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재제청, 어느 쪽 택해도 부담…조희대 대법원장이 처한 난감한 상황
작성일
청와대, 기존 후보 중 재제청 요구
추천위 재구성 땐 대법관 공백 장기화 우려
조희대 대법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하지 않을 전망이다. 대법관 후보 제청을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권은 조 대법원장의 불출석에 반발하며 고발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31일 조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서면 제청 경위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등을 다루는 긴급현안질의를 연다. 법사위는 조 대법원장과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을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조 대법원장은 지난 28일 불출석 의견서를 냈다.
조 대법원장은 의견서에서 대법관 제청권이 헌법이 보장한 독립적 권한이라는 점을 설명하며 불출석 사유를 밝혔다. 국회가 제청권 행사에 관해 증언하도록 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 원칙에 위배되고 대법원장에게 국회 출석과 답변 의무를 부과하지 않은 국회법 제121조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조희대 불출석에 여권 반발…고발 가능성도 언급

서영교 법사위원장은 3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 대법원장에게 법사위 출석을 재차 요구했다. 서 위원장은 국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증인 출석을 의결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불출석이 이어질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조 대법원장의 불출석 사유를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국회 증언감정법을 따라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있는데도 근거 없는 사유로 불출석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진보당 소속 법사위원들도 공동 입장을 내고 조 대법원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이들은 대법원장이 기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결과를 존중해 새 후보를 신속하게 재제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회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대법관 임명동의권을 가진 국회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조 대법원장의 불출석과 대법관 재제청 문제를 두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사법부와 입법부의 헌법상 권한이 침해된 문제로 보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 문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뒤 국회의 임명동의권과 관련한 법적 대응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이번 갈등은 조 대법원장이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면서 불거졌다.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는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제청했다. 손 부장판사는 청와대와 사전 합의 없이 서면으로 제청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여권에서는 제청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청와대는 지난 28일 손 부장판사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하고 조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를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결과를 존중해 재제청 절차를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해 달라는 입장도 함께 전달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손 부장판사 제청을 반려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번 제청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기존 추천 후보 가운데 여성 법관인 김민기 고법판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남은 3명 중 재제청 요구…법원은 추천위 재구성 검토

조 대법원장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제청했다. 청와대는 이 가운데 손 부장판사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다른 후보를 다시 제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존 추천위원회가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추천한 후보는 김민기 고법판사와 박순영 고법판사, 손봉기 부장판사, 윤성식 부장판사다. 손 부장판사를 제외하면 김민기·박순영·윤성식 후보가 남는다.
청와대와 여권은 이 가운데 한 명을 다시 제청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승원 의원은 법원조직법이 대법관 제청 때마다 추천위원회를 새로 꾸리도록 한 것은 현재와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규정이라며 기존 추천 결과가 모두 무효가 됐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남은 세 명 가운데 한 명을 재제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내부에서는 다른 의견이 나온다. 현행 법원조직법 41조의2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때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한다. 추천위가 후보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새로운 후보자를 제청할 때 추천위원회부터 새로 꾸려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법원 안팎에서는 2012년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 사퇴 당시 사례도 거론된다. 당시 대법원은 기존 추천위에서 추천된 다른 후보를 곧바로 제청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하고 후보 천거 절차부터 다시 시작했다. 대법원은 당시 관계 규정 취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원점에서 인선 절차를 다시 밟았다.
추천위를 새로 구성하면 대법관 공석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기존 후보 가운데 한 명을 다시 제청하면 청와대와의 갈등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지만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둘러싼 논란이 남는다.
청와대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기존 후보 가운데 다른 인물을 재제청할 경우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사이 관계도 쟁점이 된다.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를 거부한 뒤 다른 후보를 계속 요구할 수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재제청을 반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제기됐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한 고법판사는 기존 추천위 후보 가운데 새 후보를 내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 제청을 여러 차례 반려하면 대통령이 원하는 인물을 임명할 수 있게 된다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에 대통령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할 사안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도 새로운 추천위를 구성할지 기존 후보 가운데 다시 제청할지는 청와대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는 취지로 지적했다. 법원조직법을 개정하더라도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규정한 헌법 취지에 어긋나면 위헌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에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권한까지 포함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대통령의 임명 거부 자체를 위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도 최종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청와대가 특정 후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기존 추천 후보 가운데 다른 사람을 고르라고 요구한 것은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단순히 제청을 반려하는 것을 넘어 이미 추천된 사람 가운데 골라 다시 제청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제3의 후보 제청·권한쟁의심판 가능성도 거론
조 대법원장이 기존 추천 후보가 아닌 제3의 인물을 제청하는 방법도 법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규정하지만 추천 결과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2011년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추천위 밖 인물을 제청한 사례는 없다.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가기관 사이에서 헌법상 권한을 둘러싼 다툼이 발생했을 때 헌재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다만 청와대와 대법원의 대립이 커지고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대법관 인선 절차가 멈출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동안 대법관 22명이 새로 임명된다는 점도 이번 논란과 맞물려 있다. 대법관 증원에 따라 2028년부터 추가 인선이 시작되며 현 정부 임기 내 신규 증원 등을 포함해 모두 22명의 대법관이 임명될 예정이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대법관 인선 절차가 향후 임명 과정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 나온다. 당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향후 대법관 임명 원칙의 선례가 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물러설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과거 대통령이 사법부의 제청을 거부한 사례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1958년 김동현 전 대법관이 법관회의에서 대법원장 후보로 제청됐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우익 자유당 경북도당위원장을 대법원장으로 제청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대법원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임명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김두일 전 대법관은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이우익 위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부적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사법부가 조용순 전 대법관을 다시 제청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두 번째 제청도 거부했다. 자유당은 법관회의 제청 절차 없이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직접 임명할 수 있도록 법원조직법 개정까지 추진했으나 대한변호사협회 등의 반발 이후 철회했다.
조희대 “이번 주 정식으로 알리겠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와 관련한 입장을 이번 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8일 대법원 청사를 나서면서 기자들과 만나 자세한 내용은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정리가 되는 대로 공식적으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꾸릴 예정인지 묻는 질문에도 모든 내용을 이번 주 정식으로 알리겠다고 답했다. 조 대법원장은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뜻도 밝혔다.
대법원은 현재 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후보 인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는 방안과 기존 후보 가운데 손 부장판사를 제외한 다른 후보를 재제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