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금성산서 국내 현존 최고 화약무기 ‘황자화통’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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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대·화기명·무게·감독자·장인 명문 확인…보물급 문화유산 가치 주목
1377년 또는 1437년 제작 추정…최고 연대 총통보다 최소 118년 앞서

제작 시기와 화기명, 무게, 제작 감독자, 장인의 이름까지 확인할 수 있는 명문이 새겨진 데다 출토 위치도 명확해 한국 화기 발달사와 금성산의 군사·역사적 가치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나주시는 금성산에서 발견된 소형 화약무기 황자화통에 대한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의 조사·분석 결과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됐다고 21일 밝혔다.
◆2023년 지뢰탐지 과정에서 발견
황자화통은 지난 2023년 11월 나주시 경현동 금성산성 주변에서 발견됐다. 당시 나주시가 금성산 등산로 개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육군이 지뢰탐지를 진행했고, 금성산 9부 능선 암벽 단애 하부의 표토 약 10㎝ 아래에서 유물이 확인됐다.
발견 이후에는 오염물 제거를 비롯해 컴퓨터단층촬영(CT), 엑스레이(X-ray), 주사전자현미경(SEM-EDS), 금속현미경, 납동위원소 분석 등 다양한 과학조사가 진행됐다.
연구진은 과학분석 결과와 유물에 새겨진 명문, 화통의 형태, 출토 장소의 역사적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황자화통의 제작 시기와 성격을 분석했다.
◆구리·주석·납으로 만든 소형 휴대 화기
황자화통은 구리와 주석, 납으로 제작된 청동 주조품이다. 전체 길이는 23.75㎝, 구경은 1.66㎝, 무게는 1,032g이다.
유물은 발사체가 나가는 총부리와 화약을 넣는 약통, 나무 손잡이를 끼우는 모병(冒柄)으로 구성돼 있다. 크기와 구조를 고려할 때 개인이 휴대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소형 화기로 추정된다.
과학분석 결과 약통은 둥근 형태이며, 약통에서 총구 방향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구조를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화약 폭발 과정에서 화통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석 함량을 조절한 제작기술도 적용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고려 말 또는 조선 초 금속 주조기술과 초기 화약무기 제작기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작 시기와 장인까지 기록한 명문
황자화통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작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가 명문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모병 부분에는 6행 27자의 글자가 음각돼 있다. 명문에는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고, 무게는 1근 14량이며, 제작 감독자는 녹사 안휴보, 장인은 석’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총부리에 별도로 새겨진 ‘팔(八)’자까지 포함하면 유물에서 확인되는 글자는 모두 28자다.
하나의 화약무기에 제작 시기와 화기명, 무게뿐 아니라 제작을 감독한 사람의 관직과 이름, 실제 제작에 참여한 장인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 같은 명문은 유물의 제작 배경과 당시 국가의 무기 제작·관리 체계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377년 또는 1437년 제작 추정
명문에 새겨진 ‘정사(丁巳)’의 정확한 연대는 현재 두 가지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연구진은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 또는 조선 세종 19년인 1437년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화약무기류 가운데 제작연대가 확인되는 가장 이른 유물은 1555년에 제작된 천자총통이다.
황자화통이 1437년 제작으로 확인되더라도 천자총통보다 118년 앞선다. 만약 1377년 제작으로 밝혀질 경우 우리나라 화약무기 실물 자료의 역사를 100년 이상 앞당기는 유물이 된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제작연대가 어느 시기로 확정되더라도 현재 보물로 지정된 총통류보다 최소 118년 이상 앞선 유물”이라며 “우리나라 화약무기와 금속주조 기술의 역사를 새롭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다만 1377년과 1437년 가운데 제작 시기를 하나로 확정하기 위해서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제작된 다른 화약무기류와의 비교·검증이 필요하다. 현재 해당 시기의 비교 유물이 충분하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좁히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이어져야 할 전망이다.
◆금성산의 군사적 가치도 재조명
황자화통은 출토지가 명확하다는 점에서도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다.
금성산은 나주의 진산이자 영산강 유역을 조망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후삼국시대에는 왕건과 견훤 세력이 맞섰던 지역이며,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머물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1270년 삼별초가 나주를 공격했을 당시에는 금성산성을 중심으로 치열한 항전이 펼쳐졌다. 금성산신은 고려 충렬왕 3년인 1277년 정녕공에, 조선 태조 2년인 1393년에는 호국백에 봉해질 만큼 국가적 제사의 대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번 황자화통 발견은 오랫동안 영산강 유역의 군사·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해온 금성산과 금성산성의 역사적 성격을 실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국립고궁박물관서 첫 공개
황자화통은 9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오는 12월에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에도 출품돼 우리나라 화약무기 발전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유물로 소개될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1975년 쌍자총통을 시작으로 지자총통, 세총통 등 화약무기류 14건, 세부 수량 16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황자화통은 이들 유물보다 이른 제작 시기와 명확한 출토지, 제작 주체와 무게를 확인할 수 있는 명문을 갖추고 있어 보물급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우리나라 화약무기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귀중한 유물인 황자화통이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에서 발견된 것은 나주가 간직한 역사문화자원의 깊이와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발견을 계기로 금성산과 금성산성이 지닌 군사적·역사적 가치가 더욱 널리 알려지고, 황자화통이 우리나라 화약무기의 초기 역사를 밝히는 소중한 국가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