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한 주민 접촉 규제 대폭 완화 추진…36년 만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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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북한 주민 접촉 ‘사전 불허’ 권한 삭제 추진
신고 의무·미신고 과태료는 유지…국정원·법무부도 수용

정부가 우리 국민의 북한 주민 접촉을 사전에 불허할 수 있는 권한을 36년 만에 없애는 방안을 추진한다.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시 기정동 마을에 휘날리는 인공기의 모습. / 뉴스1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성시 기정동 마을에 휘날리는 인공기의 모습. / 뉴스1

17일 통일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는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의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은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의2 제3항을 삭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무부와 국가정보원도 법 개정에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우리 국민이 북한 주민과 접촉하려면 통일부 장관에게 미리 신고해야 한다. 통일부 장관은 접촉이 남북교류와 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러한 '수리 거부' 권한이 사라진다. 북한 주민을 만나기 전에 신고해야 하는 의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통일부가 해당 조항을 근거로 북한 주민 접촉 신고를 거부한 사례는 2022년 4건, 2023년 44건, 2024년 25건, 2025년 16건이다.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법의 목적과 취지인 교류협력 촉진과 민간 교류의 자율성 확대, 신고제에 맞는 제도 운영 등을 고려해 개정안을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7월 통일부 내부 지침인 '북한주민 접촉신고 처리 지침'도 폐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90년엔 정부 '승인' 필요…36년간 규제 단계적 완화

이산가족 상봉행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이산가족 상봉행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북한 주민 접촉에 대한 규제는 1990년 남북교류협력법이 만들어진 이후 단계적으로 완화돼 왔다. 법 제정 당시에는 북한 주민을 만나려면 국토통일원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2005년 법 개정을 통해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고, 정부가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을 이유로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2009년에는 다시 법을 고쳐 남북교류와 협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 등으로 거부 요건을 좁혔다.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 같은 정부의 접촉 제한 권한이 1990년 법 제정 이후 36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다만 현재 법안은 국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돼 있어 아직 시행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법 개정 전까지는 현행 신고·수리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국정원·법무부는 반대했다가 입장 바꿔

국정원과 법무부가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점도 눈에 띈다. 국정원은 지난해 9월 국회에 수리 거부 요건을 없앨 경우 남북 교류질서 관리에 사각지대가 생기고 북한의 대남공작 활동에 악용되는 등 국가안보상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법무부 역시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죄를 예방하고 차단하는 측면에서 거부 사유를 없애기보다는 구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두 기관은 지난 2월 통일부가 주도한 관계부처 협의에서 개정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국정원은 남북교류협력법 주무 부처인 통일부의 남북교류 활성화 정책 방향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법무부도 당초 신중 검토 의견을 냈지만 정부의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는 통일부 입장을 존중했다고 설명했다.

"불법 대북송금 걸러낼 장치 약화" 우려도

정동영 통일부 장관 / 뉴스1
정동영 통일부 장관 / 뉴스1

법 개정을 두고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접촉 신고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없애면 불법 대북송금이나 대남공작 등과 연결될 위험이 있는 접촉을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가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철수 의원은 "민간교류의 문을 열어 확대하는 것과 국가의 눈을 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위험성이 명백한 접촉을 사전에 막을 권한을 없애기에 앞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통일부는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북한 주민과의 접촉이 아무런 절차 없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전 신고 의무는 그대로 남고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등 제재 규정도 유지된다. 통일부는 현행 수리 거부 사유가 포괄적으로 규정돼 행정기관이 접촉 허용 여부를 폭넓게 판단할 여지가 있다며, 이를 없애 신고제 본래 취지에 맞게 제도를 바꾸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북한 주민 접촉 신고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신고한 접촉에 대해 정부가 현행법상 사유를 들어 사전에 불허할 수 있는 권한을 삭제하는 것이다. 신고를 통한 접촉 관리체계와 미신고에 따른 제재는 그대로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