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물러난 김용범 “대통령은 사퇴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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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개월 만에 물러난 정책실장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취임 약 1년 3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가운데 그 배경에 대해 본인이 직접 입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김 실장이 지난달 31일 밝힌 사의를 1일 수리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 실장급 인사가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실장은 사퇴 이유로 최근 정책 논란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경제 중심에서 사회복지와 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정 기조를 바꿀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다.

김 실장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오래전부터 이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대안을 고민하며 만류했지만 전날 사의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와서 기조 전환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범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 / 뉴스1
김용범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 / 뉴스1

사의 배경으로는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판단을 들었다. 김 실장은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는 사회복지와 분배 정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특히 성장의 혜택이 국민에게 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른바 ‘K자형 성장’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통합 문제를 우려했다.

그는 자신의 후임에 대해서도 경제·산업 중심 정책을 이어가는 인물보다는 사회정책과 민생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정책실장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을 큰 틀에서 조율하고 여러 부처의 정책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 자리인 만큼 후임 인선에 따라 정책의 무게중심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김 실장은 정책실장으로 물러나기 전까지 이재명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을 조율해왔다.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초대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발탁됐다. 당시 대통령실은 김 실장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도와 국제적 경험, 금융 분야 전문성을 주요 발탁 배경으로 설명했다.

그가 경제관료로 걸어온 길은 금융정책과 거시경제를 두루 거친 것이 특징이다.

196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김 실장은 광주 대동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제30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재무부와 재정경제부에서 근무했다. 은행제도과장 등을 지냈고 세계은행에서도 선임재무전문가로 일했다. 세계은행 근무 기간에는 국제 금융과 경제정책을 다루면서 국제적인 경험을 쌓았다. 이후 대통령 직속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서 국제금융시스템 개혁 업무를 맡기도 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자본시장국장,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 등을 거쳤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으면서 금융정책 전반에서 경력을 쌓았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증권시장과 선물시장 등에 대한 조사·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위원회 산하 조직이다.

이재명 대통령 / 뉴스1
이재명 대통령 / 뉴스1

김 실장의 경력에서 또 하나 중요한 시기는 문재인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제1차관을 지낸 때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에 경제정책 당국의 핵심 실무자로 금융시장 안정과 경제위기 대응 업무에 참여했다. 당시 정부는 금융시장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금융시장 안정 패키지 등을 추진했고, 김 실장은 이 과정에서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민간으로 이동했다. 블록체인·가상자산 분야 투자사인 해시드의 연구 자회사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를 맡아 디지털금융과 가상자산 분야에서 활동했다. 이후 다시 공직으로 돌아와 이재명 정부의 첫 정책실장이 됐다.

정책실장으로서 김 실장이 맡은 업무는 경제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경제성장과 산업정책, 금융시장, 부동산, 조세 등 정부의 주요 정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부처 간 조율을 담당했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맞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제정책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논쟁이 큰 정책에서도 책임 소재가 거론될 수밖에 없다.

실제 김 실장이 재임하는 동안 여러 정책을 둘러싸고 논쟁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이다. ETF는 여러 주식이나 채권 등을 하나의 상품처럼 묶어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금융상품이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자산의 가격 움직임보다 더 큰 폭의 수익 또는 손실이 발생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김 실장은 단일 종목을 대상으로 하는 레버리지 ETF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 관여했다. 이후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진 시점과 맞물리면서 이 상품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커졌고, 야권에서는 김 실장에게 정책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여권 내부에서도 경제정책과 증시 관련 논란에 대해 책임지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정책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에는 비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거주 1주택자와 다르게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종합부동산세는 일정 기준을 넘는 주택과 토지 등을 보유한 사람에게 부과되는 보유세다. 당시 정부안은 실거주 여부에 따라 세 부담에 차이를 두는 내용을 담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구분하지 않는 방향을 요구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김 실장은 이 과정에서 당의 입장을 상당 부분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결국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차등 적용 방안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정리했다.

용산공원 개발을 포함한 부동산 공급 정책도 김 실장과 연결돼 거론됐다. 정부가 서울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용산공원 주변 개발 문제 등을 검토하면서 서울시와의 협의와 개발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김 실장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조율 과정에 관여했던 만큼 야권에서는 관련 정책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했다.

김용범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 / 뉴스1
김용범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 / 뉴스1

김 실장은 스스로도 정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5월에는 한국 금융 시스템을 비판하는 글을 잇달아 공개하면서 자신 역시 금융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해온 관료였다는 점을 언급했다. 당시 그는 신용등급을 중심으로 한 대출 구조와 금융기관의 관행, 금융당국의 역할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자신이 과거의 금융 시스템을 설계하고 작동시키고 정당화해온 사람이라는 취지의 자기반성도 내놨다.

이번 사퇴 역시 이러한 정책 책임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대통령실은 김 실장의 사퇴를 특정 정책 하나의 실패에 대한 경질이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김 실장 본인도 최근 정책 논란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책임을 지는 것이 숙명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그는 사퇴를 결정한 심경을 두고 “시원섭섭하다”고 표현했다. 동시에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실장이 물러나면서 관심은 후임 정책실장이 어떤 인물로 채워질지에 쏠리고 있다. 특히 김 실장이 사퇴 이유로 경제 성장의 성과가 국민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는 문제와 사회통합을 언급한 만큼, 후임자의 성향과 전문 분야에 따라 이재명 정부 2년차 정책의 무게중심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