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인천까지 원정 쇼핑…  2030세대가 밤새 줄 서서 사는 '이 종이'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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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기념 열풍, 2030세대를 사로잡은 포테크 투자 심리

카드 봉투를 뜯는 손끝이 떨린다. 안에서 어떤 카드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2026 롯데타운 서머 마켓 - 포켓몬 별빛낙원' 입장 대기 줄.  / 뉴스1
'2026 롯데타운 서머 마켓 - 포켓몬 별빛낙원' 입장 대기 줄. / 뉴스1

이 짜릿함에 2030세대가 지갑을 열고 있다. 포켓몬카드를 사서 재테크 수단으로 굴리는 이른바 '포테크(포켓몬+재테크)' 열풍이다.

밤새 줄 서고, 서울서 인천까지 원정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8층 포켓몬 카드숍 앞에는 대기 등록을 하려는 시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정가로 카드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서울 거주자가 카드를 사러 인천이나 경기까지 원정을 가는 일도 흔해졌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이런 수요를 반영해 카드 판매점의 실시간 재고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카드팩을 구매해 봉투를 뜯어보는 행위를 뜻하는 '포켓몬카드깡'이라는 신조어도 2030세대 사이에서 자리 잡았다.

피카츄 한 장에 250억원…20년간 3261% 상승

카드가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월 미국 경매 플랫폼 골딘에서는 한정판 피카츄 카드가 약 250억원(1649만 2000달러)에 낙찰됐다. 1998년 일본의 한 잡지사가 일러스트 대회 수상자에게 단 39장만 나눠준 희귀판으로, 절대적인 희소성이 값을 끌어올린 사례로 꼽힌다. 해외 트레이딩 카드 평가 업체 카드래더에 따르면 인기 포켓몬카드의 평균 가격은 지난 20년 동안 3261% 상승했다. 국내에서도 부산의 한 중고 거래 시장에서 희귀 카드가 1억원에 팔린 사례가 있고, 최근 유행하는 '잉어킹 프로모 카드' 역시 30만원 안팎에 리셀되고 있다.

포켓몬 카드 자료사진. / Dontree_M-shutterstock.com
포켓몬 카드 자료사진. / Dontree_M-shutterstock.com

올해는 포켓몬스터 탄생 30주년이라는 호재까지 겹쳤다. 30주년 기념 상품과 신규 확장팩 '닌자스피너'가 출시됐고,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포켓몬 메가페스타 2026' 행사 첫날에는 14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한정 배포된 잉어킹 프로모 카드를 받으려 새벽부터 대기 줄이 늘어서면서 경찰이 현장 통제에 나섰고, 결국 행사가 취소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가장 가치가 높게 평가받는 SAR(스페셜 아트 레어) 등급 카드는 12박스로 구성된 1케이스당 2~3장만 나올 정도로 확률이 낮은데, 이런 희소성이 오히려 구매욕을 자극한다는 분석이다.

136조원 IP로…미키마우스도 넘었다

이런 열풍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30년에 걸쳐 몸집을 불려온 포켓몬 IP 자체의 성장이 있다. 포켓몬은 1996년 게임보이용 게임으로 처음 등장했다. 몬스터를 포획해 기르고, 친구와 교환하거나 대전에 사용할 수 있게 한 수집·모험형 구조가 초기 인기의 발판이 됐다. 이후 TV 애니메이션이 캐릭터에 애착을 불어넣었고, 카드 게임과 굿즈가 일상 속 접점을 늘리면서 게임과 애니메이션, 카드, 완구를 아우르는 이른바 '포켓몬 생태계'가 형성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포켓몬의 IP 누적 수익은 921억 달러(약 136조원)로 전 세계 IP 가운데 1위다. 미국 디즈니의 미키마우스&프렌즈(705억 달러)는 물론 슈퍼마리오(361억 달러), 해리포터(308억 달러)를 모두 앞선 수치다. 순이익 역시 최근 10년 사이 114배로 불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포켓몬이 등장한 지 30년이 지나 여유자금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안고 시장에 돌아오면서, 포켓몬 카드가 취미를 넘어 본격적인 자산 시장으로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카드 게임을 중심으로 북미와 유럽에서는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대회가 열리고, 우승자가 세계 대회에 진출하는 구조까지 갖춰졌다. 카드 가치가 오르면서 절도와 사기 사건도 함께 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미국 유튜버 로건 폴이 소유한 희귀 '피카츄 일러스트레이터' 카드가 경매에서 1600만 달러(약 236억원)에 팔렸는데, 이는 그가 2021년 지불했던 가격의 3배가 넘는 금액이자 포켓몬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 공개 판매 기록이다. 앞서 지난 5월 서울 성수동과 일본 도쿄 니혼바시에서 동시에 열린 30주년 기념 행사 '포켓몬 가든 시크릿 포레스트'에도 대규모 인파가 몰려 행사가 중단되고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진 바 있다.

"손해 볼 것 없다"는 2030…전문가는 "변동성 커 투자 부적합"

카드 수집에 나선 20대 여성 B씨는 소장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 되팔리지 않아도 손해 볼 게 없다고 말했다. 일본어판이나 영어판 카드가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구매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카드 투자는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고, 주식처럼 매일 시세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원하는 카드가 나오지 않아도 수집 자체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 열풍을 어린 시절의 향수와 투자 심리가 결합한 결과로 본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어릴 적 경험한 캐릭터 문화가 수요를 이끌고 있으며, 어떤 카드가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복권과 비슷한 소비 심리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가격 변동성이 커 안정적인 투자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포켓몬처럼 비교적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일수록 랜덤성이 강한 카드가 수집의 의미를 넘어 희소성에 따른 '사냥의 스릴'을 안겨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