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증조부 안상호 '독살 의혹' 소개한 사료 발견... 안양시 자료와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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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마다 다른 평가받은 안상호

배우 하영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배우 하영이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배우 하영의 증조부로 알려진 근대 의사 안상호(1872~1927)에 대한 지역 향토사의 역사적 평가가 관할 지자체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양시가 발간한 향토 사료에서는 안상호를 항일 민족의식이 강한 인물로 긍정 평가한 반면, 인접한 군포시가 2004년에 펴낸 공식 향토사에서는 그를 고종 독살 의혹의 중심에 섰던 논란의 인물로 기록했다.

이와 함께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군포 금정동 일대에 대규모 토지를 소유했던 사실과 순종 국장 당시까지 이왕직(일제강점기 조선 왕실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 소속 의사로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사금을 받은 정황 등 구체적인 역사적 사료 역시 추가로 발굴됐다.

최근 주간경향은 군포시가 2004년 2월 경기대학교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에 의뢰해 발간한 향토사료 학술조사용역 보고서 '군포시 지명유래 및 씨족역사' 등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안상호는 군포의 인물 중 근대 인물 첫 번째로 소개돼 있다. 총 264쪽 분량의 이 책은 안상호의 전반적인 의사 활동과 조선 왕실 진료 경력을 서술한 뒤 1919년 불거진 고종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을 핵심적으로 언급한다.

보고서는 안상호 등이 당시 일본인의 사주를 받아 고종에게 독약을 올렸다는 의혹을 받았다고 명시했다. 다만 관련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시비의 판단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는 단서를 덧붙였다.

반면 안양시가 편찬한 '안양시사'는 안상호를 항일 민족의식이 강한 인물로 묘사하며 전혀 다른 역사적 평가를 했다. 안양시는 안상호가 일본인 의사들이 주축이 된 경성의사회에 대항해 오긍선 등과 한성의사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했다는 점을 항일 행적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고종 독살 의혹에 대해서도 안상호가 근거 없는 무고로 인해 억울한 곤욕을 치렀다고 설명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는 1988년 발간된 '시흥군지'에서부터 2008년판 '안양시사'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지역 사료에 뿌리내렸다. 아울러 2020년 안양시 시민기자단은 공식 블로그에 올린 광복 75주년 기획 글에서 안상호를 아예 지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격상시켜 소개하기도 했다. 안양시는 최근 안상호의 친일 논란이 전국적으로 불거지자 지난 11일 해당 블로그 게시물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당시 친일 행적을 면밀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안상호와 군포시의 지리적 인연은 최근 새롭게 발굴된 일제강점기 토지조사 자료를 통해 명확히 입증됐다. 주간경향이 지난 20일 처음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안상호는 당시 행정구역상 시흥군 남면 금정리 235번지 일대에 2700평 규모의 대규모 논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는 현재 군포시 금정동 일대에 해당하는 요지다. 안상호가 군포 지역에 구체적인 지번과 방대한 규모의 토지를 소유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1차 사료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보도 이후 안상호의 막대한 재산 형성 과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21일 법사위 회의에서 새로 출범을 앞둔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안상호의 토지 취득 경위와 자금 출처 등을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현재 안상호는 과거 활동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지정한 공식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등재돼 있지 않다. 또한 군포의 방대한 토지가 친일 행위의 직접적인 대가로 취득된 재산이라는 사실 역시 아직까지 입증되지는 않았다.

주간경향은 안상호가 순종이 숨을 거둘 때까지 일제 통제하의 왕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문헌 자료도 추가로 확인해 보도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보관 중인 '순종효황제어장주감의궤' 권하의 국장 관계자 상전 기록에는 어용괘 안상호라는 이름과 함께 일본인 이케베 요시오에게 각각 금 45원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명확히 기록돼 있다. 어용괘는 이왕직 소속으로 왕실의 의료를 담당하던 직책이다. 이왕직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대한제국 황족의 의전 및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다.

'순종실록부록'에 따르면 안상호는 1926년 4월 1일에 전의 김동석 및 일본인 의학박사 이와부치 도모지와 함께 순종을 진료했다. 또 4월 11일에 친일파인 민영기, 한창수, 윤덕영 등과 함께 왕실에서 숙직을 선 기록도 남아있다. 순종은 그로부터 2주 뒤인 4월 25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