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흠집 냈으니 2100만 원 내라?... 택배기사 울리는 아파트 공고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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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내부 규약이 법 위일 순 없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파트 승강기에 흠집을 낼 경우 택배 기사에게 2100만 원의 범칙금을 물리겠다는 한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의 공고문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에도 지상 주차장이 없는 이른바 공원형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봉쇄하고 수레 배송을 강요하는 등 입대의와 택배 노동자 간의 충돌은 끊임없이 발생해 왔다.
연합뉴스는 아파트 단지 내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입대의가 과연 택배 기사에게 자체적으로 범칙금이나 승강기 이용료를 부과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를 취재해 보도했다.
택배 대란부터 지하주차장 요금 요구까지
입대의와 택배 기사 간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8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사태를 들 수 있다. 당시 한 아파트 입대의가 택배 차량의 지상 통행을 막고 지하주차장 이용을 지시했으나 아파트 지하 진입로 높이가 2.5m가 안 돼 택배 차량 출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에 택배 기사들이 집 앞 배송을 거부하고 단지 지상에 물품을 산더미처럼 쌓아두면서 이른바 '택배 대란'이 빚어졌다. 이러한 양상은 인천광역시 송도국제도시, 서울특별시 강동구, 경기도 성남시 등 전국 곳곳에서 반복됐다.
최근에는 무리한 금전적 요구 사례도 늘고 있다. 충청북도의 한 아파트에서는 택배 기사들에게 지하주차장 연간 사용료를 요구했으며 지난해 전라남도 순천시의 한 아파트 단지는 공동 현관 및 승강기 이용료 징수를 추진하다 거센 비판 여론에 밀려 철회하기도 했다.
전국택배노조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당시 지상 출입을 금지한 아파트는 전국적으로 179곳에 달했다. 정부는 다산신도시 사태 이후 관련 규칙을 개정해 2019년 1월부터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의무화했지만 기존 아파트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배관 문제로 진입이 불가능한 곳도 있으며 주민 민원과 분실 우려 탓에 기사들이 사비를 털어 저상 탑차로 개조하거나 수레 배송을 감내하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단지 내 사유지 관리 권한 폭넓게 인정하는 현행법
입대의가 외부인인 택배 기사에게 관리 명목으로 어디까지 제재를 가할 수 있을까.
현행 공동주택관리법 등에 따르면 입대의는 입주민의 주거 생활 질서 유지를 위해 주차장과 단지 내 도로 등 공용 시설물의 이용 시간과 비용 등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권한을 갖는다.
국토교통부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 역시 단지 내 도로 사용 방법에 대한 결정은 사유 재산 관리 차원에서 입대의가 결정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2023년 12월 전국택배노조가 제기한 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에서도 법원은 아파트 단지 내부의 차량 통행이나 물품 적치는 아파트 측과 협의할 영역이라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즉 사유지에 대한 입대의의 통제 권한 자체는 법적으로 폭넓게 인정받는 셈이다.
영리 목적 통행료 부과 불가…임의 범칙금 징수는 위법 소지
입대의가 공용시설물 이용료 부과 기준을 정할 권한은 있지만 아무런 제약 없이 외부인에게 금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은 입대의가 의결 과정에서 아파트 관리에 이해관계를 가진 외부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국토교통부 역시 아파트 주차장이나 도로를 영리 목적으로 활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계속해서 통행료나 주차 요금을 받는 행위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배달 종사자들의 승강기 이용료 부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 경기도가 시행령 개정을 건의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별도의 명시적 금지 조항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 논란이 된 2100만 원 규모의 범칙금 부과 공고처럼 입대의가 사적 권한으로 징벌적 성격의 벌금이나 범칙금을 징수하는 행위는 법적 근거가 없다. 범칙금은 행정기관이 부과하고 벌금은 법원 판결을 통해 성립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사적 주체 간에 자체 규약만으로 돈을 뜯어내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며 실제 손괴가 발생했을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법률원의 변호사 역시 연합뉴스에 "입대의 내부 규약은 외부인에게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며 "규약을 빌미로 택배 기사에게 직접 돈을 받아낸다면 이는 형법상 협박이나 공갈죄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