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단어 안 썼다”더니… ‘이 은어’ 쓴 KFA 심판진, 지소연 비하 논란에 황당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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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데이’ 은어 교신 폭로… 지소연 비하 논란에 휩싸인 KFA 심판진

“생리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KFA) 심판팀이 내놓은 첫 해명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심판진 사이에서 ‘걸스데이(Girl’s Day)’라는 표현이 실제로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경기도 수원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 수원FC 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경기에서 2-1로 패한 수원FC 위민 지소연이 아쉬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뉴스1
지난 5월 경기도 수원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 수원FC 위민과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경기에서 2-1로 패한 수원FC 위민 지소연이 아쉬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뉴스1

직접적인 단어는 피했을지 몰라도, 여성 선수의 생리 현상을 비하하고 희화화하는 취지의 은어를 심판진이 무선 교신으로 주고받았다는 점을 KFA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스타 지소연(수원FC 위민)이 경기 도중 느꼈던 분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파장은 한층 더 거세지고 있다.

경기 도중 터진 분노, 심판진 교신 속 ‘걸스데이’의 실체

논란의 발단은 지난 28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 위민과 서울시청의 2026 WK리그 경기였다. 전반 30분 무렵, 경기장 안의 분위기는 갑작스럽게 냉각됐다. 수원FC의 베테랑 미드필더 지소연이 배선영 주심을 향해 강력하게 항의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지소연은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했고, 이 과정에서 물병을 던지는 등 평소와 달리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경기는 약 4분간 중단됐다.

수원FC위민 지소연이 지난 5월 경기 수원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뉴스1
수원FC위민 지소연이 지난 5월 경기 수원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4강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뉴스1

지소연이 이토록 강하게 폭발한 이유는 심판진이 주고받은 무선 교신 내용 때문이었다. 경기 후 지소연은 심판진 사이에서 “초반부터 예민하다. 생리하나 봐”라는 취지의 발언이 흘러나왔고, 이를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들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KFA 심판팀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심판팀 측은 “무선 교신 과정에서 ‘생리’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정 선수(지소연)를 지칭해서 한 말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추가 취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KFA의 해명이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심판진이 교신에서 실제 사용한 단어는 여성의 생일을 의미하거나 생리 현상을 돌려 말하는 은어인 ‘걸스데이’였다. KFA 심판팀 역시 뒤늦게 ‘걸스데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으며 이 단어가 생리를 뜻하는 취지로 쓰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생리’라는 두 글자만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뿐 그 뜻을 내포한 은어를 경기 감독관과 심판진이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특정 선수 지칭 안 했다는 KFA… 중계 화면에 담긴 진실

KFA 측은 단어의 사용은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특정 선수를 지칭해 비하하려던 목적은 아니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기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예민해져 있다는 점을 심판진끼리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적인 해프닝이라는 취지다. 주심이 “양 팀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예민하다”는 취지로 말을 건네자 다른 심판이 “걸스데이는 나인데”라며 농담조로 답했다는 식의 해명도 덧붙여졌다.

지난해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여자부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 후반전 대한민국 지소연이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뉴스1
지난해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여자부 대한민국과 대만의 경기, 후반전 대한민국 지소연이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뉴스1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축구 팬들과 누리꾼들의 공분을 더 사게 만들었다. 당사자인 지소연은 해당 발언을 자신이 똑똑히 들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으며 부적절한 언사에 곧바로 강하게 항의하던 당시 상황은 중계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송출됐다.

소식을 접한 팬들은 “직접적인 단어만 쓰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뜻이냐”,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경기장에서 선수를 향해 저런 수준 낮고 성차별적인 표현을 쓰느냐”, “공정한 경기를 관장해야 할 심판진이 선수가 듣는 앞에서 그런 언행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자격 미달”이라며 폭풍 같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항의한 선수는 출전 정지, 발언한 심판진은 ‘조사 중’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안으로 인해 당장 피해를 보는 쪽이 선수라는 점이다. 지소연은 부적절한 발언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옐로카드를 받았다. 이 경고로 인해 경고가 누적된 지소연은 다음 달 2일에 열리는 화천KSPO와의 중요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징계를 안게 됐다.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서 1무 2패의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이 2023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뉴스1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서 1무 2패의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이 2023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뉴스1

심판진의 부적절한 언어폭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과 동료 선수들의 인권을 지키려 했던 선수는 당장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없는 불이익을 받게 된 반면 문제의 발언을 주고받아 경기장을 혼란에 빠뜨린 심판진에 대해서는 아무런 즉각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처지가 바뀐 듯한 이 기형적인 구조는 KFA의 행정력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수원FC 위민 구단은 31일 KFA에 공식적으로 서한을 보내 정식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다. KFA는 다음 달 3일로 예정된 심판평가협의체에서 이번 사안을 공식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진상 조사 결과에 따라 심판진에 대한 행정 조치 및 징계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미 선수에게 가해진 실질적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 지소연

이번 사태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피해 당사자가 한국 축구사(史)에 다시 없을 굵직한 족적을 남긴 전설적인 선수, 지소연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소연은 남녀를 통틀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최다 출장 기록과 최다 득점 기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한국 축구의 상징이다.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에 나서는 대표팀 지소연이 2023년 경기도 파주NFC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뉴스1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에 나서는 대표팀 지소연이 2023년 경기도 파주NFC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뉴스1

그의 축구 인생은 한국 여자축구의 발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2010년 FIFA U-20 여자 월드컵 당시 지소연은 눈부신 활약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현영, 김나래 등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뛴 지소연의 압도적인 기량 덕분에 대한민국은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세 번째로 FIFA 주관 대회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썼다.

이후 지소연은 세계 최고 무대로 진출해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다. 2014년 1월, 잉글랜드 여자 축구 명문 첼시 레이디스(현 첼시 FC 위민)와 2년 계약을 체결하며 빅리그에 입성했다. 당시 첼시 구단은 정확한 금액을 밝히지 않았으나 최고급 대우와 함께 주거지, 왕복 항공권, 어학 연수 프로그램 등을 전폭 지원했다. 유니폼 마킹에도 성인 'Ji' 대신 자신의 이름인 'So Yun'을 새겨 넣으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영국 무대 진출 첫해부터 지소연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2014시즌 19경기에 출전해 9골을 몰아친 그는 세미프로리그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던 첼시 레이디스를 리그 준우승으로 견인했다. 지소연의 활약 덕분에 첼시는 창단 후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는 기적을 연출했다. 지소연 역시 PFA(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11과 WSL1 선수들이 직접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싹쓸이했다.

2015년은 지소연의 커리어에서 정점을 찍은 해였다. 그는 잉글랜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PFA '올해의 여자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지소연은 WSL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 런던 최고의 여자 선수상에 이어 PFA 올해의 선수상까지 휩쓸며 당당히 개인 수상 3관왕에 올랐다.

같은 해 8월 축구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영국 FA컵 결승전은 지소연이라는 이름 석 자를 영원히 각인시킨 무대였다. 전반 37분, 팀 동료 알루코의 패스를 받은 지소연은 상대 노츠 카운티의 골키퍼와 수비진을 특유의 침착함으로 농락한 뒤 선제 결승골을 밀어 넣었다. 이 골은 첼시 레이디스 창단 첫 우승이자 지소연의 영국 무대 첫 트로피를 안겼으며 지소연 자신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골을 터뜨린 최초의 한국인 축구 선수'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었다.

팬들에게 지소연은 화려한 기술의 대명사인 '지메시'라는 별명으로 익숙하다. 전성기 시절 그의 전매특허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상대 수비진을 힘들이지 않고 돌파하는 유려한 드리블, 높은 골 결정력,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공간 창출 패스였다. 여기에 전담 키커로서 보여주는 예리한 프리킥 능력까지 겸비한 완벽한 공격 자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