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노무현의 비극 내 탓 아냐... 난 노무현 지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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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서 연재 중인 회고록에서 주장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자신은 오히려 예우와 배려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 진보 진영을 향해서는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냈다. 노 전 대통령 수사와 서거를 놓고 이 전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17년 만에 처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중앙일보 더중앙플러스를 통해 회고록을 연재 중인 이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다룬 편에서 자신이 김경한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지나치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서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업무보고 직후 원세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을 붙잡아 앉히고 "당신, 서울대 나왔지? 법대 맞아?"라고 물었다고 밝혔다. 원 원장이 "네, 맞습니다만…"이라고 답하자 이 전 대통령은 "임채진 검찰총장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지?"라고 다시 물었다고 했다. 원 원장은 "제가 1년 선배입니다"라고 답하자 이 전 대통령은 원 전 원장에게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나는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권양숙 여사도 소환하지 않고 부산의 호텔에서 조사했으니, 노 대통령도 검찰이 봉하마을 근처로 내려가 방문조사를 하는 게 좋겠어요"라고 했다고 주장하면서 "국정원장 자격이 아니라 같은 학교 선배 입장에서 임 총장에게 한번 얘기해 봐요"라고 원 전 원장에게 당부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에 직접 지시할 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건 수사 개입으로 위법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검찰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내 국정철학과도 맞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그래서 메신저를 활용했다고 했다. 원 전 원장 외에 김경한 당시 법무부 장관도 그중 한 명이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검장 출신인 김 전 장관에게 "노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좀 지나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직 대통령인데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라고 해주세요"라고 주문했다고 했다. 정동기 당시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에게도 "노 전 대통령에게 예우를 갖춰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임채진 당시 총장을 유임시킨 배경도 설명했다. 2008년 초 삼청동 안가에서 만난 임 전 총장이 "저는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입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당선인께서 원하시는 분을 새 총장으로 임명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저는 사직하겠습니다"라고 사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이에 자신은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사직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임 총장을 유임시킬 작정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놀란 임 전 총장이 이유를 묻자 "당신이 있어야 노무현 대통령을 지킬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출신인 이종찬 당시 민정수석과 상의한 뒤 세 권력기관장인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국세청장을 유임하기로 결정했다고 이 전 대통령은 주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이명박 전 대통령 / 뉴스1

노 전 대통령을 배려하려 한 이유로는 1996년의 인연을 들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삼계탕집에 들어서던 자신에게 노 전 대통령이 "아니, 이명박 의원님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내가 '노무현 수사'의 총지휘자였던 것처럼 주장하면서 나를 공격하는 이들"을 거론하며 "이른바 '좌파 진영'은 내가 그 비극의 원흉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몰아붙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게 '정치적 프레임'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 해도 정도가 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치 모두가 '노무현 호위무사'였던 양 애통해하면서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았다. 그게 바로 나였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는 박연차 당시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서 비롯됐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 머물던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측근들이 잇따라 구속되면서 수사 대상에 올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를 맡았고 2기 수사진은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이 이끌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된 것은 2009년 4월 30일이다. 전두환·노태우씨에 이어 세 번째로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회장 측에서 건네진 것으로 의심되는 자금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지만 대부분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수사팀 안에서는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 등 일선 수사팀은 구속 수사를 강하게 주장한 반면 임 전 총장과 상당수 당시 검사장은 불구속 쪽으로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원 전 원장과 청와대, 여당 지도부도 불구속에 무게를 실었다고 한다. 검찰이 신병 처리를 결론짓지 못한 채 시간을 끄는 사이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취지의 보도가 나와 노 전 대통령은 여론의 부담까지 안게 됐다.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정리됐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석한 지 3주쯤 지난 2009년 5월 23일 이른 아침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노 전 대통령은 컴퓨터에 미리 남긴 유서에서 자신 때문에 고통받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건강 악화의 심경을 적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