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거장 98세 별세...'도라 도라 도라'·'우주전함 야마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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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 거장 마스다 도시오, 일본 영화사에 남긴 발자국
액션영화부터 애니메이션까지, 장르를 초월한 영화인의 삶
일본 영화계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남긴 마스다 도시오 감독이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마스다 감독은 지난달 26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일본영화감독협회가 24일 부고를 발표했으며, 장례와 영결식은 가까운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별도의 추도식은 열리지 않을 예정이다. 향년 98세였다.
1927년 고베에서 태어난 마스다는 오사카외국어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다. 영화계에 들어간 뒤 신토호를 거쳐 일활에서 활동했고, 1958년 ‘마음과 육체의 여행’으로 감독 데뷔했다. 이후 ‘녹슨 칼’, ‘붉은 손수건’ 등을 연출하며 일활 액션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이시하라 유지로와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다. ‘녹슨 칼’과 ‘붉은 손수건’을 비롯해 두 사람이 함께한 작품은 25편에 달한다. 마스다 감독은 이시하라뿐 아니라 고바야시 아키라, 와타리 테쓰야 등 당대 인기 배우들의 작품도 연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1968년 요시나가 사유리 주연의 ‘아아 히메유리의 탑’을 연출한 뒤 미국과 일본이 함께 만든 전쟁영화 ‘도라! 도라! 도라!’의 일본 측 제작에 참여했다.
‘도라! 도라! 도라!’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다룬 작품이다. 미국 측 연출은 리처드 플레이셔가 맡았고, 일본 측에서는 마스다 도시오와 후카사쿠 긴지가 공동으로 감독을 맡았다. 당초 일본 측 감독으로 구로사와 아키라가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하차하면서 제작진이 바뀌었다.
마스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전쟁을 다룬 작품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백삼고지’와 ‘제로센 연소’ 등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아이돌 영화 ‘하이틴 부기’, 현대극 ‘사장’, 시대극 ‘에도성 대란’ 등으로 장르를 넓혔다. 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상업영화 전반을 오가며 작품을 만든 감독이었다.
애니메이션과의 인연도 빼놓기 어렵다. 마스다는 1974년 시작한 TV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에 감수자로 참여했다. TV 시리즈가 막을 내린 뒤 제작된 1977년 극장판에서는 직접 감독을 맡았다.
극장판 ‘우주전함 야마토’는 TV판 내용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개봉 당시 큰 흥행을 거뒀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 작품은 약 21억엔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이어 1978년에는 ‘안녕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의 연출도 맡았다. ‘우주전함 야마토’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이 극장판 중심으로 확장하는 흐름과도 맞물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도 ‘우주전함 야마토’는 다른 제목으로 소개됐다. 국내 방송에서는 ‘우주전함 V호’ 등으로 방영되면서 당시 시청자들에게 알려졌다. 일본에서 극장판의 흥행이 이어지면서 작품 자체가 TV 애니메이션을 넘어 하나의 대형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는 데에도 영향을 줬다.
다만 마스다 감독의 작품을 둘러싼 평가는 장르마다 엇갈렸다. 특히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과 ‘우주전함 야마토’의 일부 극장판을 두고 일본 군국주의와 특공대를 연상시킨다는 비판도 있었다. 1978년작 ‘안녕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의 결말 역시 주요 인물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방식 때문에 이런 논쟁의 대상이 됐다.
마스다 감독 개인의 이력에는 전쟁과 관련된 또 다른 일화도 있다. 전쟁 말기인 1944년 에히메현 니이하마 공업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 군사 교련에 반발했다가 이듬해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영화계에 진출해 전쟁을 소재로 한 여러 작품을 직접 연출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둘러싼 배경으로도 언급된다.
마스다는 1993년 일본 정부로부터 자수포장을 받았고 1999년에는 욱일소수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