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버추얼 한계 어디까지 깨나… 플레이브, 첫 월드 투어 인천서 저력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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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스타디움·첫 야외 공연 성공적으로 완주… 버추얼 공연의 확장 가능성 입증
블래스트 기술력에 멤버 역량 더해져… 약 3시간 채운 압도적인 무대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블래스트 제공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블래스트 제공

버추얼 아이돌의 공연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지난 12일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플레이브의 첫 스타디움 공연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위키트리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위키트리

플레이브는 지난 12일과 13일 이틀간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 2026년 첫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을 개최했다. 이번 공연은 플레이브가 데뷔 이후 처음 개최하는 월드 투어의 시작이자 첫 스타디움 입성, 첫 야외 콘서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그만큼 공연 전 우려도 있었다. 버추얼 아이돌은 실시간 모션캡처와 송출 기술을 기반으로 공연을 구현한다. 특히 대형 전광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날씨와 통신, 송출 등 변수가 많은 야외 공연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실시간으로 얼마나 빠르게 잡아낼 수 있는지도 관건이었다.

공연 전 이 같은 우려를 담은 위키트리의 질문에 소속사 블래스트는 “통신과 송출 환경 역시 유선 기반 인프라와 전문 파트너와의 사전 점검을 통해 안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형 야외 공연장인 만큼 더 큰 규모감과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니, 현장에서 확인해달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블래스트 제공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블래스트 제공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자신감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12일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압도적인 규모의 전광판이었다. 통상 대형 돔 공연에서는 가로 90m 안팎의 스크린만으로도 ‘초대형 LED’로 소개된다.

반면 이날 무대에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 가로 120m 이상, 세로 20m 이상의 LED가 설치됐다. 해당 LED는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진행된 아티스트 콘서트에 활용된 LED 가운데 최대 규모로, 단순히 멤버들의 모습을 크게 보여주는 영상 장치를 넘어 무대 자체로 기능했다. 공간에 맞춰 구성된 영상과 연출, 버추얼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아트 쇼를 보는 듯한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냈다.

공연은 오프닝 VCR과 함께 시작됐다.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운 영상만으로도 처음부터 상당한 몰입감을 줬다. VCR이 끝난 뒤 노아가 활을 쏘는 퍼포먼스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고, 객석은 일제히 팬라이트로 물들었다.

이어 ‘여섯 번째 여름’으로 본격적인 공연의 막을 올린 플레이브는 ‘숨바꼭질(Hide and Seek)’, ‘WAY 4 LUV’를 연이어 선보이며 첫 스타디움 공연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초대형 LED는 때로는 하나의 거대한 화면으로, 때로는 2분할과 3분할 화면으로 나뉘며 다섯 멤버의 얼굴과 퍼포먼스를 동시에 보여줬다.

오프닝 인사에서 플레이브는 “홍대에서 버스킹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며 감격스러운 소감을 전한 뒤 팬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특히 이날은 멤버 예준의 생일이기도 했다. 예준은 “살면서 생일에 콘서트를 해볼 일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콘서트를 열 수 있게 돼 감격스럽다”며 “교통이 편한 곳도 아닌데 많은 플리(팬덤명)들이 인천까지 와서 이곳을 꽉 채워주셔서 감사하다. 첫 야외 공연이라 더 특별하고 못 잊을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자 화려한 연출 못지않게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도 돋보였다. 아카펠라 구성인 ‘꽃송이들의 퍼레이드’에서는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이끌며 탄탄한 보컬 실력을 입증했다.

‘Chroma Drift’에서는 재즈 편곡과 콘트라베이스를 활용한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었다. 현실의 물리적인 무대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자유롭게 오가며 버추얼 공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출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멤버별 솔로 무대에서는 각 멤버의 콘셉트에 맞춰 의상과 분장이 바뀌었고, 그중에서도 팬들의 뜨거운 환호를 끌어낸 것은 새로운 헤어스타일이었다. 플레이브는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특성상 일반적인 아이돌처럼 컴백 때마다 헤어스타일을 크게 변화시키기 어렵다. 지난해 8월 KSPO DOME 공연에서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처음 선보였을 당시 공연장 지붕을 날릴 듯한 환호가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당시와 또 다른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변화를 줬다.

예준은 카펜터스(The Carpenters)의 ‘Close to You’를 선곡했다. 영화 ‘라라랜드’를 연상시키는 감성적인 분위기 속 메리골드 꽃다발을 들고 등장했고, 실제 댄서들이 등장해 페어 안무를 펼치며 현실과 버추얼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은호는 주니(JUNNY)의 ‘TASTE’ 무대에서 욕조에 누운 채 등장해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뒤 댄스 브레이크까지 소화했다. 하민은 세븐틴 호시의 ‘Spider’를 맨발로 선보이며 거미줄을 형상화한 포인트 안무와 압도적인 댄스 실력을 보여줬다.

노아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Good Boy Gone Bad’에서 관 속에서 깨어나는 뱀파이어로 변신했다. 송곳니부터 짙은 아이라인까지 세밀한 스타일링은 물론 곡에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와 탄탄한 라이브, 랩까지 소화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밤비는 샤이니의 ‘Sherlock’을 택했다. 본래 다섯 멤버가 함께 선보이는 고난도 퍼포먼스를 홀로 소화하면서도 안정적인 라이브를 놓치지 않았다.

솔로 무대가 끝난 뒤 멤버들이 차례로 인사를 이어가던 중 노아의 순서에서는 객석의 함성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아 한동안 진행이 어려워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기존 곡을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로 재해석한 무대도 눈길을 끌었다. ‘Watch Me Woo!’와 ‘Rizz’에 앞서 공개된 VCR부터 남달랐다. 초대형 LED 전체에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산수와 폭포가 펼쳐지고, 먹이 번지듯 변화하는 화면과 달, 연기 등 동양적인 이미지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전통적인 소재를 단순한 배경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대한 미디어아트처럼 재구성해, 올림픽 개막식을 떠올리게 할 만큼 웅장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VCR에서 구축한 분위기는 곧바로 ‘Watch Me Woo!’와 ‘Rizz’ 무대로 이어졌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전통 디자인 요소를 참고한 연출을 더했고, 멤버들은 비녀와 자개 문양이 들어간 두건, 부채 등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소품과 함께 등장했다.

여기에 수많은 댄서가 무대 위에 오르며 웅장한 ‘메가크루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특히 ‘Watch Me Woo!’ 은호의 솔로 랩 파트에서는 거대한 호랑이가 등장했다. 호랑이 위에 올라탄 채 랩을 쏟아내는 은호의 모습은 마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렬한 비주얼을 완성했다. 부채를 활용한 군무까지 이어지면서 버추얼 공연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동양적인 미감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음악 역시 콘셉트에 맞춰 새롭게 편곡됐다. 본래 ‘Watch Me Woo!’와 ‘Rizz’는 아프로 팝과 캐주얼 힙합을 기반으로 한 곡이지만, 이날은 가야금 선율을 비롯한 국악 요소를 가미해 전혀 다른 분위기로 재탄생했다. 기존 무대에서 제복과 가면 등 비교적 서양적인 이미지가 강조됐던 것과 대비되며 변화가 더욱 두드러졌다. 해당 편곡은 블래스트가 직접 작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블래스트 제공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블래스트 제공

색다른 편곡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록 버전으로 재탄생한 ‘버추얼 아이돌’과 ‘Dash’에서는 플레이브가 데뷔 이후 마주해온 편견과 저항의 서사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Hater들은 그냥 가세요”, “혁명은 시작됐어 일어나 영광은 우리의 것”과 같은 가사는 강렬한 록 사운드와 만나 힘을 더했다. 댄서들이 거대한 깃발을 흔드는 장면에서는 자신들을 둘러싼 편견에 맞서겠다는 플레이브의 메시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쉴 틈 없이 무대는 계속됐다. ‘Born Savage’, ‘Pump Up The Volume!’에 이어 처음으로 안무가 공개된 ‘그런 것 같아’까지 선보였다. ‘그런 것 같아’는 댄서 아이키가 안무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대마다 화려한 연출도 돋보였다. 뉴잭스윙 기반의 레트로 곡 ‘그런 것 같아’에서는 펌프 게임을 활용한 연출을 선보였고, ‘Pixel world’에서는 팬덤 ‘플리’를 픽셀로 표현해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장면을 구현했다. 곡에 따라 편곡과 의상은 물론 무대를 구성하는 배경과 공간까지 끊임없이 변화했다. 현실의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곡마다 전혀 다른 공간을 펼쳐내면서 플레이브 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무대를 실제 공연의 경쟁력으로 만들어낸 데에는 블래스트의 기술력과 제작 역량이 한몫했다. 버추얼 IP는 엔지니어와 개발, 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동시에 투입돼야 하는 만큼 일반적인 아티스트 IP보다 운영에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버추얼 IP 운영에 필요한 소속사 내부 인력이 일반적인 아티스트 IP의 약 3배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번 콘서트 역시 블래스트 직원들이 제대로 쉬는 날조차 없이 준비에 매달릴 만큼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대 위에서 몇 초 만에 바뀌는 헤어스타일과 의상, 현실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공간과 연출 뒤에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 쏟아부은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있었던 셈이다.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플레이브 X
플레이브 월드 투어 ‘킵 잇 매닉’(2026 PLAVE WORLD TOUR ‘KEEP IT MANIC’)’ 현장 사진. / 플레이브 X

하지만 기술만으로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는 없다. 결국 무대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멤버들이었다. 격한 퍼포먼스가 끝날 때마다 마이크 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에서는 버추얼의 외형 너머 무대를 향한 멤버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럼에도 숨을 고를 틈 없이 이어지는 공연 내내 에너지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데뷔 초 ‘AI가 노래하고 춤추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던 플레이브지만, 약 3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는 오히려 그 오해가 다시 떠오를 만큼 초인적인 체력을 보여줬다.

본 공연을 마친 플레이브는 앙코르에서 추후 발매 예정인 미공개곡의 1절을 깜짝 공개하며 팬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전했다. 미디엄 템포의 곡으로,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감성적인 멜로디가 어우러져 신곡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마지막 인사에서 은호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선물해줘서 고맙다”며 소감을 말했다. 밤비는 “이렇게 넓은 곳에서 플리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했고, 예준은 “플리 여러분이 자리를 채워주신 덕분에 이렇게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날이 왔다”며 벅찬 마음을 전했다.

노아는 “믿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고,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내 삶의 이유들, 너무 사랑한다”고 팬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민은 객석을 향해 연신 “오빠”를 외치도록 유도하며 팬들과 유쾌한 호흡을 이어갔다. 이어 “이런 행복한 표정을 보려고 무대에 서는 것 같다. 많이 벅차오른다”며 “앞으로도 겸손하게, 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보답할 수 있는 플레이브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 무대는 플레이브의 데뷔곡 ‘기다릴게’가 장식했다. 익숙한 원곡 대신 발라드 버전으로 편곡된 ‘기다릴게’가 흘러나오자 화면에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 배 한 척이 등장했다. 플레이브는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약 3시간의 공연이 끝난 뒤에는 버추얼 아이돌의 공연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보다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지’가 더 궁금해졌다. 일반적인 아이돌의 월드 투어는 어느 정도 정형화될 수밖에 없다. 촘촘한 이동 일정 속에서 수 시간의 공연을 이어가야 하고, 무대마다 의상과 세트, 연출을 완전히 바꾸는 데에도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 하나의 공연을 완성한 뒤 여러 도시에서 같은 무대를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플레이브는 바로 이 지점에서 ‘버추얼’을 무기로 바꿨다. 곡마다 헤어스타일과 의상은 물론 배경과 공간까지 자유롭게 변화시키며 현실의 무대에서는 쉽게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끊임없이 펼쳐냈다.

빅뱅이 우주의 시작을 알린 순간으로 기록되듯, 지난 12일 역시 언젠가 한국 가요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순간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플레이브가 올라탄 배가 어디까지 항해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에게 ‘버추얼’은 더 이상 넘어야 할 한계가 아니라, 더 넓은 무대로 향하는 가능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