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60분’ 직장 경력 접고 신입 지원…‘하닉고시’에 몰린 직장인들
작성일
SK하이닉스 입사 위해 취업 N수 반복
6개월 600만원 반도체 컨설팅·‘중고 신입’ 경쟁까지 추적
수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 소식이 알려진 SK하이닉스 채용을 두고 이른바 ‘하닉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취업준비생뿐 아니라 이미 직장을 다니는 경력자들까지 신입 채용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KBS1 ‘추적60분’이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번이고 취업 시장에 다시 뛰어드는 청년들의 현실을 추적한다.

11일 방송되는 KBS1 ‘추적60분’ 1472회는 ‘N수 사회’ 2부작 2부 ‘취업N수, 하닉고시와 중고신입’ 편으로 꾸며진다. 제작진은 SK하이닉스 입사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과 이직 준비생, 계약직과 인턴을 거치면서도 정규직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만나 취업 N수가 반복되는 이유를 살펴본다.
수억 성과급 알려지자 등장한 ‘하닉고시’
최근 취업 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는 SK하이닉스다. 높은 성과급과 복지가 알려지면서 취업준비생들의 관심이 집중됐고, 국가고시에 버금가는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하닉고시’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채용 과정에서 학력과 나이 제한을 폐지했다. 지원 문턱이 낮아지면서 신입 취업준비생뿐 아니라 이미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들의 지원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 채용을 두고 ‘대국민 성과급 오디션’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기업 관계자들 역시 높은 성과급과 복지를 이유로 SK하이닉스로 이직하려는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한다.
채용 설명회를 찾은 고진아 씨(가명)도 SK하이닉스 입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현재 SK하이닉스 협력업체에서 프리랜서로 근무하고 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지만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본사 직원들이 받는 성과급과 복지는 누리지 못한다.
고 씨는 주변에서 성과급을 받아 자동차나 아파트를 산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 사회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30대 중반까지라도 SK하이닉스 입사에 계속 도전하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6개월에 600만원…입시까지 번진 ‘반도체 프리미엄’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의 인기는 취업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국 10개 대학에 운영되는 반도체 계약학과에 입학하면 취업 연계와 등록금 전액 지원, 해외연수, 노트북과 생활 장학금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반도체 업계 호황과 기업들의 적극적인 인재 확보가 대학 입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대치동 입시컨설팅 시장에는 이른바 ‘반도체 프리미엄 반’도 등장했다. 방송에 따르면 6개월에 350만원에서 최대 600만원에 이르는 고액 컨설팅 상품까지 판매되고 있다.
사교육은 대학 입시 단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부 사설 교육기관은 반도체 기업 취업에 도움이 된다며 SNS를 통해 반도체 공정 실습 프로그램 등을 홍보하고 있다.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코딩 교육도 확대되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필요한 역량을 어릴 때부터 준비시키려는 학부모 수요가 커지면서 관련 사교육 시장 역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강민 코딩학원 대표는 최근 입시 시장에서 ‘의치한약수’와 함께 반도체 관련 진로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과거처럼 무조건 의대를 최우선으로 바라보던 분위기에서 선택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대학 졸업생 45만명…원하는 일자리는 10%?
취업 N수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와 실제 채용 시장 사이의 격차가 자리한다.
방송에 따르면 매년 약 45만명이 대학을 졸업하지만 이 가운데 원하는 일자리에 취업하는 비중은 10% 수준에 그친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이른바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취업에 한 번 실패한 뒤 다시 준비하는 취업 N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문제는 신입 취업준비생들이 같은 또래의 첫 취업자하고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회사에 다니거나 직장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신입 채용에 다시 지원하면서 이른바 ‘중고 신입’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분석 전문가 박주근 씨는 청년들이 신규 취업준비생과 경쟁한 뒤 다시 N수 취업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업무 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선호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에 처음 진입하려는 청년 입장에서는 경력까지 갖춘 지원자들과 같은 채용 문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셈이다.
계약직·인턴까지 했지만 16곳 모두 불합격

강소정 씨(가명) 역시 이런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그는 금융권 정규직 취업을 위해 한국사 자격증과 은행텔러 자격을 준비하고 토익 점수도 갖췄다. 여기에 약 2년 동안 계약직과 인턴으로 일하며 실무 경험까지 쌓았다. 하지만 지원한 회사 16곳에서 한 곳도 합격하지 못했다.
채용 과정에서는 이미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지원자들이 신입사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사회 초년생이지만 처음부터 경력을 갖춘 지원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 씨가 정규직을 원하는 이유는 장기적인 삶의 계획과도 연결된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생각하면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하는 조건의 일자리를 얻지 못할 경우 다시 자격증을 준비하고 채용공고를 기다리며 다음 시험과 면접에 도전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첫 직장이 평생 경로 결정?…좋은 일자리 향한 경쟁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계속해서 더 나은 일자리에 도전하는 현상을 개인의 욕심만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양질의 일자리와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다고 설명한다.
특히 어떤 첫 일자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지가 이후 생애 전체의 직업 경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청년들로서는 가능한 한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첫 취업에 실패하거나 만족하지 못하는 직장에 들어갔을 때 다시 채용 시장으로 돌아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높은 임금과 안정성, 복지 등을 갖춘 일자리는 제한돼 있지만 이를 원하는 지원자는 계속 늘어나면서 취업 N수 기간 역시 길어지고 있다.
10년 차 공공기관 직원도 다시 ‘취업 N수’
취업 N수는 사회 초년생에게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정동훈 씨(가명)는 현재 공공기관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또다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취업과 이직을 준비한 시간만 약 8년에 이른다. 어느덧 39세가 됐지만 여전히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채용 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정 씨는 처음에는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취업 준비를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취업과 이직 준비에 매달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가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 가운데 하나는 불안이다. 경쟁에서 한 번 뒤처지면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현재 직장이 있음에도 다음 기회를 계속 준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연사회’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청년들이 취업 준비에 사용하는 시간과 비용도 늘어난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자격증과 어학점수, 인턴과 계약직 경력을 쌓으며 취업 준비를 반복하고, 이미 직장을 구한 사람조차 더 나은 회사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신입 채용 시장에 뛰어든다.
반도체 기업을 향한 경쟁은 취업을 넘어 대학 입시와 사교육, 조기교육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정 기업과 특정 산업의 높은 임금과 복지가 알려질수록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도 더욱 빨라지고 길어지는 모습이다.
제작진은 이를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삶의 다음 단계를 미루는 ‘지연사회’의 한 단면으로 바라본다. 취업이 늦어지면 결혼과 출산, 주거 마련 등 이후의 계획 역시 함께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방송에서는 수억 원대 성과급으로 주목받은 SK하이닉스 채용 열풍에서 시작해 반도체 사교육 시장, 경력자들이 신입 채용에 뛰어드는 ‘중고 신입’ 현상, 몇 년씩 계속되는 취업 N수까지 한국 채용 시장의 구조를 살펴본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채용 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청년들이 왜 반복해서 취업 N수를 선택하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도 짚는다.
KBS1 ‘추적60분’ 1472회 ‘N수 사회’ 2부작 2부 ‘취업N수, 하닉고시와 중고신입’은 11일 오후 10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