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성 1주기 앞두고 또 전해진 비보... 전설적인 1세대 코미디언 유성, 88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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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1번지', '웃으면 복이와요' 등 출연

코미디언 유성 /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홈페이지
코미디언 유성 /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홈페이지

한국 코미디 역사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희극인 유성(본명 유종수)이 31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고인은 1930년대 후반에 태어나 TV 방송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기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기틀을 다진 1세대 코미디언으로 분류된다.

주요 출연작으로는 KBS의 '유머 1번지'와 '명랑극장', 그리고 MBC '웃으면 복이와요', '청춘만만세' 등이 있다.

31일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등에 따르면 고인의 빈소는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9월 2일 오전 6시 30분으로 확정됐고 장지는 수원승화원이다.

1938년에 출생한 유성은 대한민국 코미디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유성은 사단법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회원 번호 8번을 보유한 원로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의 회원 번호는 단체 설립 당시부터 코미디 역사에 남긴 발자취와 활동 연한을 기준으로 부여된 번호다.

유성보다 앞선 한 자릿수 회원 번호를 가진 인물들은 구봉서와 송해, 남성남 등 한국 희극사의 중추적인 인물들이다.

구봉서는 1926년 출생해 과거 악극단 무대를 거쳐 영화와 TV 코미디 장르를 개척했다.

송해는 1927년 출생해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로 장기간 활동하며 상징적인 기록을 남겼다.

남성남은 남철과 콤비를 구성해 다수의 무대에서 활동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구축했다.

구봉서와 송해, 남성남 등 대한민국 TV 방송 초창기 코미디를 이끌었던 1세대 희극인들이 앞서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유성마저 타계하면서 한국 코미디 장르의 기반을 닦았던 원로 연예인들의 시대가 점차 역사 속 기록으로 남게 됐다.

회원 번호 18번이었던 전유성도 약 1년 전인 지난해 9월 25일 향년 76세로 별세했다.

유성이 이들과 함께 협회 초창기 회원 번호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방송 코미디 산업 태동기에 그가 담당했던 비중을 입증한다.

유성은 KBS 소속 희극인으로 다수의 간판 프로그램에 투입돼 활약했다. 1980년대 TV 코미디의 부흥기를 이끈 KBS 2TV '유머 1번지'는 고인의 대표적인 활동 무대였다.

1983년에 첫 방송을 송출한 '유머 1번지'는 기존의 슬랩스틱 위주 코미디에서 벗어나 사회 풍자와 인물 중심의 콩트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다. 다수의 인기 코너와 유행어를 배출하며 1992년 종영할 때까지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다.

당시 TV 시청자들은 매주 정해진 요일마다 방송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호응했고 출연자들의 대사는 다음 날 사회적 유행어로 번질 만큼 파급력이 컸다.

유성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아 희극 연기를 선보였다. 아울러 '명랑극장' 등 TV 방송 초기 형태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무대 연기 방식을 TV 매체에 적합하게 변형시키는 과정에 기여했다.

방송사 간의 전속 개념이 엄격하던 시기였음에도 유성의 활동 반경은 타 방송사로도 확장됐다. 고인은 MBC의 대형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와요'와 '청춘만만세'에 연이어 출연했다.

1969년 방영을 시작한 '웃으면 복이와요'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코미디언들을 TV 스튜디오로 대거 유입시킨 한국 코미디 역사의 분기점이 된 프로그램이다. 출연진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상황극 포맷을 TV 화면에 안착시켰다.

'청춘만만세' 역시 MBC 주말 시간대에 편성돼 상황극 위주의 대본 코미디를 선보였다. 유성은 정극 연기에 기초한 안정적인 톤을 유지하며 다양한 설정의 콩트를 소화해 내는 희극인으로 방송가에 이름을 알렸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흑백 TV이 컬러 TV로 전환되고 방송 장비와 제작 여건이 급변하던 과도기였다. 당시 희극인들은 매주 주어지는 새로운 대본을 짧은 시간 안에 암기하고 생방송에 가까운 환경에서 녹화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유성을 포함한 1세대 방송 코미디언들은 극장식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TV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 동선과 타이밍을 스스로 확립해 나갔다.

이들이 구축한 방송 코미디의 제작 시스템과 연기 형식은 1990년대 이후 각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신인 개그맨을 선발하는 공채 제도를 도입하고 코미디 프로그램이 세분화되는 데 필요한 토대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