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직업' 3위 변리사, 2위 법률 관련 사무원, 1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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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절반은 'AI 중·고노출' 직종서 일한다
인공지능(AI)이 가장 깊숙이 파고든 일자리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이 아니라 변호사·변리사·회계사가 앉은 사무실이었다. 신체를 쓰는 기능직일수록 AI와 거리가 멀었다. 반대로 글을 읽어 해석하고 숫자를 다루는 고소득 전문직일수록 AI에 크게 노출돼 있었다. 특히 30대 고용보험 가입자는 절반 이상이 이런 'AI 중·고노출' 직종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이런 분석을 담은 계간 '고용이슈' 2026년 여름호를 31일 발간했다. 이번 호는 고용보험 행정통계와 사업체 조사, 패널조사를 총망라해 AI가 일자리를 줄이는 '대체효과', 업무 효율을 높이는 '보완효과', 시장을 키우는 '생산성효과', 새 일자리를 만드는 '신규과업 창출효과' 등 네 갈래로 AI의 영향을 뜯어봤다.
연구진은 한국직업정보(KNOW)와 고용행정 데이터베이스(DB), 해외 연구 결과를 접목해 415개 직업의 AI 노출도를 산출했다. 이번 분석에는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AI 노출도 지수가 바탕이 됐다. 그 결과 노출도가 가장 높은 직업은 변호사였다. 법률 관련 사무원이 2위, 변리사가 3위였다. 생명과학 시험원과 회계사가 각각 4위와 5위로 뒤를 이었다. 이어 직업 관련 상담사(6위), 산업안전 및 산업위험 관리 기술자(7위), 해외 영업원(8위), 고위 공무원 및 정당·특수단체 임원(9위), 세무사(10위) 순이었다. 기자 및 언론 관련 전문가는 12위, 데이터 분석가는 14위, 판사 및 검사는 19위에 올랐다.
이들 직업이 상위권에 몰린 배경에는 업무의 핵심이 '텍스트 해석'과 '정량 정보 분석'에 있다는 공통점이 자리한다. 대형언어모델(LLM)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는 그동안 자동화가 손대지 못한 영역, 즉 언어를 이해하고 문서를 만들며 흩어진 정보를 종합하는 인지적 과업까지 자동화 범위를 넓혔다. 이런 과업의 비중이 큰 고소득 사무·전문직이 노출도 상위에 오른다는 것이 국내외 연구의 공통된 설명이다.
법률 직군이 1·2·3위를 사실상 휩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변호사와 법률 사무원, 변리사의 하루는 방대한 판례와 계약서를 읽고, 쟁점을 요약하며, 서면 초안을 쓰는 일로 채워진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계약서 검토와 판례 리서치, 법률 메모 작성, 문서 요약이 생성형 AI가 가장 먼저 파고든 법률 업무로 꼽힌다. 수만 건의 문서를 몇 시간 만에 훑어 핵심 조항과 위험 요소를 걸러 내는 계약 검토 도구가 대표적이다.

회계사와 세무사가 상위권에 든 이유도 비슷하다. 재무 데이터를 정리해 보고서로 엮고, 감사 결과를 문서로 옮기며, 각종 자료를 요약·검토하는 과업이 AI가 잘하는 일과 정확히 겹친다. 데이터 분석가와 기자, 산업안전 관리 기술자처럼 규정과 자료를 해석해 글과 수치로 풀어내는 직업들이 함께 노출도 상위에 이름을 올린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반대로 노출도가 가장 낮은 직업은 도금 및 금속 분무기 조작원이었다. 미장공, 떡 제조원, 정육 가공원 및 도축원, 일차전지 및 이차전지 제조 기계 조작원 등 신체 활동이 필수인 현장 생산·기능직이 하위권에 자리했다. 손과 몸으로 하는 일은 여전히 AI가 대신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노출도가 높다고 해서 그 직업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노출도는 AI의 응용 분야가 해당 직업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재는 지표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직업별 노출도를 고용보험 자료와 맞춰 보니 지난해 고용보험 가입자 1527만5000명 가운데 19.1%인 291만6000명이 고노출군에 속했다. 고노출군의 평균 연령은 40.2세로 전체 평균 45.7세보다 젊었다. 30대만 떼어 놓고 보면 가입자의 53.1%가 중·고노출 직종에 종사했다. AI의 파장이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에 쏠려 있다는 의미다.
실제 고용 흐름을 보면 고노출군 가운데 회계·세무·감정 전문가와 회계·경리 사무원은 최근 고용보험 가입자가 꾸준히 줄었다. 중노출군인 안내·고객상담·통계·비서 및 기타 사무원도 완만한 증가세를 이어 오다 지난해 1000명 감소로 돌아섰다.
다만 노출도 수준과 무관하게 2023년 이후 거의 모든 직종에서 고용보험 취득자가 줄었다. 연구진은 신규 취득자 감소의 결정적 원인으로 AI 대체가 아니라 청년 인구 감소와 경제활동참가율 하락 같은 노동 공급 요인을 지목했다.
윤정혜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분석팀장은 "최근 고용보험 전체 가입자가 감소하는 것은 인구 감소 등 공급 측면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앞으로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고용 현황을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시계열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윤 팀장은 "AI 확산 영향이 집중될 가능성이 큰 청년층, 또는 생성형 AI와 대형언어모델(LLM)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는 고객 안내·상담 직종 등의 고용구조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실제 사용 데이터로 관찰한 노출도를 지역별 고용조사와 연계한 별도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챗GPT가 나온 2022년 하반기를 전후해 전체 취업자 수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30세 미만 청년층에서는 차이가 감지됐다. 2022년을 100으로 놓으면 지난해 고용지수는 고노출군이 86.6으로, 저노출군 92.5보다 5.9포인트 더 떨어졌다. 다만 청년 고노출군의 고용 감소가 챗GPT 등장 이전부터 진행됐다는 점에서 연구진은 생성형 AI만의 영향으로 보기 어렵고 인구구조 변화가 겹친 결과로 해석했다. 국내 취업자의 평균 관찰 노출도는 8.0%로, 인지적 사무직에 집중됐다.
기업 현장에서 AI는 사람을 줄이는 도구라기보다 일을 덜어 주는 도구에 가까웠다. 2297개 사업체를 조사한 결과 AI 도입률은 28.6%로 아직 초기 단계였다. 도입 기업의 75.6%는 생성형 AI를 쓰고 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인원 감축이 아니라 반복 업무를 줄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AI를 활용했다. AI를 도입한 기업일수록 매출 성장 기대는 컸지만 고용은 그만큼 늘지 않는 '성장-고용 디커플링'도 확인됐다.
사업체의 AI 도입이 채용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산업마다 갈렸다. 기계장비와 연구개발, 정밀기기, 정보통신업 등은 AI 인력 수요와 신규 채용 수요가 모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반대로 사업지원서비스와 보건사회, 문화·예술 분야는 두 수요가 모두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도입 수준 자체도 정보통신업이 가장 높았고, 금융업과 연구개발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처럼 데이터 활용이 활발한 산업이 그 뒤를 이었다. 운수업과 건설업, 일부 전통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IT개발직과 시각·디지털 디자인, 일반사무직 등 재직자 305명에게 물어보니 AI 활용에 따른 역량 향상 정도는 5점 만점에 평균 2.97점이었다. 효율성이 3.40점으로 가장 높았고 문제해결역량 3.15점, 생산성 3.14점이 뒤를 이었다. 창의성(2.79점)과 협업 역량(2.37점)의 향상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기술을 새로 익혀야 하는 부담(52.1%)과 일자리 불안(38.7%)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생성형 AI를 끌어다 쓰는 상향식 도입이 활발했다. 반면 조직의 인사·보상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연구진은 단순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신입·저연차 직원이 기초 업무로 실력을 쌓는 '숙련 사다리'가 끊길 수 있다고 봤다. 청년의 숙련 기회를 지키기 위해 'AI 온보딩형 실무훈련' 지원이 시급하다는 제언도 내놨다.
청년들의 반응 자체는 긍정적이었다. 지난해 청년패널조사를 분석하니 생성형 AI를 쓰는 청년 취업자는 그렇지 않은 쪽보다 업무 내용 만족도가 높았다. 단순한 업무 만족을 넘어 자기발전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만족이 특히 뚜렷하게 올라갔다.
권우현 한국고용정보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궁극적 영향은 기술 자체의 속성보다 사회적·정책적 선택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AI 기술과 노동의 상호작용 속에서 핵심 기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산업과 직업, 직무 수준에서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AI를 단순히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파트너로 활용한다면 고용안정과 생산성 향상의 상생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인간 중심의 AI 노동시장 발전전략'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용이슈' 2026년 여름호 전체 원문은 한국고용정보원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