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스캔들’ 초상화 속 비밀, 23년 전 그 화가가 다시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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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환 교수, 2003년 영화 ‘스캔들’ 이어 넷플릭스 ‘스캔들’ 초상화도 제작
하량교 희부인 초상에 담긴 23년의 인연과 전통 화법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1화에 등장하는 초상화 한 점에 23년의 시간이 담겼다. 지난 18일 공개된 8부작 ‘스캔들’ 속 극 중 인물 희부인(한선화 분)의 초상화 〈하량교 희부인 초상〉을 그린 이는 윤여환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다. 윤 교수는 2003년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숙부인 정씨의 전신 초상화와 화첩 그림을 제작한 화가로, 23년 만에 같은 이야기의 세계로 돌아와 새로운 인물을 화폭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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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그 화가, 다시 붓을 들다

윤 교수와 ‘스캔들’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배용준·전도연·이미숙이 주연한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등장하는 화첩 그림과 숙부인 정씨의 전신 초상화를 제작했다. 영화 속 소품에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 회화의 분위기와 인물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는 작업이었으며, 윤 교수의 주요 작품 이력에도 이 작업이 기록돼 있다.

23년이 흐른 뒤 제작진은 다시 윤 교수에게 초상화 제작을 맡겼다. 이번에는 극 중 새로운 인물인 ‘희부인’이 그의 붓끝에서 태어났다. 윤 교수는 2003년 영화의 숙부인 초상화와 화첩을 제작한 인연을 바탕으로 넷플릭스 8부작 ‘스캔들’에 등장하는 희부인 초상화를 그렸다고 설명하며, 한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시리즈가 20여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다시 연결됐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두 작품은 모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림을 마주하는 화가의 위치는 달랐다. 2003년에는 영화 속 소품으로서 화첩과 초상화를 제작했고, 이번에는 극 중 설정상 ‘김홍도가 그린 그림’이라는 서사를 가진 초상화 자체를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원작 ‘위험한 관계’에서 이어진 두 번째 스캔들

‘스캔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 프랑스 작가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가 쓴 소설 ‘위험한 관계’와 만난다. 이 소설을 조선시대로 옮겨 2003년 제작된 작품이 배용준·전도연·이미숙 주연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다. 넷플릭스 시리즈는 이 영화를 바탕으로 하되 인물과 관계를 다시 확장한 작품이다.

새 시리즈에서 조씨부인은 손예진, 조원은 지창욱, 희연은 나나가 맡았다. 연출을 맡은 정지우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새롭게 썼기 때문에 기존 영화와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보다 긴 8부작 형식에 맞춰 각 인물이 살아온 과정과 감정의 변화도 보다 깊이 있게 펼쳐진다.

영화가 조 씨 부인과 조원, 희연을 중심으로 압축된 서사를 그렸다면 시리즈는 조연급 인물이었던 소옥모까지 하나의 독립된 캐릭터로 확장해 홍분희라는 이름과 연초전 운영이라는 구체적 배경을 부여했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하량교 희부인, 그는 누구인가

이번 초상화의 주인공은 극 중 소옥의 모친인 홍분희 여사, 곧 ‘희부인’(한선화 분)이다. 그는 하량교, 즉 청계천 다리 인근에서 담배를 유통·판매하는 연초전(煙草廛)을 운영하는 인물로 설정돼 있다. 극 중 인물들은 소옥모가 운영하는 연초전을 그 위치에 따라 ‘하량교’라 부르는데, 이에 따라 초상화의 제목 역시 〈하량교 희부인 초상〉으로 정해졌다.

윤 교수는 초상화를 제작하며 인물이 자리한 장소와 신분, 직업까지 그림 속 설정에 반영했다. 초상화 하나에도 극 중 인물의 배경과 서사가 함께 담겼으며, 단순히 인물의 외양만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연초전이라는 상업 공간을 운영하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당대 조선 사회에서 여성이 부를 쌓을 수 있었던 방식과도 맞물린다. 초상화 제목에 실제 인물이 아닌 극 중 지명이 그대로 반영된 점도 제작진이 서사적 디테일에 공을 들인 대목이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스스로 붙인 이름 ‘희부인’, 욕망을 드러내다

눈여겨볼 대목은 ‘희부인’이라는 호칭이다. 실제 신분상의 명칭이 아니라, 양반가 여성의 격식을 동경하는 소옥모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라는 설정이다. 따라서 초상화 역시 배우 한선화의 얼굴을 닮게 그리는 작업만으로는 부족했다. 인물이 지닌 신분 상승의 욕망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성격까지 그림에 녹여내야 했다.

윤 교수는 “희부인 역을 맡은 배우의 용모를 핍진하게 살리면서 화려한 복식과 화장, 장신구까지 구현해야 했기 때문에 김홍도 시대 초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극 중 인물의 성격을 함께 담아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초상화 속 화려한 머리 장식과 귀걸이, 붉은 저고리, 지우산은 희부인이 추구하는 격식과 욕망을 보여주는 장치다.

윤 교수는 작품에 대해 “연초전을 운영하는 홍분희의 허영과 욕망을 드러내는 극 중 설정과 한선화 배우의 용모, 화려한 복식과 장신구를 반영해 제작됐다”고 부연했다. 신분이 아닌 욕망으로 얻어낸 이름이라는 설정을 그림의 색과 장신구 배치로 구현하려 한 것이다.

김홍도의 그림으로 설정된 초상화

극 중 이 초상화는 ‘단원 김홍도가 그린 작품’으로 설정돼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윤 교수는 제작 과정에서 김홍도 시대 초상화의 형식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배우의 실제 용모와 극 중 인물의 성격을 함께 살리는 데 무게를 뒀다. 제작 과정별 사진을 보면 배우가 실제 극 중 복식과 가채를 착용한 모습에서 시작해 연필 밑그림을 거쳐 채색을 더하고, 마지막에는 인물 뒤편에 지우산을 배치한 초상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확인된다.

극 중 설정과 실제 제작 방식이 맞물리면서, 초상화 한 점이 짧은 등장에도 인물의 성격과 서사를 함께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배우가 실제 의상과 가채를 갖춘 모습을 촬영한 뒤 이를 바탕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단순한 상상화가 아니라 실제 배우의 모습을 조선시대 화풍으로 옮기는 작업에 가깝다. 지우산이라는 소품 역시 인물의 신분적 지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마지막 단계에 배치됐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스캔들' 공식 스틸 (사진=넷플릭스)

적선법으로 쌓아올린 가채, 육리문법으로 살린 얼굴

머리 부분은 수많은 가닥을 한꺼번에 검게 채우지 않고 가느다란 선을 반복해서 쌓아 올렸다. 윤 교수가 인물화에서 사용하는 ‘적선법(積線法)’이다. 거대한 가채의 덩어리와 결을 촘촘한 선으로 표현하고, 머리에 꽂은 떨잠과 비녀 등 각종 장신구도 하나하나 묘사했다.

얼굴 역시 피부색만 평면적으로 칠하지 않았다. 미세한 선을 겹쳐 피부와 얼굴의 굴곡을 표현하는 ‘육리문법(肉理紋法)’을 활용해 배우의 얼굴 특징과 표정을 사실적으로 살렸다. 피부의 결에서부터 용모와 표정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표현함으로써 인물의 사실성과 생동감을 높인 방식이다.

두 기법은 윤 교수가 오랫동안 국가표준영정을 제작하며 다져온 방식으로, 역사적 인물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가상의 극 중 인물에게도 동일한 정밀도로 적용됐다.

국가표준영정부터 넷플릭스 협업까지

윤여환 교수는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에서 후학을 길러온 한국화가로, 역사적 인물의 얼굴을 고증하고 재현하는 초상화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제작한 국가표준영정은 백제 도미부인을 비롯해 조헌, 정문부, 유관순, 논개, 박팽년, 김만덕 등 7점에 이른다. 얼굴과 골격뿐 아니라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복식과 머리 형태까지 조사하는 방식으로 역사적 인물을 복원해 왔다.

영상 작품과의 협업도 이어져 왔다. 2003년 영화 ‘스캔들’ 외에도 영화와 드라마에 필요한 초상화를 제작했고, 2022년 넷플릭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는 그가 그린 유관순 열사의 표준영정이 극 중 10만 원권 지폐 도안에 활용됐다. 당시 그의 대표작품 4점도 함께 협찬됐다.

윤 교수는 1953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호는 석천(石川), 당호는 소석헌(素石軒)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2년 창원대 교수로 임용됐고, 1986년 충남대로 자리를 옮겨 회화과 한국화전공을 신설했다. 2020년 2월까지 40여 년간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이후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두 초상화가 남긴 23년의 기록

2003년 ‘숙부인 정씨 초상’을 그렸던 화가가 23년 뒤 같은 이야기에서 새롭게 태어난 ‘희부인’을 다시 그렸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시대극의 미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뿐 아니라, 한 작가의 초상화 기법과 해석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윤 교수는 연초전을 운영하는 홍분희의 허영과 욕망을 드러내는 극 중 설정과 한선화의 용모, 화려한 복식과 장신구를 반영해 작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하량교 희부인 초상〉은 넷플릭스 8부작 ‘스캔들’ 1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윤 교수는 1995년부터 유관순 열사 영정을 비롯해 논개, 김만덕, 박팽년, 정문부, 도미부인, 조헌 등 국가표준영정 7점을 제작했으며, 2020년에는 한국천주교 103위 순교성인 중 이광열, 김임이, 손소벽, 권희, 유진길, 유대철 등 표준성인화 6점을 제작해 천주교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았다. 2022년에는 대전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2023년에는 화업 49년을 조명하는 ‘화업49년 윤여환 회고전’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