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라는 경기도…‘추석 인사’ 현수막 걸려다 결국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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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긴축재정으로 도비 지원 30% 축소, 시군 부담 급증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한 직후 경기도가 도내 31개 시군에 추석을 맞아 도정과 도지사 홍보 현수막을 게시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던 사실이 알려졌다.
17일 한국일보다 단독보도한 내용이다.
재정 위기를 이유로 각종 사업을 줄이고 시군 보조사업의 도비 지원 기준까지 낮추는 상황에서 지사 명절 인사 현수막 게시를 요청한 것을 두고 일부 시군이 난색을 보였고, 경기도는 이후 추석 기간 시군 행정 게시대를 통한 홍보 현수막을 게시하지 않기로 했다.
경기도는 지난달 10일쯤 도내 31개 시군에 ‘옥외 행정용 게시대 게시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추석을 맞아 각 시군이 운영하는 행정용 게시대에 경기도의 정책 정보를 알리는 홍보 현수막을 게시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기도는 정책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고 도달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각 시군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공문에는 추미애 지사의 추석 인사 현수막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됐다. 경기도는 ‘9월 경기도지사 명절 추석 인사’라는 항목을 제시하고 홍보 기간을 9월 18일부터 26일까지로 안내했다. 당시 구체적인 문구와 디자인은 추후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각 시군에 게시 가능 여부를 검토하고 게시 장소를 회신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수막 시안도 함께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문을 받은 시군은 각 지역의 행정 게시대 운영 상황을 확인해 가능 여부를 경기도에 회신했다. 일부 시군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행정용 게시대의 숫자까지 파악해 경기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부 시군은 행정용 게시대를 특정 지방자치단체장의 명절 인사나 개인 홍보 성격의 메시지에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별도의 회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군이 보유한 행정용 현수막 게시대 규모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적게는 10여곳, 많게는 100곳이 넘는 게시대를 운영하는 시군도 있다. 행정 게시대는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이나 공익성 정보를 주민에게 알리기 위해 활용하는 시설인 만큼, 어떤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할지는 각 지자체의 운영 기준과 지역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번 공문이 논란이 된 배경에는 경기도의 재정 긴축 정책이 있다. 추 지사는 지난 8월 5일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추 지사는 세입 감소와 누적된 재정 부담을 이유로 낭비성 예산을 중단하고 업무 경비를 줄이는 등 긴급한 재정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재정 비상 선언 이후 세출 구조조정에도 들어갔다. 당초 약 7700억원 규모의 감액 추경을 계획했으며, 이후 2회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1300여개 사업을 대상으로 5465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행사와 일회성 사업, 유사·중복 사업 등을 줄이고 사업 규모와 추진 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행정운영경비 222억원과 3급 이상 고위공직자 업무추진비 4억원도 감액 대상에 포함됐다.
추 지사는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하면서 경기도의 재정 여건이 상당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943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으며, 이는 당시 발행 한도 9460억원의 99.6%에 해당했다. 지난해 5월에는 특정 용도로 사용하도록 정해진 기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한 뒤 5588억원을 일반회계 등으로 전입해 사용하기도 했다.
추 지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재정 비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도지사와 고위공직자의 업무 경비를 줄이고 일회성·선심성 행사와 불요불급한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연구용역과 민간위탁·대행사업도 재평가하고 조직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겠다고 했다. 지방세입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방소비세 확충과 국고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 개선 등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재정 긴축의 영향은 경기도청 내부 사업에만 그치지 않고 31개 시군에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는 2027년도 본예산 편성 지침을 통해 시군 보조사업의 도비 보조율을 최대 30%로 제한하는 방안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도와 시군이 비슷한 비율로 부담하던 일부 사업에서는 시군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기존 시군 보조사업 961개 가운데 421개가 이 같은 도비 보조율 조정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됐다. 청년·농민 기본소득이나 지역화폐 발행 지원 등 일부 사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시군에서는 사업 지속 여부와 지방비 부담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시군에 추석 도정 홍보 현수막 게시 협조를 요청한 것이 알려지면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문의 취지와 시점이 적절한지를 두고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비 지원을 축소하면서 한편으로는 도정 홍보에 행정 게시대를 활용해달라고 요청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의회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방성환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은 경기도의 긴축재정으로 각종 복지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에서 시군에 도정 홍보를 더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시기상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이는 도비 보조율 축소로 재정 부담이 커진 시군의 상황과 도정 홍보 요청이 동시에 제기된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경기도는 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공문의 목적이 처음부터 추 지사의 명절 인사 현수막을 일괄 게시하려는 데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해당 공문이 각 시군의 행정용 게시대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지사 명절 인사 현수막은 여러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였다는 설명도 내놨다.
경기도는 이후 추석 명절 기간 시군 행정 게시대를 활용한 도정 홍보 현수막을 게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당초 공문에 기재됐던 9월 18~26일 홍보 기간에 시군 행정 게시대를 이용해 추 지사의 명절 인사 현수막을 일괄적으로 게시하는 계획은 진행되지 않게 됐다.
경기도는 재정 비상 상황과 관련해 별도의 재정위기 극복 전략 태스크포스(TF)도 가동했다. 경기도는 지난 8월 6일 주형철 경제부지사를 중심으로 TF를 구성하고 재정 구조 개선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세입 구조와 세출 구조를 함께 살펴 재정 운용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추 지사가 제시한 재정 대응책 가운데 일부 사업은 실제로 축소 또는 중단 논란에 놓였다. 경기도는 재정 비상 선언 당시 올해 10~12월 노인 장기요양 예산 1234억원,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육성 10억원, 친환경 우수 농축산물 학교급식 지원 34억원, 산후조리비 지원 80억원, 학교 급식비 지원 584억원 등 일부 사업의 예산 부족 상황을 설명했다. 추 지사는 동시에 도민의 생명과 안전, 취약계층 보호 등 필요한 민생 예산은 지키겠다고 밝혔다.
시군 보조사업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도비 보조율을 최대 30%로 제한하는 방안으로 인해 청년·농민 관련 사업 등의 지방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시군은 기존에 도와 시군이 함께 부담하던 사업을 계속하려면 자체적으로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

17일 경기도 측은 현수막 관련 논란에 대해 "담당 부서장 부재(공석) 상태에서 과장이 관례적으로 추석 인사(현수막) 수요를 조사하려던 문서"라며, "도지사 보고가 되지 않은 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비서실 측에서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20일에 중단할 것을 통보했고, 21일에 각 시군에 중단 통보가 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