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탐구 집’ 노후에 이런 집이면 충분하다…정원·강뷰 품은 은퇴 주택
작성일
용인 4층 주택에 90평 정원·동네 사랑방까지
양평에선 북한강 품은 집 짓고 ‘나에게로 출근’
퇴직은 일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수 있을까. 경기 용인에서는 90평 정원을 품은 4층 집이 이웃을 불러모으는 사랑방이 됐고, 양평에서는 30년간 광고영상 업계에서 일한 남성이 북한강을 바라보는 집을 지은 뒤 매일 자신의 집과 텃밭으로 출근하고 있다.
15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집 짓고 나이 드는 게 즐거워졌다’ 편을 통해 퇴직을 계기로 집을 짓고 삶의 방향까지 바꾼 두 가족을 만난다. 용인 광교산과 낙생저수지를 품은 4층 주택과 양평 북한강변에 자리한 수평형 주택이 각각 소개된다.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아내가 밀어붙인 4층 집

첫 번째 집은 경기도 용인특례시의 한 주택 단지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집 앞에서는 사계절 장미 넝쿨이 방문객을 맞고, 내부로 들어서기 전부터 웅장한 4층 규모와 90평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집주인은 화수·명심 씨 부부다. 약 3년 전 남편 화수 씨가 퇴직하면서 25년 전 미리 사둔 땅에 집을 짓기로 했다. 평생 한 번 지을 집인 만큼 후회 없이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집짓기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부의 생각이 같았던 것은 아니다. 남편은 관리가 편한 아담한 단층집을 원했다. 반면 아내 명심 씨는 주변 풍경을 층마다 다르게 즐길 수 있는 다층집을 원했다.
결국 아내가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며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고 남편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부부가 ‘멋대로 하우스’라고 부르는 4층 집이 완성됐다.
진흙밭 세 번 갈아엎어 만든 90평 정원

아내의 고집은 마당에서도 이어졌다. 집을 짓기 전 땅은 진흙과 돌이 뒤섞인 상태였다. 남편은 주변에 자연이 충분하니 마당은 관리하기 편하게 시멘트로 덮자고 제안했다.
명심 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직접 땅을 세 차례 갈아엎고 마사토를 깔아 90평 규모의 정원을 만들었다. 사계절 내내 꽃과 나무가 이어지는 공간으로 가꾸기 위해 오랜 시간 손을 들였다.
원래부터 조경을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그가 정원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다.
오랜 해외 생활을 하면서도 손님을 집에 초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했던 명심 씨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 결과 정원과 1층은 자연스럽게 동네 사랑방이 됐다. 1층에는 여러 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넓은 다이닝 공간을 만들고 손님이 밤늦게까지 머물거나 묵어갈 수 있는 평상도 설치했다. 지금은 일 년 내내 이웃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공간이 됐다.
앞집 조망 때문에 집 방향까지 바꿨다

집 외관은 위에서 보면 두 건물이 벌어진 듯한 V자 형태를 띤다. 독특한 모양에는 집을 짓기 전 있었던 사연이 담겨 있다.
앞집 주민이 새로 지어질 건물 때문에 조망이 가려지고 사생활 침해가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을 전하자 명심 씨는 설계 단계에서 과감하게 집의 방향을 틀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변경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장점도 생겼다. 집 안으로 동남향 햇살이 깊숙이 들어오고 각 층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1층이 이웃과 손님을 위한 열린 공간이라면 2층부터는 가족만의 생활 공간이다. 2층에는 거실과 주방을 두고 뒤쪽 산으로 이어지는 테라스를 만들었다. 3층에는 침실과 욕실을 배치했다.
4층 다락은 남편 화수 씨만의 공간이다. 숲과 맞닿아 있는 다락에서 혼자 쉬거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꾸몄다.
4층 집인데 노후 걱정은?…엘리베이터 자리까지 준비
다층주택에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은 나이가 들수록 계단 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부부도 이를 예상했다. 현재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 가운데 일부는 향후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도록 미리 비워뒀다.
집을 지을 때부터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이곳에 살 수 있도록 대비한 셈이다.
집짓기 과정 내내 아내와 생각이 달랐던 남편 화수 씨도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막상 살아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보다 집이 주는 즐거움과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크다고 말한다.
부부에게 이 집은 단순히 퇴직 후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나누면서 나이 드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해준 새로운 삶의 무대가 됐다.
광고업계 30년 워커홀릭, 갑자기 일을 내려놨다

두 번째 집은 경기도 양평군 북한강 인근에 있다. 산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 지형 위로 길게 뻗은 집 한 채가 자리한다.
집주인 호경 씨는 광고영상 업계에서 30년 동안 일한 베테랑이다. 오랜 시간 자신의 일을 해왔지만 예상하지 못한 경영 악화로 사업을 정리하게 됐다.
갑작스럽게 일에서 물러난 그는 그동안 미뤄둔 일을 하나씩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장모님의 원두막이 있던 땅에 집을 짓는 일이었다.
예산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다.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마다 비용을 따져야 했고 여러 아이디어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부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처음으로 제대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남들 취향만 맞추다 뒤늦게 알게 된 “우리는 예쁜 게 좋아”
호경 씨는 광고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클라이언트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직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집을 설계하면서 큰 창과 나무, 돌 같은 자연 재료에 자신이 끌린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부부가 집을 지으며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우리는 예쁜 게 좋아”였다.
부부가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북한강 조망이었다.
땅의 높이를 높여 시야를 확보했고 집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 끝에서는 북한강이 한눈에 펼쳐진다. 정원 관리에는 큰 관심이 없어 마당은 최소화하고 대신 실내 여러 공간에서 강과 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한옥을 연상시키는 단정한 외관과 넓은 거실 통창을 통해 집 안에서도 자연 풍경이 그대로 이어진다.
수납장 낮추고 대들보 살린 이유

집 안은 화려한 장식보다 재료 자체의 질감이 눈에 띈다. 콘크리트와 목재, 금속을 그대로 드러내고 장식은 최대한 줄였다.
부부는 한옥의 서까래를 연상시키는 천장선을 살리는 데도 공을 들였다.
주방 수납장은 일반적인 높이보다 낮췄고 각종 가전과 생활용품은 밖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수납했다. 외벽에서 사용한 질감과 비슷한 콘크리트 아일랜드를 주방 안에도 설치해 바깥과 안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거실에서 처마까지 이어지는 중목 대들보 역시 집 안과 밖의 경계를 연결하는 요소다.
집 자체가 하나의 장식품처럼 보이기보다 창밖 자연과 함께 있을 때 완성되는 공간으로 만든 셈이다.
휴대전화 못 놓던 남편, 이제는 밭일에 ‘중독’

집을 짓고 가장 크게 달라진 사람은 호경 씨다. 과거 그는 휴대전화를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던 워커홀릭이었다. 일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퇴직한 뒤에는 오히려 집과 텃밭이 새로운 일상이 됐다. 새벽부터 밖으로 나가 텃밭을 살피고 집을 가꾸다가 저녁이 돼서야 일을 멈추는 날도 많다.
아내 현주 씨는 남편이야말로 이 집을 가장 충만하게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들 호재 씨 역시 아버지가 밭일에 완전히 빠졌다고 할 정도다.
퇴직 직후 호경 씨에게는 고립감과 무력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매일 출근하던 곳과 해야 할 일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을 직접 돌보고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생각도 달라졌다. 재산이나 미래의 계획도 중요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퇴직 후 ‘나에게로 출근하는 집’

용인의 집과 양평의 집은 겉모습부터 다르다. 한 집은 4개 층을 쌓아 올리고 90평 정원을 만들었고, 다른 집은 북한강을 바라보며 수평으로 길게 뻗어 있다.
집을 사용하는 방식도 다르다. 명심·화수 씨 부부의 집은 이웃과 친구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랑방에 가깝다. 호경·현주 씨 부부의 집은 오랫동안 일에 몰두했던 자신에게 다시 집중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두 집에는 공통점도 있다. 퇴직을 계기로 집을 지었고 그 집에서 살아가면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한 부부는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발견했고 또 다른 부부는 일을 벗어난 뒤에야 자신의 취향과 시간을 찾아냈다.
집을 짓는 일이 단순히 새로운 건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퇴직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지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 된 셈이다.
EBS1 ‘건축탐구 집’ ‘집 짓고 나이 드는 게 즐거워졌다’ 편은 9월 15일 오후 9시 55분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