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자산군 아니다”던 하그리브스 랜스다운, 9월 3일 ETN 9종 결국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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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최대 투자플랫폼 HL, 비트코인·이더리움 ETN 9종 200만 고객에 개방
FCA 규제완화 11개월 만…자기인증·24시간 냉각기간 거쳐야 매수 가능

하그리브스 랜스다운 관련 이미지 / AI 생성 일러스트(삽화)
하그리브스 랜스다운 관련 이미지 / AI 생성 일러스트(삽화)

영국 최대 투자 플랫폼 하그리브스 랜스다운(Hargreaves Lansdown, HL)이 9월 3일(현지시각)부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상장지수채권(ETN, Exchange-Traded Note) 9종을 고객에 개방했다. 고급투자(Advanced Investing) 서비스를 통해 약 200만 명의 고객이 자격 조건을 충족하면 크립토 ETN을 사고팔 수 있게 됐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이 2025년 10월 8일(현지시각) 약 4년 9개월간 이어진 리테일 투자자의 크립토 ETN 접근 금지를 해제한 지 약 11개월 만이다. 인터랙티브 인베스터(Interactive Investor)와 AJ벨(AJ Bell) 등 경쟁 플랫폼이 이미 규제 완화 이후 몇 달 안에 관련 상품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의 개방은 영국 주요 플랫폼 중 가장 늦은 합류다.

왜 이렇게 늦었나…“비트코인은 자산군이 아니다”에서 입장 전환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은 불과 몇 달 전까지 고객들에게 “비트코인은 자산군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달했던 회사다. 그런 회사가 방향을 바꿔 크립토 ETN을 상장한 만큼, 이번 결정은 업계에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도그 애벗(Doug Abbott) 최고제품책임자는 개방이 늦어진 것이 의도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격 심사, 적합성 평가 등 안전장치를 “정말 제대로 된 형태(really good shape)”로 갖춘 뒤에야 문을 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고객들이 이 상품이 대다수 포트폴리오에 적합하지 않은 고변동성 상품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의 마찰(the right level of friction)”을 두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아무나 못 산다…자기인증·적합성평가·24시간 냉각기간 / AI 생성 이미지
아무나 못 산다…자기인증·적합성평가·24시간 냉각기간 / AI 생성 이미지

아무나 못 산다…자기인증·적합성평가·24시간 냉각기간

크립토 ETN은 FCA 분류상 ‘제한적 대중시장 투자상품(Restricted Mass Market Investment)’에 해당한다. 고객은 먼저 스스로를 고급투자자로 자기인증(self-certify)해야 한다. 이어 온라인 적합성평가를 통과해야 하며, 이 평가를 마친 뒤에도 이용 가능한 ETN 목록조차 볼 수 없는 24시간 의무 냉각기간을 거쳐야 한다.

자격을 얻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고위험 자산 보유 비중을 적격순자산(주택·연금·일부 보험 관련 권리는 제외) 대비 10% 미만으로 유지하려는 ‘제한투자자’ 경로다. 다른 하나는 연 소득 10만 파운드 이상 또는 같은 기준의 순자산 25만 파운드 이상을 보유한 ‘고액자산 인증 개인’ 경로다.

매입한 ETN은 펀드·주식계좌(Fund and Share Account)나 셀프투자연금(SIPP)에 담을 수 있지만, 주식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Stocks and Shares ISA)에는 넣을 수 없다. 거래는 런던증권거래소(LSE) 개장 시간에만 가능해, 가상자산거래소처럼 24시간 거래되지는 않는다. 크립토 ETN은 금융서비스보상제도(FSCS) 보호 대상도 아니어서, 발행사나 커스터디 기관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가 보호받지 못한다.

수수료 구조와 상품 라인업…블랙록부터 비트와이즈까지 9종

상장된 9종의 ETN은 블랙록(BlackRock)의 아이셰어즈(iShares), 위즈덤트리(WisdomTree), 21셰어즈(21Shares), 인베스코(Invesco), 코인셰어즈(CoinShares), 비트와이즈(Bitwise)가 발행했다. 발행사가 부과하는 연간 상품 수수료는 0%에서 0.35% 사이다.

여기에 하그리브스 랜스다운 자체 플랫폼 수수료가 별도로 붙는다. 크립토 ETN 보유에 대해 연 0.35%의 플랫폼 수수료가 매월 최대 12.50파운드로 상한이 걸려 있다. 매매 시 거래빈도에 따라 3.95파운드에서 6.95파운드의 딜링 수수료도 따로 부과된다.

시장은 이미 커지고 있다…LSE 크립토 ETN 거래량 9배 급증

FCA의 규제 완화 이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크립토 ETN 거래량은 약 15억 달러(약 2조원, 1달러 1,361원 기준) 규모까지 늘었다. 이는 기관투자자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전 17개월간 거래량 대비 약 9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 중 비트코인 연계 ETN이 전체 거래량의 80~85%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이더리움 연계 상품이 채운다.

하그리브스 랜스다운보다 앞서 움직인 곳도 있다. 스트라티파이(Stratiphy)는 2026년 4월 영국에서 처음으로 혁신금융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nnovative Finance ISA)를 통해 크립토 ETN을 제공한 플랫폼이 됐다.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은 상품 출시 이후 주로 경험이 많은 투자자들로부터 꾸준한 문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자격 고객이 매수에 나설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다른 플랫폼들도 영국 리테일 투자자의 실제 매수 규모는 크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FCA는 크립토 ETN에 대한 리테일 접근을 되살리면서도 크립토 파생상품(선물·옵션 등)에 대한 리테일 접근은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규제당국은 크립토 ETN 투자자가 일반 규제 투자상품과 같은 수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