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우리 청년들이 한국과 일본 오가면서 일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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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청년 노동시장 연결, 저출산의 경제적 해법이 될 수 있을까?
AI·로봇·지역교류로 인구감소 시대 경제 효율성 높이자는 취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국과 일본의 저출산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양국 경제를 연결하는 ‘경제공동체’ 구상을 제안했다.
청년의 일자리와 소득 기회를 한국과 일본으로 넓히고 지역 교류를 확대하는 동시에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노동력 감소에 대응하자는 내용이다.
최 회장은 30일 일본 센다이 웨스틴호텔에서 열린 ‘제1회 한일 저출산대책 심포지엄’ 개회사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시장의 크기를 더 키워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의 연계를 경제공동체 수준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한일 저출산대책 교류위원회 한국 측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저출산을 단순히 출생아 수가 감소하는 인구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기업과 경제가 사용할 수 있는 노동력과 소비시장의 규모가 함께 줄어드는 문제로 진단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수가 과거와 비교해 크게 감소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양국에서 한 해 태어나는 아이가 약 200만명 수준이었다면 현재는 100만명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올해 태어난 아이가 일터의 새로운 얼굴이 되려면 20년이 걸린다”며 “앞으로 10년 동안 노동시장에 들어올 사람들은 이미 모두 태어났다”고 말했다.
이는 출산율을 지금 높인다고 해도 노동력 부족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갓 태어난 아이가 당장 기업에서 일하거나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 회장이 제시한 해법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과 함께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인구 감소에 경제가 적응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과 일본 청년에게 다른 저출산 문제
이날 공개된 ‘한일 청년 의식조사 2026’ 결과는 한국과 일본의 저출산 문제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줬다.
조사에서 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미혼 청년은 일본이 42.4%로 한국의 18.6%보다 높았다.
약혼자나 교제 중인 이성이 있다는 응답도 한국이 32.2%, 일본이 21.4%로 한국에서 더 높았다.
반면 미래의 가장 큰 불안 요소로 고용과 소득을 꼽은 비율은 한국이 43.1%로 일본의 32.5%보다 높았다.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한국 청년은 결혼에 대한 의향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이를 실제 결혼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고용과 소득, 주거 등의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결혼 자체에 대한 의향이 낮아지는 문제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나타났다.
결국 같은 저출산 문제라도 대응 방식에는 차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청년이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확보하고 주거 부담을 낮출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결혼과 출산의 선택 가능성을 높이는 데 중요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청년층이 늘어나는 배경을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 회장은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꼽았다.
기업의 역할도 강조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공동체’는 무엇을 의미하나
최 회장의 제안에서 핵심은 한·일 경제공동체다.
경제공동체는 국가 간 경제적 장벽을 낮추고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사람과 자본, 기술 등의 교류를 확대하는 형태를 뜻한다.
최 회장은 당장 양국의 정치·경제 제도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방식보다 청년의 취업과 교육, 자격·경력 인정 등 실질적인 경제활동을 연결하는 데 무게를 뒀다.
첫 번째 방안은 노동시장의 연결이다.
한국 청년이 일본에서 일하고 일본 청년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대국에서 취업할 수 있는 제도와 함께 한 나라에서 취득한 자격이나 쌓은 경력을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하는 문제가 포함된다.
현재 국가별로 노동시장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취득한 자격이 다른 나라에서 그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전문직이나 기술직에서 필요한 자격을 한국에서 취득했더라도 일본에서 일하려면 별도의 자격이나 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다.
최 회장의 구상은 이런 제도적 차이를 줄여 청년이 취업할 수 있는 시장 자체를 넓히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할 기업과 직무가 부족한 청년에게 일본이라는 선택지를 추가하고, 일본 청년에게도 한국 기업과 산업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하면 양국 청년의 경제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해 한·일 양국을 오간 인원이 1300만명을 넘어섰다는 점도 언급했다.
다만 현재 양국의 교류 상당 부분이 관광에 집중돼 있는 만큼 이를 취업과 교육, 경력 개발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최 회장의 주장이다.
지방을 연결하면 지역경제도 달라진다
두 번째는 지역 교류 확대다.
최 회장은 한·일 교류가 서울과 도쿄 등 대도시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고 봤다.
일본에는 한국인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이 있고 한국에도 일본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지역이 많다. 양국의 지역과 지역을 직접 연결하면 관광뿐 아니라 소비와 투자, 교육, 문화 교류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역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고 돈이 쓰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관광객이 지역에서 숙박하고 식사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음식점과 숙박업체뿐 아니라 교통·유통·서비스업 등 여러 산업으로 소비가 확산될 수 있다.
여기에 장기 체류와 교육, 취업까지 연결되면 단순 관광보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
최 회장이 과거 제안했던 한국과 일본의 여러 지역을 한 번에 방문하는 관광상품을 사례로 든 것도 이런 지역 간 연결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람이 줄면 AI와 로봇이 노동력을 대신해야
세 번째는 기술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기업이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다. 동시에 고령인구가 늘면 의료와 돌봄에 필요한 노동력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든 업무를 기존 방식대로 사람이 수행하려면 노동비용이 올라가거나 서비스 공급 자체가 부족해질 수 있다.
최 회장이 AI와 로봇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을 강조한 이유다.
생산성이란 일정한 시간과 노동력으로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직원 10명이 하루 동안 처리하던 업무를 AI가 일부 자동화해 8명이 처리할 수 있다면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양의 업무를 더 적은 인력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생산성 향상은 더욱 중요해진다.
최 회장은 돌봄 로봇과 AI를 함께 활용하고 새로운 기술에 맞춰 제도를 정비하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청년 한 명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돌봄 분야가 대표적이다.
고령인구가 늘면 병원과 요양시설, 재가 돌봄서비스 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그러나 돌봄을 담당할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서비스 공급을 확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때 AI를 이용한 행정업무 자동화나 환자 상태 모니터링, 로봇을 활용한 이동·물류 지원 등이 실제 현장에서 사람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물론 AI와 로봇이 사람을 모두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술을 통해 사람이 해야 하는 업무의 양을 줄이고 노동력을 필요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최 회장의 발언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저출산 대책을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에만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정부가 출산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보육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은 출산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오늘 태어난 아이가 노동시장에 진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노동시장에 들어올 연령대의 인구는 사실상 정해져 있기 때문에 출산율이 당장 반등한다고 해서 향후 몇 년간 발생할 노동력 감소를 막기는 어렵다.
따라서 출산을 지원하는 정책과 별개로 현재의 노동력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넓히며, 기업과 지역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대응이 필요하다.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각각 줄어드는 내수시장을 바라보기보다 노동시장과 소비시장, 기술과 지역을 연결하면 인구 감소로 인한 시장 축소의 충격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 한 명의 가치’
인구가 감소하는 사회에서는 단순히 사람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큼 현재의 인력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청년이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 확보하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넓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여야 성장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지역에서는 외부 인구와 소비를 유입시킬 수 있는 교류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는 서로 다른 노동시장과 산업을 연결해 경제활동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최 회장이 제시한 한·일 경제공동체는 이 네 가지 문제를 하나의 틀에서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다만 구상 자체가 곧바로 정책으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 개방에는 취업 비자와 노동법, 사회보험 등 제도적 문제가 뒤따른다. 자격과 경력을 상호 인정하려면 양국의 관련 제도를 조정해야 한다.
지역 교류 역시 교통과 숙박, 교육, 의료 등 생활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AI와 로봇 활용도 기술 개발뿐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 기준,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이 함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