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29년 만에 열린 투표함, 39년 뒤 또 터졌다…무너진 선거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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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91개 투표소서 용지 부족…26곳은 실제 투표 중단
실시간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까지…선관위 신뢰도 1.84점

전국 곳곳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나 투표가 중단되고, 실제와 다른 투표율이 입력된 정황까지 드러났다. 선거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벌어진 잇단 사고는 단순한 행정 실수를 넘어 선거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있다.

8일 방송되는 KBS 1TV ‘시사기획 창’ 562회 ‘K-선관위 무너진 캐슬’에서는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시작으로 선관위의 의사결정 구조와 인력 문제, 투표율 집계 과정 등을 추적한다. 제작진은 1987년 대선 당시 논란이 된 구로구을 부재자 투표함까지 거슬러 올라가 반복되는 선거 관리 논란과 선관위의 신뢰 문제를 들여다본다.

29년간 닫혀 있던 투표함…1987년 구로구에서 무슨 일이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선거는 16년 만에 치러진 대통령 직선제 선거였다. 투표율이 89.2%에 이를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높았지만 서울 구로구을에서는 투표 당일 시민들이 투표소를 빠져나가던 차량을 막아서면서 큰 충돌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차량에 실려 있던 부재자 투표함을 문제 삼았고, 당시 투표함을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은 장기간 이어졌다.

경찰이 투입되면서 천여 명이 연행됐지만 논란의 투표함은 개표되지 않은 채 보관됐다. 당시 선거 결과에서 후보 간 득표 차이가 투표함에 들어 있던 표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투표함은 29년 동안 봉인됐다가 2016년에야 다시 열렸다.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당시 투표함에 들어 있던 표는 4325장이었다. 개표 결과 기존 선거 결과를 뒤집을 만한 조작이나 위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개함 과정 자체를 둘러싼 질문은 남았다. 한국정치학회가 검증 과정에 참여했고 중앙선관위가 개표 실무를 맡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시사기획 창’은 당시 한국정치학회장을 맡았던 강원택 서울대 교수를 만나 선관위가 왜 스스로 논란을 해소하지 못하고 외부 학계의 검증을 필요로 했는지 다시 묻는다. 당시 개함은 중앙선관위와 한국정치학회가 함께 진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전국 91개 투표소서 용지 7194장 부족…26곳 투표 중단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비슷한 신뢰의 문제는 39년 뒤 다시 불거졌다.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전국 91개 투표소의 투표용지 7194장이 부족했고, 이 가운데 26개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실제로 중단됐다. 투표용지를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린 유권자까지 나오면서 선관위의 기본적인 선거 관리 능력을 둘러싼 비판이 제기됐다.

제작진은 사태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투표용지 인쇄율에 주목했다. 선관위는 투표소별 선거인 수 전부에 해당하는 용지를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 투표율 등을 고려해 필요한 수량을 정하는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적용된 하한선은 선거인 수의 50%였다.

2009년 80%였던 인쇄 기준은 이후 낮아졌고 제작진이 확보한 관련 자료에는 예산 낭비와 남은 투표용지의 폐기 부담 등이 이유로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제작진이 2022년 지방선거의 투표소별 선거인 수와 실제 투표자 수를 토대로 전국 1만4465개 투표소에 50% 기준을 적용한 결과, 154곳에서 용지 부족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 17곳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실제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제작진은 밝혔다.

전국 투표용지 좌우한 ‘50%’…위원회 아닌 사무처 전결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시사기획 창’은 투표용지 인쇄 기준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됐는지도 살펴본다. 선관위는 주요 사안을 의결하는 위원회와 실제 선거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처로 구성돼 있지만, 제작진에 따르면 인쇄율 50% 결정은 위원회 의결이 아닌 사무처 전결로 처리됐다.

사고 발생 이후 진행된 선관위 자체 감사에서는 결정 과정에 관여한 관계자가 “약간 서로 믿다 보니 발생한 일인 것 같다”는 취지로 답하기도 했다.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전 중앙선관위원장이 관련 사안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고, 송파구 선관위원장은 50% 기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선관위원장은 현직 법관이 맡고 상당수 위원 역시 별도의 본업을 두고 있다. 실제 선거 사무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이 사무처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중요한 실무 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검토되고 견제되는지가 이번 방송의 주요 쟁점으로 다뤄진다.

직원 3000명이 선거 때는 40만명 지휘…“실수 안 나길 기도”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선관위의 인력 구조도 도마 위에 오른다. 평상시 선관위 상시 직원은 3000여 명이지만 선거가 시작되면 전국 투표소와 개표소에 배치되는 단기 인력까지 약 40만 명 규모로 조직이 급격히 커진다. 실제 투표 현장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선관위 소속 상근 직원이 아닌 파견 인력이나 단기 근무자다.

지난 6월 3일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직원 13명이 약 2900명의 단기 인력을 관리해야 했다. 현직 직원은 제작진에게 “실수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선거 당일 투표소 담당자들의 단체 대화방에는 현장에서 올라온 다급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제때 답변을 받지 못한 메시지도 쌓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선거의 특성상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한 판단과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수 상근 인력이 수천 명의 현장 인력을 관리하는 현재 구조에서는 돌발 상황을 실시간으로 통제하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표자 한 시간 내내 ‘1명’…수정 요청했더니 “고치지 마라”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경기 김포에서는 투표율 입력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구래동 일대 9개 투표소에서 한 시간 동안 투표한 사람이 모두 ‘1명’으로 기록됐는데, 파견 공무원이 투표자 수를 잘못 입력하면서 오후 1시 기준 투표율이 이미 80%에 육박하는 비정상적인 수치가 나타난 것이다.

김포시선관위는 잘못된 숫자를 확인한 뒤 상급 기관에 수정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지시는 수정하지 말라는 취지였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중앙선관위는 이미 입력된 전체 숫자를 유지하면서 다른 투표소에 수치를 나눠 입력하도록 했고, 수정에 사용할 숫자가 담긴 엑셀 파일까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직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자료까지 분석해 약 110곳에서 실제 투표소별 상황과 다른 방식으로 실시간 투표율이 입력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실제 전체 투표자 수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투표소별 수치를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설명이 가능하더라도, 유권자에게 공개되는 국가기관의 선거 통계가 실제 현장 상황과 다르게 표시됐다면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기획 창’은 일본 도쿄 오타구에서 비슷한 문제를 경험한 전직 선거관리 관계자와 투표용지 부족으로 총선 일부가 무효 처리된 독일 베를린의 선거관리관도 만난다. 제작진은 해외에서는 선거 관리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공개하고 바로잡았는지 국내 사례와 비교한다.

선관위 신뢰도 1.84점…조사 기관 10곳 중 8위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선거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는 선관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KBS 미디어연구소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1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선관위 신뢰도는 4점 만점에 평균 1.84점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10개 기관 가운데 8번째로 검찰과 언론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이번 지방선거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44.1%로 공정했다는 응답 32.1%를 앞섰다. 특히 선거 공정성에 대한 평가는 지지 정당에 따라 크게 엇갈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는 60.0%가 공정했다고 평가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같은 응답이 9.9%에 그쳤다.

선관위의 오류가 고의가 아닌 단순 실수라고 하더라도 기관 신뢰가 낮아진다는 응답도 62.8%에 달했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정치적 입장과 별개로 선거 관리 과정에서 반복되는 실수 자체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투표용지 부족에서 시작된 의심…“선거 신뢰 임계점”

이번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은 행정적인 실수로 시작됐지만 이후 의심은 선거 관리 시스템 전반으로 번졌다. 제작진에 따르면 용지가 부족했던 송파구 투표소들의 표가 보관된 개표소 앞에서는 시민들이 약 247만 장의 투표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석 달 넘게 현장을 막고 있다.

선관위는 권력으로부터 선거 관리를 독립시키기 위해 강한 독립성을 보장받는 헌법기관이다. 그러나 조직의 독립성이 외부의 개입을 차단하는 장치라면 그 내부에서 이뤄지는 판단을 누가 검증하고,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을 때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물을 것인지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다.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KBS 1TV ‘시사기획 창-K-선관위 무너진 캐슬’ 예고편. / KBS 제공

‘시사기획 창’은 1987년 구로구을 투표함부터 2026년 투표용지 부족과 투표율 입력 논란까지 이어진 사례를 통해 선관위가 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됐는지 추적한다. 선거 관리의 독립성을 지키면서도 실무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도 함께 짚는다.

KBS 1TV ‘시사기획 창’ 562회 ‘K-선관위 무너진 캐슬’은 8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여론조사 개요] KBS 미디어연구소 /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120명 / 2026년 8월 4~10일 / KBS 국민패널 온라인 조사 /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1%포인트 / 응답률 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