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교수가 말하는 '주변인 중 사이코패스 10초만에 파악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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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만 올라가는 가짜 미소 짓는 사람이 사이코패스

윌리엄 더글러스 전 미국 연방대법관은 오랫동안 '인권의 수호자'로 불렸다. 1960년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될 위기에 놓인 한 남성을 두고 그는 "동성애자라고 해서 사이코패스로 몰 수는 없다"며 홀로 반대 의견을 낸 인물이었다. 재판정에서 그는 편견에 맞서는 대법관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무실로 돌아온 더글러스 전 대법관의 얼굴은 전혀 달랐다. 그는 자신을 보좌하던 젊은 재판연구원(로클럭)들에게 학벌을 조롱하고 인격을 모독하기 일쑤였다. 한 연구원에게는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넌 해고야"라고 통보했다. 그는 이 연구원의 결혼식장에 아내와 함께 나타나 세상 좋은 사람처럼 축하를 건넸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아내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종신직 대법관으로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그는 세 번 이혼했다. 아랫사람들은 그의 변덕을 견디면서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법의학자인 유성호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유성호의 데맨톡'에 올린 '우리 주변에 은밀히 숨어있는 독성 인간' 영상에서 더글러스 전 대법관의 사례로 이야기를 열었다. 유 교수가 소개한 책은 리앤 텐 브링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오카나간캠퍼스 심리학과 부교수가 쓴 ‘독성 인간(Poisonous People)’이다. 유 교수는 이 책을 "2026년에 읽은 입문 사회학 책 중 단연 최고"라고 평가했다.

인구의 20%가 '어둠의 성향'… 독을 뿜는 네 유형

책이 말하는 '독성 인간'은 단순히 성격이 까다롭거나 예의 없는 사람이 아니다. 사이코패스는 그중 극단적인 한 갈래다.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타인을 목적을 위한 도구로 여기며, 죄책감 없이 거짓말과 조종을 일삼는 반사회적 성격 특성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 임상에서는 흔히 사이코패시 체크리스트 개정판(PCL-R)으로 측정한다. 국내에서는 대체로 24점 이상이면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유 교수는 "22점, 26점, 28점이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점수 자체보다 그 성향이 삶에 미치는 파장에 주목했다.

강호순,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범으로 대표되는 사이코패스는 전체 인구의 약 1%를 차지한다. 문제는 그 바깥에 있다. 유 교수는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사람, 이른바 '어둠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20%에 이른다"고 전했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25명 가운데 한 명 정도는 어둠의 성향이 매우 짙은 독성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네 영역에서 드러난다. 첫째,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기만적이다. 거짓말에 능하고 사람을 조종한다. 둘째, 감정이 냉담하고 무정하다. 인질극에서 "집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설득이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셋째, 위험을 대하는 방식이 무모하다.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아 두려움 없이 스릴을 좇고, 도박이나 알코올에 쉽게 빠진다. 넷째, 사회적 규범을 무시한다. 유형으로 보면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스트, 타인을 조종하고 착취하는 마키아벨리스트,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디스트가 있다. 이 네 가지가 뒤섞여 나타나기도 한다. 공개 석상에서 망신을 주며 즐거워하는 직장 상사,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배우자, 면전에서 거짓말하는 동료, 친절한 척하며 물건을 훔치는 이웃, 죄책감 없이 친구를 괴롭히는 중학생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악이 주도권을 잡는다"… 태움도 여기서 시작된다

유 교수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한 대목은 "악랄한 소수가 전체를 망친다"는 것이다. 썩은 사과 한 알이 궤짝 전체를 썩게 만들 듯 독성 인간 한 명이 주변 사람과 조직 전체를 병들게 한다. 유 교수는 간호사 사회의 '태움' 문화를 예로 들었다. 누군가 시작하면 주변이 물들고, 어느새 관습처럼 굳어진다는 설명이다.

왜 악이 주도권을 잡을까. 유 교수는 지하철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는 사람을 예로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불편해도 참는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악을 쓰는 사람이 나타나면 선한 다수는 다투기 싫어 물러선다. 회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선동하고 악다구니를 쓰면 사람들은 갈등을 피하려 침묵한다. 그렇게 주도권은 독성 인간에게 넘어간다.

이런 성향이 정치로 향하면 사회 전체가 비용을 치른다. 유 교수는 "책에 정치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오는데 미국 사례이지 한국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책에 따르면 어둠의 성향을 가진 이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민주적 절차를 오염시키고, 정치를 제로섬 게임으로 만든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논리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고, 유권자의 저급한 감정에 호소하며 비열한 선거 운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냉혹해도 일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통념도 데이터 앞에서 무너진다. 유 교수는 펀드 매니저 연구를 소개했다. 각 운용사가 공개한 홍보 영상을 분석해 사이코패스 성향이 짙은 매니저와 인성이 훌륭한 매니저를 나눠 성과를 비교한 결과 인성이 정상적인 매니저들이 30% 이상 더 많은 수익을 냈다. 유 교수는 "나도 예전에는 대가들은 다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인격이 훌륭한 분이 연구도 잘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에게 쉽게 끌리는 이유도 짚었다. 사이코패스는 기만과 조종으로 주도권을 쥔 뒤 공포감을 심고, 그러다 인간적인 모습을 아주 조금만 보여주면 상대의 마음을 흔든다는 것이다.

10초 만에 알아채는 법, 그리고 일곱 가지 대응 전략

책에는 독성 인간을 단 10초 만에 알아보는 방법도 담겼다. 유 교수는 크게 두 갈래를 소개했다. 하나는 말이다. 상대가 하는 말 속에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있는지 살피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표정, 그중에서도 미소다.

유 교수가 특히 힘줘 강조한 것은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를 가르는 눈가다. 진짜 감정에서 우러나온 미소는 입꼬리뿐 아니라 눈가 근육까지 함께 움직여 눈 주위에 주름이 잡힌다. 이런 미소를 '뒤센 미소'라고 부른다. 반면 가짜 미소는 입꼬리만 위로 올라가고 눈은 웃지 않는다. 유 교수는 "입꼬리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끌어올릴 수 있지만 눈가 근육은 진짜 감정과 연결돼 있어 의식적으로 꾸며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억지로 지어낸 어색한 미소, 이른바 '입만 웃는 미소'를 포착하는 것이 첫 단서라는 것이다.

책은 여기에 더해 16개 항목의 체크리스트를 제시한다. 예컨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을 조종하는 등 무슨 짓이든 하는가'와 같은 문항이다. 유 교수는 이런 항목을 하나씩 따져보면 상대가 '다크니스', 즉 어둠의 영역에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대응 전략은 일곱 가지다. 유 교수는 이 중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명확한 경계와 규칙을 정하고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이다. "한 번 때린 뒤 '내가 미쳤나 보다. 한 번만 봐 달라'고 사과하는 것을 받아주면 안 된다"는 설명이다. 둘째, 상대에게 나를 지배할 권한을 주지 않는 것이다. 목소리가 커지면 물러서는 순간 주도권이 넘어간다. 일곱 번째 전략은 얼굴을 맞대고 말하지 말고 문서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기만에 능한 이들일수록 카카오톡이나 문서 등 근거를 남겨야 한다. 유 교수는 어느 소시오패스 변호사의 회고록을 인용해 "자신의 잘못이 입증될 수 있을 때만 규칙을 지켰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면 될까. 유 교수는 "배척은 어렵다"고 했다. 소외시킬수록 더 교활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이코패스는 유전과 양육이 함께 작용해 반드시 생겨난다. 20%를 모두 가둬도 또다시 20%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과 함께 살되 분명한 경계를 긋고 주도권을 넘기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결론이다.

리더를 향한 당부도 이어졌다. 유 교수는 "냉혹하고 남을 무시해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라며 "훌륭한 인성을 가진 리더가 더 나은 생산성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나부터 물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배우자와 아이에게 푸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숨도 못 쉴 만큼 즐겁게 읽었다"며 "읽다 보면 주변의 수많은 사람이 떠오를 것"이라고 일독을 권했다.

'우리 주변에 은밀히 숨어있는 독성 인간'이란 제목으로 ‘유성호의 데맨톡’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