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급 인기, 슈퍼스타였던 이상은이 연예계서 돌연 사라진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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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포기하고 음악인을 선택한 18세 천재의 고백
1988년 '담다디' 한 곡으로 전국을 들썩이게 한 가수 이상은이 인기 정점에서 무대를 떠난 속내를 직접 털어놨다. 하루에 지방 행사 세 곳을 돌고 팬레터를 가마니째 받던 18세 스타는 "저를 상품으로 바라보는 눈이 싫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최근 BBC 코리아 유튜브 채널에는 "김윤아, 이상은이 말하는 '한국에서 여성 뮤지션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는 자우림의 김윤아와 이상은이 나란히 출연해 한국 음악계에서 여성 음악인으로 지나온 시간을 되짚었다. 이상은은 '최초의 아이돌'로 불렸던 데뷔 시절부터 스타의 자리 대신 음악을 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차례로 풀어냈다.
"한마디로 그냥 뜬 거다"…쌀포대에 꾹꾹 담겨 온 팬레터
이상은은 1970년 3월 12일생으로 올해 만 56세다. 한양대 1학년이던 1988년, 만 18세의 나이로 MBC 강변가요제 무대에 올라 '담다디'로 대상을 거머쥐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등장부터 파격이었다. 178cm의 큰 키, 짧은 커트 머리, 보이시한 차림, 쾌활한 꺾기 춤은 당시 여성 가수에게 요구되던 전형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개성 강한 음색까지 더해지며 '담다디'는 곧바로 전국적인 유행곡이 됐고, 2집 '사랑할거야'까지 연달아 인기를 얻으며 이상은은 1980년대 말을 대표하는 톱스타이자 예능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상은은 당시를 떠올리며 "한마디로 그냥 뜬 거다. 어마어마하게 바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지방 스케줄을 하루에 세 개 뛰고, 쌀포대에 편지를 꾹꾹 눌러 담아서 가마니로 편지가 왔다. 신드롬에 가까웠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라고 전했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 팬심을 전할 수단은 손편지뿐이었다. 편지가 한 통 두 통이 아니라 쌀포대 단위로 도착했다는 증언은 '담다디 신드롬'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가장 뜨거울 때 찾아온 허전함…"여자 가수는 이렇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틀
화려한 인기의 이면에서 이상은은 허전함을 느꼈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자신과,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보는 업계와 대중의 시선 사이의 간극이 날이 갈수록 벌어졌다.
이상은은 "그때도 연예 기획사가 있었다. 나름 '가수는 이래야 한다', '여자 가수는 이렇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틀이 있었는데 저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전했다"며 "저는 음악이 좋아서 하고 있는데 저를 상품으로 바라보는 눈이 싫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1980년대 후반에도 기획사가 가수의 옷차림과 이미지를 설계하는 구조는 존재했다. 이상은은 그 틀을 따르지 않았지만, 인기가 커질수록 자신이 음악인이 아닌 상품으로 소비된다는 감각도 함께 커졌다. 대중이 기억하는 '밝고 씩씩한 담다디 소녀'의 모습과 당사자의 내면이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딸이고 엊그제까지 학생"…지금의 아이돌을 보는 눈
이상은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 가수들을 향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지금 아이돌들도 엄청나게 힘들 거다. 다 사람이지 않냐. 누군가의 딸이고 엊그제까지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해서는 "제 성격에는 아이돌이 안 맞는 것 같다. 저는 잠이 많다. '이게 진짜 내 길이 맞나?', '이게 진짜 음악을 하는 건가?' 싶었다"라고 돌아봤다. 하루 세 건의 지방 일정을 소화하던 강행군은 잠이 많은 스무 살 무렵의 대학생에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버거운 일정이었다. 무엇보다 무대를 반복할수록 그것이 자신이 원하던 음악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저녁 라디오 DJ석에서 찾은 답, "자기 인생을 노래하는 게 의미가 있구나"
고민이 깊어진 계기는 저녁 라디오 DJ 자리였다. 매일 방송을 위해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이상은은 무대 위 히트곡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발견했다.
그는 "의외로 음악성 있는 좋은 노래가 정말 많았다. 이런 세계를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있구나 싶었다"면서 "자기 인생을 노래하는 게 의미가 있구나 싶었다"라고 밝혔다.
결국 이상은은 직접 곡을 쓰기로 결심했다. '스타'라는 수식어나 주변의 평가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이상해졌다. 스타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남이 뭐라 하든 상관없었다. 내 나이에 대해서, 여자에 대해서 그런 것도 상관이 없었다. 그냥 음악을 계속 만들고 그냥 해 나가고 나이가 몇 살이 되든 좋은 작품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거 이외 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거라도 찾았으니 내 인생 나쁘지 않다고도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18세에 누구보다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가수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나이, 성별, 대중의 시선보다 작품을 앞에 두는 삶이었다. 이상은은 그 기준을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데뷔 2년 만의 유학길, 일본에서 뉴욕으로
대중이 기억하는 '이상은이 돌연 사라진 시기'는 바로 이 결심 직후다. 이상은은 데뷔 2년 만인 1990년 인기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수학했다.
같은 해 11월 발표한 3집 '더딘 하루'는 그의 음악 인생에서 분기점이 된 앨범이다. 이상은이 직접 곡을 쓰기 시작한 작품으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앨범을 사실상 자신의 정식 데뷔 앨범처럼 여긴다는 취지로 언급하기도 했다. 3집 이후 발표한 정규 앨범은 모두 자작곡으로 채워졌다. 기획사가 만든 아이돌에서 스스로 작사·작곡·프로듀싱을 맡는 싱어송라이터로 방향을 완전히 틀었고, 이 전환은 한국 가요사에서 드문 사례로 남았다.
'언젠가는'과 '공무도하가'…아이돌 출신이 쓴 명반의 역사
1993년 5집 '이상은'의 타이틀곡 '언젠가는'은 청춘의 방황과 성장을 시적인 가사에 담아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얻었다. '담다디'를 기억하던 세대에게는 같은 가수의 곡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결이 달랐다.
1995년 발표한 6집 '공무도하가'는 이상은의 이름을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긴 앨범이다. 동양적 정서와 고전 시가에 포크, 앰비언트, 아트 팝을 결합했다. 2007년 경향신문이 연재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이 앨범은 10위에 올랐고, 2018년 한겨레·멜론·태림스코어가 음악평론가와 기자, 방송 PD 등 47명의 투표로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도 10위를 기록했다. 2018년 목록의 1위부터 10위 가운데 여성 음악인의 앨범은 '공무도하가'가 유일하다.
1997년 7집 '외롭고 웃긴 가게'는 로파이 포크와 인디 록 성향을 담은 음반으로, 1990년대 후반 막 태동하던 국내 인디 음악 신에 영향을 줬다. 1980년대 말 '담다디'와 1990년대 중반 '공무도하가'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정점을 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점이 이상은의 음악 이력에서 가장 독특한 지점이다.

'리채'라는 이름으로 선 일본 무대, 2004년 한국대중음악상
이상은은 일본에서도 수년간 음악 활동을 펼쳤다. 이때 사용한 활동명이 'Lee-tzsche(리채, リーチェ)'다. '이상은'이라는 이름을 현지에서 발음하기 어려워 모친과 부친의 성을 합쳐 만든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가수의 일본 진출이 흔치 않던 시기였던 만큼 일본 진출 1세대 음악가로 꼽힌다.
2003년 11집 '신비체험'에서는 일렉트로니카 작법을 도입했고, 수록곡 '비밀의 화원'은 오랜만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앨범으로 이상은은 2004년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여성 음악인 부문 트로피를 받았다. 당시 선정 사유에는 "한국에서 여성뮤지션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기회만큼이나 많은 질곡이 가로 막고 있다"는 문장이 담겼다. 22년이 지난 2026년 BBC 코리아 영상의 제목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2007년 13집 'The 3rd Place'는 일본 오키나와에 머물며 만든 앨범으로, 수록곡 '삶은 여행'은 훗날 tvN '꽃보다 누나'에 삽입되며 발표 당시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방송을 통해 '삶은 여행'을 먼저 알게 된 시청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 곡의 주인공이 '담다디'의 이상은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미술·여행·라디오까지…데뷔 38년차 이상은의 현재
이상은은 일본 활동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다시 미술을 공부했다. 유학 이후에는 주로 인디 신을 무대로 활동하며 음악 외에 미술, 여행 작가, 라디오 DJ로 영역을 넓혔다. '베를린 - 삶은 여행', 'London Voice', 'Art&Play',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푸른 달팽이의 달빛무대&Soul' 등 여러 권의 책도 펴냈다.
2019년 10월에는 5년 만의 신작이자 16번째 앨범 'fLoW'를 발표했다. 약 20년 동안 1년 6개월 안팎의 간격으로 쉼 없이 앨범을 내던 활동을 멈추고 5년의 휴식기를 가진 뒤 내놓은 작품이다. 수록곡 '넌 아름다워'는 지친 어른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았다. 2022년에도 홍대 공연장 벨로주에서 공연을 열고 라디오 진행을 맡는 등 무대와 방송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갔다.
1988년 데뷔 이후 올해로 38년차다. 앨범이 16장에 달해 대표곡을 몇 곡으로 추리기도 쉽지 않다. 데뷔 초 '담다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할꺼야', '그대 떠난 후'부터 직접 곡을 쓰기 시작한 '더딘 하루', '뉴욕에서', '언젠가는', '길', '벽'을 거쳐 '어기여디어라', '공무도하가', '새', '외롭고 웃긴 가게', '비밀의 화원', '둥글게', '삶은 여행', '돌고래자리', '바다여', 'Stardust', '태양은 가득히', '들꽃', '넌 아름다워', 'fLoW', '오아시스의 밤'까지 시기마다 전혀 다른 색깔의 곡들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