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TM에 현금 넣으라는 전화, 지난해 피해액 3억8900만달러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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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FBI, 작년 비트코인ATM 사기 1만3460건·피해 5310억원 집계
정부기관 사칭 전화로 노년층 겨냥…뉴저지·뉴햄프셔 규제 착수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당신의 계좌가 해킹됐다”거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다급한 목소리다. 전화를 끊지 않고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 비트코인 ATM에 넣으라는 지시까지 따르면, 그 돈은 순식간에 범죄자 손에 들어간다. 보안 매체 위라이브시큐리티(WeLiveSecurity)에 따르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런 방식의 사기가 지난해 1만3460건 발생해 피해액이 3억8900만 달러(약 5,310억원, 1달러 1,365원 기준)에 달했다고 집계했다. 2024년과 비교해 신고 건수는 23%, 피해액은 58% 늘어난 수치다.
정부기관이라며 걸려오는 전화의 각본
비트코인 ATM 사기는 대부분 같은 각본을 따른다. 낯선 전화번호로 걸려온 상대는 경찰관이나 정부기관 직원, 혹은 신뢰할 만한 관계자를 자처한다. 때로는 컴퓨터 화면에 팝업이 떠 “기기가 감염됐다”며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전화를 받으면 누군가 계좌에 접근했거나 신분이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말로 공포심을 자극한다. 이어 자금이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압박하고, 통화를 끊지 못하도록 가족이나 지인, 정식 기관에 도움을 구하지 못하게 막는다. 결국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 특정 비트코인 ATM에 가서 그 현금으로 암호화폐를 사라는 지시를 받는다.
마지막 단계는 문자로 전송된 QR코드를 ATM에서 스캔하는 것이다. 이 QR코드는 실제로는 자금을 범죄자가 통제하는 암호화폐 계정으로 보내도록 설계돼 있다. 암호화폐 거래는 흐름 추적은 가능해도 지갑 소유자는 익명으로 남을 수 있어, 한 번 넘어간 돈은 되돌리기가 극히 어렵다.

왜 50대 이상이 유독 많이 당하나
FBI 집계에서 신고 대부분은 50세 이상에서 나왔고, 이들의 피해액만 3억200만 달러가 넘었다. 이 중 60세 이상 피해자가 낀 금액이 2억5740만 달러에 달했다. 위리브시큐리티는 고령층이 암호화폐 ATM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피해 집중의 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뉴저지의 사례는 이 구조를 보여준다. 80세 여성 마를린(Marlene)은 컴퓨터에 뜬 경고 팝업을 보고 화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남성은 자신이 애플 소속이라고 소개하며 돈이 위험하니 즉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마를린은 현금을 찾아 암호화폐 키오스크에 넣었고, 체크 계좌에 있던 돈 대부분인 9,500달러를 잃었다.
트렌토니안(Trentonian)에 실린 기고문에 따르면 뉴저지에서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암호화폐 키오스크 관련 신고가 369건 접수됐고, FBI 집계 기준 피해액은 약 1,790만 달러(약 244억원)에 달했다. 이는 미국 내에서도 손실 규모가 가장 큰 주 가운데 하나다. 전국적으로는 키오스크 관련 신고의 절반 이상이 50세 이상에서 나왔다.
뉴햄프셔·뉴저지·태즈메이니아, 규제로 맞선다
피해가 쌓이자 각지에서 제도적 대응이 시작됐다. 뉴햄프셔에서는 켈리 아요트(Kelly Ayotte) 주지사가 9월 14일(현지시각) 맨체스터 경찰서에서 주·지방 법 집행기관 관계자, 소비자 보호 단체, AARP 뉴햄프셔 대표들과 함께 암호화폐 ATM 사기를 막기 위한 새로운 안전장치를 담은 법을 소개했다.
뉴저지에서는 상원 법안 2141호가 발의돼 주 내 암호화폐 ATM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다른 법안인 가상화폐 키오스크 소비자보호법(Virtual Currency Kiosk Consumer Protection Act)은 기기를 없애는 대신 눈에 잘 보이는 사기 경고문 부착, 운영자 면허제, 알려진 사기 지갑을 걸러내는 블록체인 분석 도구 적용, 평일 연장 시간대 실시간 고객상담 지원을 의무화하는 방향이다. 이 법안은 크립토 워치독(Crypto Watchdog) 이사이자 변호사인 채핀 페이가 트렌토니안 기고문에서 소개했다.
태즈메이니아에서도 경찰이 직접 나섰다. 태즈메이니아 경찰은 올해 3개월 동안 주민들이 암호화폐 ATM에 예치한 돈 가운데 150만 달러 이상을 사기로 잃었다고 밝혔다. 폴 터너 형사는 “온라인으로만 알거나 전화로만 연락한 사람이 암호화폐 ATM에 현금을 넣으라고 요구한다면, 사기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태즈메이니아 내 암호화폐 ATM 대수는 2021년 1대에서 현재 28대로 늘었으며, 은행이 이상 거래로 이체를 막아서자 범죄자들이 대신 ATM으로 피해자를 유도하는 경우도 많았다.
돈을 이미 넣었다면, 지금 해야 할 일
가장 중요한 원칙은 예방이다. 정부기관, 은행, 정상적인 기업 가운데 암호화폐 ATM으로 돈을 보내라고 요구하는 곳은 없다. 전화로 그런 요구를 받으면 상대의 신원을 확인하려 들고, 서두르지 말고 전화를 끊은 뒤 공식 연락처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이미 피해를 봤거나 진행 중이라면 즉시 사기범과의 연락을 끊고 ATM 영수증, 문자, 이메일, 통화기록, 은행 거래내역 등 증거를 모아야 한다. 영수증이나 기기에 적힌 ATM 운영사 연락처로 상황을 알리고, 은행에도 즉시 알려 계좌를 보호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지역 경찰과 연방거래위원회, FBI 인터넷범죄신고센터에 신고할 수 있고, 호주에서는 사이버보안 신고 웹사이트와 경찰에 알리도록 안내되고 있다.
위리브시큐리티는 되돌려받을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신고 자체는 당국이 사기 패턴을 파악하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피해를 본 사람에게 “돈을 되찾아주겠다”며 접근하는 이른바 복구 사기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수법은 별도 수수료를 요구한 뒤 그마저 가로채는 2차 사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