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선 골칫거리로 버려지는데… 한국 술상에선 없어서 못 파는 '생선'
작성일
가죽 버리고 남은 생선, 200배 비타민A 보양식으로 재탄생
미국 도로를 점액질로 뒤덮어 뉴스에 오르내리는 생선이 있다. 정작 한국에서는 자갈치시장 골목마다 냄새를 풍기며 손님을 불러 모으는 대표 별미다. 바로 꼼장어, 표준명으로는 먹장어다.

장어가 아니다…해저 40~60m 사는 '원구류'
이름과 달리 꼼장어는 뱀장어나 붕장어, 갯장어 같은 진짜 장어류가 아니다. 턱이 없고 입이 둥근 원 모양으로 생긴 원구류에 속한다. 바다 밑바닥 40~60m 깊이에 주로 서식하다 보니 눈이 퇴화해 사실상 앞을 보지 못한다. '눈먼 장어'라는 뜻에서 먹장어라는 이름이 붙었고, 껍질이 벗겨진 채로도 10여 시간을 꿈틀댈 만큼 생명력이 질겨 '꼼지락댄다'는 뜻의 꼼장어라는 별칭이 널리 쓰이게 됐다. 해저에 살면서 죽은 물고기의 사체를 갉아 먹는 청소부 역할을 하는데, 내장과 가죽, 살까지 파고들어 축적된 영양분을 함께 섭취하는 습성을 가졌다.
위협을 느끼면 순식간에 점액질을 대량으로 뿜어내는 것도 꼼장어의 독특한 생존 무기다. 포식자가 물면 그 즉시 주변 바닷물이 걸쭉한 점액으로 바뀌면서 포식자의 아가미를 막아버려, 숨쉬기 곤란해진 포식자가 결국 뱉어내게 만드는 식이다. 점액이 지나치게 쌓이면 스스로 몸을 매듭짓듯 꼬아 닦아내기도 한다.
가죽 팔고 남은 걸 구워 먹다가 부산 명물로
꼼장어를 식용으로 삼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한국에서 이 생선을 즐겨 먹게 된 것도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원래 꼼장어 껍질은 콜라겐이 풍부해 핸드백과 구두, 지갑 같은 가죽 제품의 원자재로 먼저 주목받았다. 일제강점기 부산 자갈치시장 인근에 꼼장어 가죽을 다루는 피혁공장이 자리 잡으면서, 가죽을 벗기고 남은 부산물을 배고픈 사람들이 구워 먹은 것이 최초의 식용 기록으로 전해진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 살던 동포들이 부산 서구 충무동 바닷가에 좌판을 차리면서 이곳이 오늘날의 자갈치시장으로 발전했고, 여기서 꼼장어구이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전쟁 이후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1960~70년대를 거치며 가죽 가공 후 버려지던 부산물을 아까워하지 않고 먹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꼼장어 식문화로 이어졌다. 실제로 살아있는 꼼장어를 통째로 구워 먹는 지금의 방식이 일반화된 것은 꼼장어 피혁 산업이 쇠퇴한 1990년대 이후부터다. 현재는 부산 기장 지역 연안이 주산지로 꼽히며, 자갈치시장의 꼼장어구이와 기장의 짚불장어구이가 나란히 부산의 명물로 통한다.
비타민A는 소고기의 200배…기력회복 보양식
맛과 영양 면에서도 꼼장어의 인기는 근거가 있다.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데다 비타민A 함량이 소고기의 약 200배에 달할 정도로 높아 예로부터 기력 회복과 원기 보충에 좋은 보양식으로 꼽혀왔다. 오메가-3 지방산인 EPA와 DHA 등 불포화지방산도 풍부해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도 있다. 조리법은 크게 두 갈래다. 고추장 양념에 대파와 양파를 듬뿍 넣고 볶듯이 구워 깻잎에 싸 먹는 양념구이가 가장 대중적이고, 양념 없이 살만 구워 소금장에 찍어 먹는 소금구이도 즐겨 먹는다. 짚단에 불을 놓아 꿈틀대는 꼼장어를 통째로 던져 넣어 구워 먹는 짚불구이는 기장 지역의 원조 조리법으로 남아 있다.
미국선 "징그럽다" 외면…실려가다 도로에 쏟아지기도
문제는 국내 수요를 자연산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어획량이 해마다 줄면서 가격이 오르자,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미국산과 일본산 꼼장어 수입이 늘었다. 정작 미국에서는 꼼장어를 먹지 않는다. 장어류 자체를 즐겨 먹지 않는 데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갉아 먹는 습성 탓에 징그럽고 더럽다는 인식이 강해 식용 문화 자체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개체 수는 풍부해, 미국 어민들은 한국 시장의 주문에 맞춰 이 생선을 잡아 통째로 수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도 있다. 2017년 7월 13일 미국 오리건주 101번 고속도로 디포베이 인근에서, 살아있는 꼼장어 약 3.4t(7500파운드)을 싣고 가던 트럭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에 쏟아진 꼼장어들이 일제히 위협을 느끼며 점액질을 뿜어냈고, 도로 전체가 끈적한 점액으로 뒤덮이면서 한동안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현지 소방당국은 이 광경을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의 한 장면에 비유했고, 결국 불도저와 수천 갤런의 물까지 동원해서야 도로를 치울 수 있었다. 미국 오리건주 경찰에 따르면 이 트럭에 실려 있던 꼼장어는 애초 한국으로 수출될 예정이었던 물량이었다. 일본 역시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꼼장어를 먹을 뿐, 자국에서 잡은 꼼장어 대부분을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결국 외국에서는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생선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인의 술상과 밥상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