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소녀, 온몸에 피멍 들고 캡사이신 검출… 그런데 경찰은 그냥 사건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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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아버지, 서울경찰청에 수사심의 요청
서울 성북구에서 발생한 44개월 여아 사망 사건을 경찰이 입건 전 조사(내사) 단계에서 종결한 판단이 적절한지 심의해달라는 신청이 제기됐다. 사건이 벌어진 지 7년 만이다.

숨진 A양의 부친 B씨가 지난 7일 서울경찰청에 수사심의를 신청했다고 연합뉴스가 13일 보도했다. A양은 2019년 6월 28일 머리 부위 손상으로 숨졌다.
성북경찰서는 지난 4월 A양 사망 사건을 입건 전 조사 단계에서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혐의없음'으로 종결했다. B씨는 이 처분이 적절했는지 등을 심의해달라고 요청했다.
A양의 온몸에는 멍과 상처가 있었다. 응급실 의료진도 아동학대를 의심했다. 그런데도 경찰이 정식 입건 없이 변사 사건으로 내사종결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B씨 신청 취지다. 내사종결이란 정식 수사(입건)를 시작하기 전 범죄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다고 판단해 조사를 마무리하는 처분을 뜻한다.
A양의 계모가 A양을 혼내는 과정에서 핫소스 등 매운 소스를 먹였다는 정황도 제기됐다. A양 언니의 해바라기센터 진술 등을 통해 드러난 내용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A양을 부검한 결과 혈액에서도 캡사이신이 검출됐다. B씨는 이런 점을 근거로 계모 등의 학대 여부에 대한 수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과수는 A양 부검감정서에 "사인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는 없지만, 상당량의 캡사이신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추정된다"며 "이를 A양이 스스로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적었다.
국과수는 또 "사망에는 머리 손상이 주요하게 작용했고, 기존에 갖고 있던 전신 상태 저하(고도의 탈수 등)가 함께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며 "머리 손상의 발생 기전을 부검 소견만으로 특정하기 어렵고, 타인의 개입 소견으로 볼 만한 단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국과수는 "캡사이신이 검출되는 등 스스로 시행했다고 보기 어려운 모습도 확인되므로 타인에 의한 학대의 정황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고 했다.
감정서에 첨부된 A양 사진을 보면 머리와 몸통, 양팔, 양다리 등 전신에 멍이나 피하출혈 흔적이 있다.
평소 출장이 잦아 아이가 학대당한 정황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B씨는 감정서 내용을 토대로 아이의 핫소스 섭취 경위와 머리 손상, 전신 외상의 원인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씨는 "특정인의 형사 책임을 확정해달라는 게 아니라, 당시 경찰 수사 종결 판단의 적정성과 추가 수사 필요성에 대한 수사심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사심의는 고소인이나 고발인 등 사건 관계인이 수사 절차나 결과에 불공정, 부적법이 있다고 판단할 때 제기할 수 있는 절차다. 신청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변호사, 법학자 등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린다. 심의를 거치면 '보완·재수사', '신속 처리', '부서·관서 이송·재지정' 등을 지시할 수 있다. 강제성은 없지만 당한 이유 없이 거절하기는 어렵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시행을 앞두고 경찰 수사에 대한 견제 장치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라 해당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경찰 단계에서 사건이 부실하게 처리될 경우 이를 걸러낼 장치가 충분한지에 대한 문제와 맞닿아 있어서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지난 7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어 지난달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시행일은 다음달 2일이다. 개정안은 검찰의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을 모두 폐지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은 앞으로 사건을 직접 다시 수사할 수 없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방식만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개정안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이제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과연 앞으로는 완전히 안전한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수사 개시부터 종결까지 막대한 권한을 갖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명백한 수사상 비위를 저지른 경찰에 대해서는 해임이나 파면 등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도 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서 경찰 권한이 전례 없이 막강해짐에도 이를 통제할 견제 장치는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가 막히면 경찰 수사에 미진한 부분이 발견돼도 이를 바로잡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우려는 최근 불거진 경찰 수사 논란과 맞물려 있다. 이른바 '장윤기 사건'에서는 부실 수사 의혹과 수사 정보 유출 논란이 제기됐다. 제주에서는 경찰이 실종자인 장미란(37)씨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채 실종 신고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부실 수사 사례가 잇따르면서 경찰 단계의 부실 처리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론도 신중한 쪽에 가깝다. 한국갤럽이 7월 14~16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검찰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61%로, '폐지' 응답 23%를 크게 앞섰다. KSOI가 7월 20~21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폐지에 '반대'가 55.3%, '찬성'이 27.4%였다.
야권은 견제 장치 없는 경찰 권력 확대를 우려한다. 비대해진 경찰 권력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검찰 권력의 집중을 끝내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오랜 개혁 과제를 완결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여당은 경찰 개혁을 통해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에 맞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