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영화 '가능한 사랑' 결국 해냈다... 이탈리아 현지서 전해진 소식
작성일
베네치아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이창동 “영화로 뭘 할 수 있는지 계속 질문”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았다.

'가능한 사랑'은 12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 '팔라초 델 시네마'(영화의 궁전)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한국 영화가 이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14년 만이다. 심사위원대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감독 개인으로는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은 지 24년 만의 베네치아 수상이다. 당시 '오아시스'는 이 감독에게 감독상을, 주연 문소리에게 신인배우상을 안겼다.
이번 심사위원단은 매기 질렌홀 미국 감독이 이끌었다. 심사위원대상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조니 토 감독이 무대에서 이 감독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 감독은 수상 무대에 올라 주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이 영화에 생명력을 준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네 분에게 감사드린다"며 "이 상은 여러분들의 것"이라고 했다.
이어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영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상을 주신 것을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이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그가 만든 일곱 번째 장편이자 첫 넷플릭스 영화다.
이 감독은 이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어 왔다. 대규모 정리해고와 파업 강경 진압이 잇따르던 시기를 소재로 삼으려 했으나 당시에는 다루기에 너무 민감하다고 판단해 접어 뒀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 든 이야기가 '가능한 사랑'으로 완성됐다. 세 시간에 가까운 분량의 문예적 드라마를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작품은 계급적 배경이 정반대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기로 얽히는 이야기를 그렸다. 설경구가 연기한 호석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강경 진압 이후 공장에서 해고된 뒤 무기력에 빠진 인물이다. 전도연이 연기한 그의 아내 미옥은 어려운 형편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호석과 미옥에게는 열 살 안팎의 아들이 있다. 아버지처럼 말수가 줄어든 아이는 얼굴에 틱 증상까지 보인다.
두 사람은 옛 동료의 장례식장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마주친다. 예지는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는 막대한 부를 지닌 집안의 아들이다.
미옥이 예지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로 하면서 두 부부의 삶은 예기치 않게 뒤섞인다. 파업의 후유증 속에서 호석 부부의 관계도 조금씩 어긋난다. 미옥은 상우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이들은 상대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며 관계, 계급, 욕망을 둘러싼 이야기를 이어간다.
전도연은 2007년 '밀양'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다. 이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것은 '밀양' 이후 처음이다. 설경구는 이 감독의 초기작 '박하사탕'(1999)과 '오아시스'(2002)로 이름을 알렸다. 조여정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부유한 집 안주인을 연기해 세계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톱스타인 조인성은 이 감독 영화엔 처음 출연했다.
상영 시간은 164분이다. 각본은 이 감독과 오정미 작가가 함께 썼다.

'가능한 사랑'은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지난 6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상영 직후 6분 넘게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공개 당일 나온 평단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었다. 평론가들은 네 배우의 앙상블을 특히 높이 평가했다. 트라우마와 상실, 존엄, 계급적 선망을 깊이 있게 파고든 작품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가능한 사랑'은 제99회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대표작으로도 선정됐다.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뉴욕영화제 상영도 앞두고 있다. 일부 극장에서는 오는 10월 23일 먼저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한편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마이 엘투키 감독의 '우먼 언노운'에 돌아갔다. 감독상(은사자상)은 일리야 흐르자놉스키 감독의 '다우', 심사위원특별상은 유발 아브라함·레이철 쇼르 감독의 '나자'가 각각 받았다. 남우주연상(볼피컵)은 '와일드 호스 나인'의 존 말코비치, 여우주연상은 '우먼 언노운'의 마틸데 아르셀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