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 총재 “스테이블코인은 화폐 자격 없다”…12개 대형은행은 이미 발행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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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 “스테이블코인 화폐 자격 미달”…12개 대형은행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카르스텐스 총재, 단일성·상호운용성·건전성 3대 시험서 모두 탈락 지적

스테이블코인 관련 이미지 / AI 생성 일러스트(삽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이미지 / AI 생성 일러스트(삽화)

아구스틴 카르스텐스(Agustín Carstens) 국제결제은행(BIS) 총재가 8월 28일(현지시각) 미국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화폐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하나도 충족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단일성(singleness)·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건전성(integrity)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스테이블코인이 세 시험 모두에서 탈락한다고 못박았다. 카르스텐스 총재의 발언은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같은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디지털자산을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지 몇 시간 뒤에 나왔다. 그런데도 뱅크오브아메리카·웰스파고·산탄데르를 포함한 12개 대형은행 컨소시엄은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준비하고 있어, 규제당국과 시장의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단일성·상호운용성·건전성, 세 시험대에서 모두 탈락

카르스텐스 총재는 단일성 시험을 가장 직관적인 기준으로 들었다. 정상적인 통화 체계에서는 어느 기관이 보유하든 1달러는 1달러여야 한다. 그는 벤이 테더(USDT)를, 마리가 USDC를 들고 있는데 한 가맹점이 둘 중 하나만 받는다면 시스템이 서로 다른 인수 조건과 위험 프로필을 가진 병렬 화폐로 쪼개진다는 예시를 들었다. 그는 “민간 기업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와 같지 않다”며 “단일성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호운용성 시험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 화폐는 시스템 내 모든 참여자 사이에서 마찰 없이 결제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통일된 결제 계층이 없는 파편화된 레일 위에서 움직인다. 트론(Tron) 네트워크의 USDT와 이더리움의 USDC는 전환 과정 없이는 서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건전성 시험에서는 더 날카로운 선을 그었다. 중앙은행 화폐는 주권 권위가 뒷받침하는 최종성을 암묵적으로 보장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의 거래상대방 위험과 준비자산 구성 위험, 아직 정비 중인 규제체계에서 오는 위험을 동시에 지닌다. 지난해 7월 18일(현지시각) 제정된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2027년 1월 18일(현지시각)부터 시행되는데,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 할 7개 기관이 이미 1년짜리 규정 제정 시한을 넘긴 상태라 규제 환경 자체가 아직 잠정적이라는 게 카르스텐스 총재의 지적이다.

대안은 “토큰화 예금”…BIS는 아고라 프로젝트로 실험 중 / AI 생성 이미지
대안은 “토큰화 예금”…BIS는 아고라 프로젝트로 실험 중 / AI 생성 이미지

대안은 “토큰화 예금”…BIS는 아고라 프로젝트로 실험 중

카르스텐스 총재가 제시한 제도적 대안은 토큰화 예금이다. 상업은행에 대한 청구권을 프로그래밍 가능한 레일 위에 표현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2단계 통화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제 속도와 조합성(composability)만 더하는 접근이다. BIS는 혁신허브(Innovation Hub) 산하 아고라 프로젝트(Project Agorá)를 통해 이 구상을 실제로 밀고 있다. 중앙은행 7곳과 주요 상업은행들이 함께 국경 간 토큰화 예금 결제를 시범 운영하는 프로젝트다.

카르스텐스 총재는 단기적으로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이 공존할 가능성을 인정했다. 다만 둘의 차이는 근본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나는 화폐의 일부 기능을 모방한 민간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통화 체계를 제도적 보증을 그대로 유지한 채 확장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화폐가 나올지가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것이 화폐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속성들을 그대로 지켜낼 수 있는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규제당국 경고에도 은행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짓는다

BIS의 경고와 별개로 산업 현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웰스파고·산탄데르 등 12개 대형 은행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퍼블릭 체인 위에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실제로 짓고 있다. BIS가 지지하는 토큰화 예금 모델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구도다. JP모건도 별도로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검토 중이다. 커스터디 업체 파이어블록스(Fireblocks)에 따르면 월간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이미 1,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전년 대비 300% 늘었다. 업계는 BIS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있다.

비은행 발행사엔 더 센 규제…“달러화 확산도 우려”

국제결제은행(BIS)은 8월 말 별도로 낸 경고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이 대규모 일상 결제에는 아직 준비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페이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Pablo Hernández de Cos) 명의로 나온 이 경고는 취약한 상호운용성, 일관되지 않은 자금세탁방지(AML) 통제, 은행 자금조달 위협, 통화주권 훼손 위험을 근거로 들었다. BIS는 비은행 발행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대출·스테이킹·커스터디 같은 업무를 제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은행은 이미 건전성 감독을 받고 있어 상대적으로 유연성을 가질 수 있지만, 비은행 발행사가 계열사를 통해 제한 대상 업무를 우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 때문에 발행 법인뿐 아니라 계열사 전체를 함께 들여다보는 그룹 단위 감독 필요성이 제기됐다.

데 코스는 상호운용성을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짚었다. 이용자가 한 스테이블코인을 다른 상품으로 바꾸려면 팔고 다시 사는 과정을 거쳐야 해 단일성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그는 토큰화 예금이 기존 통화 기반을 유지하면서 토큰화를 활용할 더 직접적인 길이라고 했지만, 토큰화 예금 역시 상호운용성·거버넌스·법적 체계·결제 방식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인정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고 수조 달러 규모의 추가 국채 수요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데 코스도 국채 매입이 늘면 정부의 조달 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옮겨가면 은행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금조달 창구를 잃게 되고, 이는 대출 조건을 조이고 가계·기업의 차입 비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밖에서 확산하면 해당 국가의 통화정책 효력이 떨어지고 대외 정책 결정에 더 종속될 수 있다는 “디지털 달러화” 우려도 제기됐다. 데 코스는 와이오밍주가 발행한 프론티어 스테이블토큰(FRNT)을 공공 부문의 점진적 실험 사례로 들었다. BIS는 스테이블코인의 미래 역할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았다. 발행사가 상환 가능성과 크로스체인 상호운용성, 건전성 통제를 개선한다면 스테이블코인의 위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