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역 화장실 세면대에 이상한 게 놓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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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사람이 메로나인 줄 알고 한 입 베어 물 것 같다"

서울 지하철 1호선 독산역 화장실에 놓인 정체불명의 조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독산역 / 연합뉴스TV
독산역 / 연합뉴스TV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쓸 수 있을지 궁금한 기상천외 서울 공중화장실 비누’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더쿠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퍼지고 있다. 게시자가 올린 사진에는 세면대 사이에 사람 흉상 모양의 형광 연두색 조각상이 놓여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서양 고전 조각인 다비드상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더쿠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퍼지는 사진.
더쿠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퍼지는 사진.

이 조각상의 정체는 비누 조각가 신미경 작가의 작품이다. 서울문화재단에 따르면 신 작가의 ‘Toilet Project(화장실 프로젝트): 익명의 손들, 유물이 된 일상’은 지난 7일부터 내년 8월 31일까지 독산역 등 금천구 일대 4곳에서 진행된다.

작품은 독산역 화장실, 금천뮤지컬센터, 아트센터예술의시간, 제조업체 대동몰드&리빙 4곳의 화장실에 설치됐다.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지하철역과 제조업체 화장실까지 작품의 공간으로 삼은 점이 특징이다. 남녀 화장실에는 형광 연두색과 핑크색 등 다양한 색상의 비누 조각이 놓였다.

이번 전시는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참여해 완성하는 방식이다. 시민들이 조각상을 실제 비누처럼 사용해 손을 씻으면 작품 표면이 조금씩 닳으면서 형태가 변한다. 주최 측은 이처럼 작품이 마모되고 변하는 과정을 약 1년간 기록한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들던 화장실이 시민들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되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사용법은 단순하다. 조각상 표면을 문질러 거품을 낸 뒤 물로 헹구면서 손을 씻으면 된다. 시민들의 손길이 닿을수록 조각은 조금씩 작아진다. 닳아 형태가 달라진 비누 조각은 이후 갤러리나 미술관으로 옮겨져 변형된 모습 그대로 전시되기도 한다.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누리꾼들의 반응도 이어졌다. "저거 통짜 비누냐", "흥미롭다"며 신기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코부터 닳겠다", "머리부터 벗어져 대머리가 되겠다"며 조각이 마모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댓글도 나왔다. "술 취한 사람이 메로나인 줄 알고 한 입 베어 물 것 같다"는 농담도 있었다.

우려 섞인 반응도 있었다. "곱게 닳지는 않을 것 같다", "비눗물이 옆으로 흘러 지저분해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소하시는 분들 고생이 늘겠다"며 관리를 걱정하는 반응도 있었다. 반면 "아까워서 못 쓸 것 같다",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글도 눈에 띄었다.

가장 많이 나온 걱정은 작품 훼손이었다. "눈사람을 괜히 깨뜨리듯 누가 부술 것 같다", "며칠 두면 누군가 잘라서 가져갈 것 같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런 게 알려지면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와 부수는 사람이 있어 걱정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현대미술 작가의 시민 참여형 작품이고 소멸해 가는 아름다움이 주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독산역 / 연합뉴스
독산역 / 연합뉴스

신미경 작가는 비누를 재료로 조각 작업을 해온 작가다. 신 작가는 비누를 틀에 부어 주조(캐스팅)한 뒤 향료와 안료를 더해 작품을 만든다. 2003년 무렵 비누 캐스팅 작업을 시작하면서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화장실 프로젝트도 선보였다. 존재와 사라짐, 소멸의 과정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것이 그의 오랜 작업 주제다.

그의 비누 조각은 ‘번역(트랜스레이션)’ 시리즈로 대표된다. 고대 조각상이나 도자기 같은 원작을 비누라는 일상적인 재료로 옮겨 재현하는 작업이다. 값싼 재료를 활용해 예술 작품을 만든 이탈리아 아르테 포베라와 통하는 지점도 있다. 청결을 상징하는 비누가 손 씻기에 사용되면서 닳아 사라지는 과정에 존재와 소멸이라는 주제가 담긴다.

신 작가는 2004년 영국의 한 미술관 화장실에 비누 조각을 설치해 관람객이 직접 사용하도록 하면서 화장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5년에는 중국 상하이의 공공화장실 5곳에 비누로 만든 불상 12점을 설치해 시민들이 실제 비누처럼 사용하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경기도미술관과 소마미술관 화장실 등에 작품을 설치했다. 2018년에는 광주송정역 남녀 화장실에 비누 조각 6점을 설치했다. 이 밖에도 비누 도자기에 은박과 동박을 입혀 오래된 유물처럼 표현한 ‘화석화된 시간’ 시리즈 등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는 서울문화재단이 금천구 일대에서 진행하는 ‘2026 금천미술벨트: 공동의 지형, 이어진 시간’의 하나로 마련됐다. 금천예술공장과 아트센터예술의시간이 공동 기획했다. 금천미술벨트는 금천예술공장을 중심으로 지역 곳곳에 흩어진 예술 공간과 일상 공간을 잇는 프로젝트다.

서울문화재단은 이번 작업을 여러 사람의 참여와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관계 예술’로 설명했다. 시민들의 손길로 달라지는 비누 조각은 내년 8월 31일까지 독산역 등 4곳에서 조금씩 형태를 바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