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리노공업 노사, 싸워야 할 상대는 서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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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일 전면파업 끝내고 생산현장 복귀…노사갈등은 아직 진행형
- 합의 직전까지 갔던 협상, 마지막 문턱 넘지 못해
- 세계 반도체 경쟁 한복판…노동자도 회사도 함께 살아야

[부산=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두 달 넘게 공장을 떠나 있던 노동자들이 23일 다시 생산현장으로 돌아왔다. 지난 7월 23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이어온 리노공업 노조가 전면파업을 중단하고 조합원들을 현장에 복귀시킨 것이다. 다만 부분파업 가능성은 남아 있어 노사갈등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위키트리 전국총괄본부장 최학봉 기자. / 사진=위키트리DB
위키트리 전국총괄본부장 최학봉 기자. / 사진=위키트리DB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노사가 도저히 합의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노사는 지난 8일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 정기상여와 성과급 등 상당 부분 의견을 좁혔지만 일부 쟁점에서 다시 충돌하면서 최종 합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기서 어느 한쪽의 책임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노조에는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고 회사에는 기업을 지속시키고 투자와 고용을 이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노사 모두 이제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다. 우리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리노공업은 부산에서 출발해 반도체 테스트용 핀과 소켓 등을 생산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해 온 기업이다. 오늘의 경쟁력에는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해 온 경영진의 판단과 생산현장을 지켜온 노동자들의 땀이 함께 들어 있다. 노동자가 없으면 공장은 돌아가지 않고, 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노동자의 일자리 역시 지킬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과 품질, 가격과 납기를 놓고 세계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전쟁터다. 노사가 내부 갈등으로 기술개발과 생산, 고객의 신뢰를 잃는 순간 그 빈자리를 차지할 해외 경쟁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기자는 다소 거칠더라도 한마디 하고 싶다.

리노공업이 흔들리고 결국 망한다면 웃는 쪽은 노조도 회사도 아니다. 세계시장에서 리노공업과 경쟁하는 해외 기업과 경쟁국이 웃을 일이다.

회사가 노동자를 이긴다고 회사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노조가 회사를 굴복시킨다고 노동자가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공장이 경쟁력을 잃고 고객이 떠난 뒤의 승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번 현장 복귀가 단순한 파업 중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사는 다시 마주 앉아야 한다. 회사가 협상 테이블에서 책임 있게 결단해야 하듯 노조 역시 회사와 직접 머리를 맞대고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상급단체와의 협의와 내부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노사가 어렵게 합의점에 접근할 때마다 외부의 판단과 절차가 또 하나의 벽이 된다면 현장의 노사협상은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리노공업의 임금과 근로조건, 그리고 회사의 미래를 가장 절박하게 고민해야 할 당사자는 결국 리노공업 노사다.

현장 노사가 협상의 실질적인 주체가 돼야 한다. 서로 한 발씩 물러설 것은 물러서고 지킬 것은 지키면서 현장에서 결론을 만들어야 한다. 현장의 합의보다 조직의 논리가 앞서기 시작하면 타협은 끝없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서로 버티기만 한다면 타협은 회사가 쓰러질 때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 가서 누가 이겼고 누가 졌는지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회사도 노동자를 비용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고, 노조 역시 회사를 요구의 대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수십 년 동안 한쪽은 기업을 키우고 다른 한쪽은 생산현장을 지켜왔다. 그 결과가 오늘의 리노공업이다.

23일 노동자들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상생이다. 리노공업 노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공장 담장 안에 있지 않다.

진짜 경쟁 상대는 세계시장에 있다.

노동자가 살아야 회사가 살고,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의 일자리도 지켜진다. 부산에서 출발해 세계 반도체 시장까지 걸어온 리노공업의 다음 역사를 이제 노와 사가 함께 써 내려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