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광주시 광산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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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만에 추모공간 조성…유족 위로하고 평화·인권 가치 되새겨

광산구는 지난 3일 지평동 409-11번지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 및 위령제’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박병규 광산구청장과 민간인 희생자 유족, 지역 주민, 사회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70여 년 동안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지역사회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는 뜻을 나눴다.
이번 위령비 건립은 한국전쟁 전후 법적 절차 없이 희생된 민간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들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추진됐다. 동시에 과거의 비극을 되돌아보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한 추모공간을 조성하는 데 의미가 있다.
◆위령비 제막과 위령제 엄숙하게 진행
위령제는 위령비 제막과 비문 낭독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이어 진혼무 추모공연과 추모사, 유족 대표 분향, 기독교·불교 추모의식, 헌화와 분향 순으로 행사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각 종교 의식과 추모공연을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오랜 세월 슬픔을 감내해 온 유족들에게도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행사장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연을 기억하고자 하는 유족과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특히 위령비 제막은 희생자들을 지역사회가 공식적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출발점이 됐다. 그동안 유족들의 마음속에만 남아 있던 억울한 희생의 역사를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기고, 누구나 찾아와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광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발생지 인근에 조성
광산구 삼도동 암탉골은 한국전쟁 당시 ‘광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이 사건은 1950년 7월 광산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광산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을 연행하거나 소집한 뒤 집단 사살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해 사살한 행위를 불법으로 판단한 바 있다.
광산구는 지역 곳곳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지가 분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유족과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위령비 건립 장소를 검토했다.
지난 1월에는 유족과 주민, 사회단체, 관계 부서 등이 참여한 간담회와 설명회를 열어 위령사업의 방향과 건립 장소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논의 끝에 광산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가운데 추정 희생자가 가장 많은 광산 국민보도연맹 사건 발생지인 삼도동 암탉골 인근 지평동 409-11번지 일원을 최종 건립지로 선정했다.
건립 장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희생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현장성, 유족과 주민들의 접근성, 지역사회 추모공간으로서의 상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유족·주민 참여로 위령사업 추진
광산구는 위령비 건립 과정에서 유족과 주민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지난 4월에는 유족과 주요 희생지 주민 대표, 관계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광산구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추진단’을 운영했다. 추진단은 위령비의 형태와 규모, 디자인, 비문, 설치 방법 등을 논의하며 추모공간 조성의 구체적인 방향을 마련했다.
광산구는 추진단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6월 위령비를 건립했다. 위령비는 가로 2.8m, 세로 1.9m, 폭 0.4m 규모로 조성됐다.
위령비 건립에는 지역사회의 자발적인 참여도 이어졌다. 사업비의 두 배가 넘는 지정 후원금이 더해졌고, 지역 어르신과 청년회 등 주민들도 예초와 주변 환경 정비에 직접 참여했다.
행정기관의 사업 추진에 지역 주민과 후원자들이 힘을 보태면서 위령비는 단순한 시설물을 넘어 지역사회가 함께 만든 추모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다. 광산구는 이러한 주민 참여와 관심이 희생자 추모와 역사 기억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광산구 5개 민간인 희생 사건 확인
광산구에 따르면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 사건은 모두 5개로, 추정 희생자는 총 57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45명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진실이 규명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건의 경위와 희생자들의 신원이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사례가 남아 있고, 유족들은 오랜 세월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해 왔다.
민간인 희생 사건은 가족과 지역공동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오랜 기간 공식적으로 추모하거나 기억할 공간이 부족했다. 이번 위령비 건립은 이 같은 역사적 공백을 메우고, 피해자와 유족들이 겪은 고통을 지역사회가 함께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산구는 앞으로도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유족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민간인 희생 사건의 진상과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활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추모행사와 역사교육, 안내자료 제작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미래 세대가 사건의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다시는 같은 비극 되풀이되지 않도록”
박병규 광산구청장은 위령비 건립의 의미를 단순한 기념물 조성에 두지 않았다.
박 구청장은 “위령비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한국전쟁 전후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우리 지역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추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광산구는 위령비가 유족들에게는 희생자들을 마음 놓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과거의 비극을 돌아보며 인권과 평화의 의미를 배우는 장소가 되도록 관리할 계획이다.
또한 위령비 주변 환경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추모 및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할 예정이다.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공간을 찾고 희생자들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안내체계와 관리방안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위령비 제막식과 위령제는 장기간 묻혀 있던 민간인 희생의 역사를 지역사회가 공식적으로 기억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광산구는 앞으로도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유족 지원에 힘쓰는 한편, 과거의 국가폭력과 인권침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지역사회에 확산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