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CCTV 조사도 하지 않고 사망한 채단비씨 사건 종결 일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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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로 지목한 남성이 무혐의 처분받자 사흘 만에 사망
강제수사 한 번 없었다... 유족 "경찰이 영장 번거롭다더라"
아르바이트하던 주점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20세 대학생이 경찰이 가해자로 지목된 주점 사장을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한 지 사흘 만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숨질 때까지 경찰이 단 한 차례의 강제수사도 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파문이 커지고 있다.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이 되고 싶어 했던 고(故) 채단비씨의 이야기다.

지난 1일 채씨 사건의 수사 과정을 다룬 보도에 따르면 준강간 혐의로 신고된 주점 사장 A씨(40대)를 상대로 경찰이 진행한 강제수사는 한 건도 없었다. 압수수색 영장은 신청조차 되지 않았다. 사건의 핵심 증거가 될 수 있었던 폐쇄회로(CC)TV는 A씨 측이 주요 부분만 담아 임의제출한 영상 파일이 전부였다. 저장장치 본체나 원본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A씨의 휴대전화도 압수하지 않았다.
CCTV·휴대전화 확보 없이 끝난 수사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12월 28일 새벽이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한 일본식 주점에서 영업을 마친 뒤 회식 술자리가 시작됐다. 사장 A씨와 채씨를 포함한 직원 다섯 명이 함께한 자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오전 무렵에는 A씨와 채씨 두 사람만 남아 술을 계속 마신 것으로 파악됐다. 채씨의 남자친구는 오전 9시께 통화했을 때도 회식이 이어지고 있었고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몹시 취해 있었다고 전했다.

주점 안팎에는 CCTV 여섯 대가 설치돼 사건 당일에도 계속 녹화되고 있었다. 오전 11시 30분이 지난 시각, 스스로 걷기 힘들 만큼 휘청이는 채씨를 A씨가 뒤에서 바짝 끌어안아 데려가는 장면이 담겼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CCTV 사각지대인 가게 안쪽 자리였다. 채씨는 이곳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필름이 중간중간 끊긴 상태에서 정신이 들어 A씨를 밀쳐내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온 것만 기억난다고 진술했다. A씨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맞섰다.
채씨는 그날 오후 인근 파출소를 찾아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이어 산부인과에서 검진도 받았다. 그러나 52일 만에 돌아온 것은 '혐의없음' 불송치 통보였다. 경찰은 채씨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고 합의 하에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불송치 결정서에는 두 사람이 성관계 전후로 여러 차례 스킨십을 했고 채씨가 웃으며 주점을 나오는 모습이 CCTV에 담겨 있다는 취지가 적혔다.

채씨는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이의신청서를 남긴 채 불송치 통보 사흘 만에 숨졌다. 유족에 따르면 채씨는 자신이 잘못되더라도 변호사가 꼭 이의신청을 해달라는 문자를 남겼다. 채씨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이의신청서에는 동의 의사를 보인 적이 없고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취지가 담겼다.
유족이 확인한 수사 과정의 허점
채씨가 숨진 뒤 CCTV를 열람하러 경찰서를 찾은 유족은 수사의 허점을 잇따라 확인했다. 산부인과 진단서와 의무기록이 수사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채씨의 의무기록을 처음 발급받는 사람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국선변호인도, 경찰도 이 기록을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원의림 변호사는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면 본인 행위가 문제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검색한 기록이나 지인과 나눈 대화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족이 왜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는지 항의하자 경찰은 압수수색이 "번거롭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이 검사에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임의제출도 강제수사이며 CCTV라는 객관적 증거가 있어 가해자 휴대전화를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15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 사건을 다루며 경찰 판단의 근거였던 CCTV 영상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방송은 채씨가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던 상태에서 술을 많이 마신 점에 주목했다. 전문가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과 알코올이 만나면 상승 작용으로 판단 능력이 크게 흐려진다고 설명했다. 겉으로 걷거나 웃는 모습이 관찰되더라도 실제 심리 상태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채씨의 만취 정도는 수치로도 확인됐다. 사건 당일 오후 받은 채혈 검사에서 채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5%로 면허 취소 수준의 만취 상태였다. 성폭행이 벌어진 시각을 기준으로 하면 최소 2배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방송은 고용 관계를 이용한 위력간음죄 검토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점, 만취 상태의 피해자를 상대로 단 한 차례 진술을 받은 뒤 약 50일간 추가 조사 없이 사건을 종결한 점도 문제로 짚었다. A씨는 사건 열흘 전 채씨에게 입맞춤을 하는 등 평소에도 불쾌한 행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 정연수(가명)씨의 사례를 나란히 놓았다. 정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성인이 돼 가해자들을 고소했다. 경찰은 특수강간 혐의에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정씨가 직접 증거를 확보한 뒤에야 검찰이 재수사를 지휘해 가해자들은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피해를 신고하고도 결과가 갈리는 현실을 방송은 '복불복 게임'이라 표현했다.
뒤늦게 시작된 강제수사와 남은 의문
검찰은 뒤늦게 강제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채씨 사망 넉 달 만인 지난 6월 CCTV 하드웨어를 확보했고, A씨 휴대전화 두 대와 채씨 휴대전화를 확보해 포렌식을 맡겼다. 검찰은 CCTV 영상 확인과 참고인 조사 등 보완수사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기존 무혐의 판단을 유지했다. 경찰은 채씨가 숨진 것은 안타깝지만 피해 진술조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이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검사 출신 오선희 변호사는 경찰의 판단 방식 자체를 문제 삼았다. 오 변호사는 준강간 피해자는 술에 취했어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멀쩡히 걸어 다녔으니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고 볼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그런 행동을 했겠느냐는 관점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전화(☎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