 지나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라고 해주세요"라고 주문했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는 박연차 당시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서 비롯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를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검찰에 소환됐다. 전두환·노태우씨에 이어 세 번째로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석한 지 3주쯤 지난 2009년 5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검찰은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