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독립운동가 집터라고?…주변 모습 봤더니 말문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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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촌 김가진 선생 집터 표지석 주변에 쓰레기 수북
사진 확산에 누리꾼들 씁쓸…역사 유적 관리 필요성 지적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 선생의 집터 표지석 주변에 각종 쓰레기가 쌓인 모습이 공개돼 씁쓸함을 자아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촌의 동농 김가진 선생 집터 표지석 주변에 쓰레기봉투와 재활용품이 놓여 있다. / 스레드 @cupic_photo 캡처
서울 종로구 서촌의 동농 김가진 선생 집터 표지석 주변에 쓰레기봉투와 재활용품이 놓여 있다. / 스레드 @cupic_photo 캡처

23일 뉴스1 등에 따르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 서촌 거리에서 촬영된 김가진 선생 집터 표지석 사진이 올라왔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김가진 집터’라고 적힌 작은 표지석을 종이상자와 비닐봉지 등 재활용 쓰레기가 둘러싸고 있다.

사진을 공개한 A 씨는 서울에서 궁궐과 박물관 등을 소개하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평소 서촌을 자주 오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저 집터 표지석을 빙 둘러서 쓰레기가 나와 있는데 뭔가 가슴이 아팠다”며 문제의 사진을 공개했다.

A 씨는 독립운동가가 살던 집은 사라지고 그를 기억하기 위해 표지석만 남은 상황에서 굳이 그 주변을 쓰레기 배출 장소로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을 나타냈다. 이후 사진이 확산하자 그는 가끔 밤에 이곳을 지날 때면 표지석 주변에 재활용 쓰레기가 놓여 있는 모습을 봤다며 일회성 장면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사진을 접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꽃을 놔도 모자랄 곳인데 안타깝다”, “조금만 다른 곳에 내놓을 수 없었나”, “구청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다만 공개된 사진만으로 해당 쓰레기가 불법으로 투기된 것인지 정해진 수거 시간에 맞춰 주변 주민이나 상인이 정상적으로 배출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한 A 씨 역시 쓰레기를 배출한 특정 주민이나 상인을 비난하기보다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설치한 표지석 주변이 사실상 생활 쓰레기 배출 공간처럼 사용되는 현실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서울시가 세운 역사 표지석…서촌 한복판에 남은 김가진의 흔적

김가진 집터는 서울시가 관리하는 항일독립운동 관련 역사문화유적 표석 가운데 하나다.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9-1 일대에 설치돼 있으며, 현재 옛집은 남아 있지 않다. 서울시는 서촌 일대 역사문화 탐방 자료에서도 이곳을 김가진 선생이 살았던 집터로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작은 표지석이 이곳이 김 선생의 옛 거처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서울시 역시 서촌 역사 탐방 자료에서 이곳을 김가진 선생이 살던 집터라고 소개하고 있다. 현재 옛집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서울시가 설치한 작은 표지석이 그 자리를 알리고 있다.

서촌에는 김가진 집터 외에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물과 사건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서울시와 관련 기관들은 사라진 건물이나 역사적 장소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표지석을 설치해 당시 공간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실제 건물이 사라진 경우에는 이 같은 표지석이 그 장소의 역사성을 알리는 사실상 유일한 흔적이 되기도 한다.

대한제국 고위 관료에서 독립운동가로

왼쪽부터 동농문화재단이 공개한 동농 김가진 선생의 모습과 대한제국 대례복을 입은 김가진 선생. / 동농문화재단·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제공
왼쪽부터 동농문화재단이 공개한 동농 김가진 선생의 모습과 대한제국 대례복을 입은 김가진 선생. / 동농문화재단·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제공

1846년 태어난 김가진 선생은 대한제국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이다. 병조참판 등을 역임했으며 독립협회 활동과 독립문·독립공원 조성에도 관여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에는 비밀 독립운동단체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로 추대됐다. 대동단은 귀족과 관료, 유림, 종교인, 상공인, 청년, 학생 등 다양한 계층을 하나로 묶어 독립운동 세력을 확대하려 했던 조직이다. 김가진은 이 조직의 총재를 맡아 활동했다.

당시 대동단은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을 중국 상하이로 망명시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시키려는 계획도 추진했다. 김가진은 의친왕보다 먼저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측과 협조를 모색했다. 의친왕 망명 계획은 일제 경찰에 발각돼 실패했지만 대동단의 대표적인 독립운동으로 기록돼 있다.

대한제국의 고위 대신 출신이던 김가진은 고령에도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22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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