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포즈 짓던 아이가 튕겨 나갔다”… 일본서 빈번하게 벌어진 '묻지마 밀치기'

작성일

일본의 고질병 '부츠카리족'

올해 초 일본 도쿄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여자아이를 성인 여성이 뒤에서 거칠게 밀치고 가는 모습이 영상으로 나돌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장면은 전 세계 SNS를 타고 퍼지며 일본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지목돼 온 '고의 충돌'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 캡처.

여행 마지막 밤, 사진 찍던 아이가 튕겨 나갔다


사건은 지난 2월 24일 한 대만 국적 여성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영상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이 여성은 일본 여행 마지막 밤 시부야의 대표 관광지인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딸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행 마지막 밤, 시부야 유명 교차로에서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고약한 사람이 아이를 세게 밀치고 가버렸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영상 속에서 여자아이는 교차로 한복판에서 등을 돌린 채 손가락으로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때 뒤쪽에서 마스크를 쓴 여성이 걸어오더니 아이를 어깨와 팔로 강하게 밀쳤고, 아이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화면 밖으로 튕겨 나가듯 쓰러졌다. 가해 여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건널목을 건너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가 다쳤는지, 이후 경찰에 신고가 이뤄졌는지 등 구체적인 후속 상황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는 사방에서 보행자가 동시에 건너는 것으로 유명한 도쿄 대표 명소로, 신호가 바뀔 때마다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여러 방향에서 교차로를 가로지르는 진풍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꼽히다 보니 교차로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고 인증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영상이 촬영된 시점에도 많은 사람이 길을 건너고 있었지만 극심하게 혼잡한 수준은 아니었고, 아이 옆으로는 충분히 피해 갈 만한 공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영상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져 조회수가 1500만 회를 넘겼고, 국내외 여러 언론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잇따라 소개됐다.


"혐오범죄 아니냐" 의혹 나왔지만…무차별 밀침 정황도


사건 초기에는 피해 아동이 대만 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일본 내 일부 극우 세력의 반중 정서에서 비롯된 혐오범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논란이 커지자 중국 대사관까지 이 사안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영상을 자세히 보면 가해 여성이 이 아이 앞서 성인 남성 한 명과 다른 어린이 한 명도 잇따라 부딪히며 지나간 정황이 확인됐다. 특정 국적이나 성별, 연령을 가리지 않고 마주치는 보행자를 무차별적으로 밀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특정 대상을 겨냥한 증오범죄보다는, 일본에서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지적돼 온 이른바 '부츠카리족(고의 충돌족)'의 소행일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일본의 고질병 '부츠카리족'…과거에도 논란


부츠카리는 혼잡한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타인과 몸을 부딪쳐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일본식 조어다. '부딪치다'라는 뜻의 일본어 동사 '부쓰카루(ぶつかる)'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만원 지하철이나 번화가처럼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종종 목격된다. 일본에서는 과거에도 도쿄 번화가에서 한 남성이 여성들만 골라 연속으로 몸을 부딪치고 다니는 사례가 사회 문제로 불거진 적이 있다. 특정 부류의 보행자를 반복적으로 표적 삼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사건처럼 국적과 성별, 연령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부딪히는 유형도 함께 보고돼 왔다. 일본 매체들은 이런 행위가 명백한 폭행에 해당할 수 있음에도 현장에서 목격자나 피해자가 즉시 대응하기 어려운 특성 탓에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해 왔다. 이번 사건 역시 이런 부츠카리족의 최근 사례로 지목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충분히 피할 공간이 있었는데도 아이가 넘어질 정도로 세게 밀친 것은 명백한 폭행"이라며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은 아이를 대상으로 한 이런 행위는 특히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혼잡한 교차로 한복판에서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다른 보행자들의 통행을 방해했을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이런 부츠카리 현상의 배경으로는 일본 대도시 특유의 높은 인구 밀도와 이로 인한 개인 공간(퍼스널 스페이스) 침해 스트레스가 꼽힌다. 마음대로 걷기 어려울 만큼 과밀한 도심 환경에서, 공공장소에서라도 어떻게든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려는 심리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특히 최근 급격히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으로 도심 혼잡도가 한층 심해지면서, 관광객과 현지인 간 문화·매너 차이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도 겹쳐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처럼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일수록 사진 촬영을 위해 걸음을 멈추는 방문객과, 정해진 시간 안에 길을 건너야 하는 현지 통행인 사이의 마찰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