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디 비싼 '포터 가방'이... 일본인들마저 큰 배신감 느끼는 중
작성일
알고 보니 위탁생산하는 포터 가방... 무너진 장인정신 이미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의 가방 브랜드 포터(PORTER)가 요시다 자사 공장이 아니라 외부 업체 위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소비자들이 배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발단은 포터 위탁 제조사의 정품 빼돌리기 사건이다. 일본 경시청 생활경제과는 가방 제조·판매 업체 다카아키(효고현 도요오카시)의 전 이사 남성(38)을 상표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지난 10일 서류 송검했다. 법인인 다카아키도 같은 혐의로 함께 송검됐다. 이 남성은 요시다로부터 제조만 위탁받은 포터 제품을 빼돌려 매입점에 되판 혐의를 받는다. 경시청은 그가 2019년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6년간 가방과 지갑 등 약 3700개를 팔아 약 3000만엔(약 2억6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남성은 다카아키에서 제조 부문을 혼자 맡았다. 완성품은 물론 검품에서 걸러진 제품까지 빼돌린 뒤 제조 수량 데이터를 조작해 납품 물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범행을 숨겼다. 송검 혐의 사실만 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포터 가방과 지갑 등 102개를 교토부 후쿠치야마시의 매입 전문점에 173만9000엔(약 1500만원)에 팔아 상표권을 침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빼돌린 제품은 중고거래 시장을 통해 퍼졌다. 매입점은 경찰 조사에서 "장물이 아니냐고 확인했더니 남성이 하청 회사를 운영하는데 남은 물건을 가져온다고 답했다"고 진술했다. 매입점이 이 제품들을 대형 중고거래 앱에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요시다(도쿄 지요다구)는 지난해 7월 "앱에 태그가 달린 포터 제품이 다수 올라와 있다"는 소비자 제보를 받았다. 이후 같은 해 12월 경시청에 상담을 요청했다.
피의자는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임의 조사에서 그는 "도박 등으로 돈을 낭비했다. 소비자금융에서 돈을 빌려 갚는 생활을 이어 갔다. 월급만으로는 부족해 위탁 제품을 빼돌릴 생각을 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은 가짜를 만들어 판 위조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품을 만든 위탁 제조사가 물량을 빼돌려 상표권자의 허락 없이 유통시킨 경우다. 경시청은 정품이라도 상표권자인 요시다의 승인 없이 판매·양도한 행위를 상표법 위반으로 봤다.
정작 소비자들이 놀란 지점은 상표권 침해라는 범행보다 다른 데 있었다. 포터가 요시다의 직접 생산이 아니라 도요오카 협력사가 만든 제품이었다는 사실이다.
엑스(X·옛 트위터)에는 사건 자체보다 포터가 다른 회사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줄곧 요시다 자사 공장에서 생산하는 줄 알았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요시다가 자사 직원이나 계열사가 직접 봉제하는 것으로 알았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도 있었다. 요시다는 오래전부터 자체 공장 없이 '팹리스(fabless)'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다. 도요오카 공장에서 만드는 만큼 유출을 완전히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가방 업계 종사자는 X에 포터뿐 아니라 대부분의 브랜드가 외주로 만들어진다면서 자체 생산까지 하는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배신감의 뿌리에는 요시다가 쌓아 온 장인정신 이미지가 있다. 요시다는 '한 땀 한 땀에 혼을 담는다'는 뜻의 '일침입혼(一針入魂)'을 사시(社是)로 내걸고 완제품을 모두 일본에서 만드는 '메이드 인 재팬'을 앞세워 왔다. 요시다 장인이 직접 만든 품질이라 믿고 값을 치른 소비자로서는 실상이 위탁 생산이었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많다. 일부는 외주 생산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그동안 자사 공장에서 만드는 듯한 인상을 준 점이 아쉽다고 짚었다.
요시다 창업자인 요시다 기치조는 가나가와현 출신으로 12세에 가방 장인의 길에 들어섰다. 29세에 독립해 회사를 차렸다. 일왕이 쓸 트렁크를 만들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해외 라이선스 제안은 마다한 채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전해지는 가방을 만들겠다며 자체 브랜드를 세웠다. '일침입혼'은 야구에서 공 하나에 혼을 담는다는 '일구입혼(一球入魂)'에서 착안한 표현이다. 요시다는 지난해 창업 90주년을 맞아 창업자의 딸이 직접 손바느질을 선보이는 전시를 열기도 했다. 이런 서사가 두텁게 쌓여 온 만큼 위탁 생산이라는 실상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간극도 컸다.
이사급 간부가 오랜 신뢰관계를 악용했다는 점에도 비판이 집중됐다. 요시다로서는 수십 년간 제조를 맡겨 온 협력사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정가에 정품을 구입한 소비자들도 피해자라는 지적이 나왔다. 성실하게 일해 온 직인들의 자부심까지 짓밟혔다는 안타까움도 이어졌다.

가격을 둘러싼 불만도 배신감을 키우는 요소다. 포터는 2010년대 들어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값을 크게 올려 왔다. 스테디셀러인 '탱커(TANKER)' 시리즈의 한 슬링백은 과거 3만엔 중반대에 팔렸다. 2024년 재질과 품질 개선을 이유로 새로 내놓은 제품은 6만8000엔(약 59만원)까지 올랐다. 예전엔 저렴해 자주 샀는데 지금은 고급 가방 가격을 받는다거나 10년 넘게 같은 물건을 만드는데 가격만 치솟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값은 올랐지만 정작 만드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품 가격은 배 가까이 올랐는데 봉제 직인의 공임이나 하청 단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인이 고령화하고 젊은 인력은 낮은 임금 탓에 유입되지 않는 현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요시다는 1935년 요시다 기치조가 도쿄에서 세운 노포 가방 업체다. 창업 당시 이름은 '요시다 가방 제작소'였다. 브랜드 '포터'는 1962년 선보인 대표 라인이다. 호텔에서 짐을 나르는 '짐꾼'을 뜻한다. 늘 좋은 가방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름을 따왔다. 요시다는 포터 외에도 여러 라인과 협업 브랜드를 운영한다. '스트리트의 제왕'으로 불리는 후지와라 히로시와 함께 1998년 헤드 포터를 내놓았다. 창업자의 아들 요시다 카츠유키는 2007년 포터 클래식을 세웠다.
요시다는 자체 공장을 두지 않는다. 일본 내 협력 공장·공방 약 50곳에 제조를 맡기는 구조다. 이번에 이름이 오르내린 도요오카시는 일본 최대 규모의 가방 산지다.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여러 유명 브랜드의 OEM을 맡고 있는 이곳은 '도요오카 가방'을 지역 브랜드로 키운 곳이다.
도요오카 가방 업계로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사람의 일탈로 지역 협력사 전체가 신뢰에 타격을 입고 성실하게 일해 온 직인들이 애꿎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