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찰청장, 고 장미란 씨 빈소 찾아 조문...'유족 반응'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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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일 만의 사과, 경찰 실종사건 허위종결 적폐 도마에
298건 전수조사 예정, 적나라한 경찰 관리감독 실태 드러나

고평기 제주경찰청장이 장미란 씨 실종사건 허위종결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장씨가 실종된 지 107일 만이다.

경찰이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한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다른 실종사건에서도 유사한 허위 처리가 확인되면서 제주경찰청 지휘부가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고 청장은 27일 오전 제주경찰청 지휘부 회의에 앞서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발표했다. 고 청장은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두 분의 고인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겪고 계실 유가족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이 그 책무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거짓된 말과 행동으로 가족들께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드렸다”고 밝혔다.

고 청장은 조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유족분께서는 철저한 수사를 당부하셨고 한 점의 어려운 점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해서 유족분들께 통보해 드리겠다. 아울러 이렇게 찾아주신 것에 대해서 (유족분들께서) 고마움을 표현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한번 유족분들께 사과 드렸다. 조금 제 생각보다 그동안 많이 설명을 들으셔서 그런지 조금은 차분하셨다"라고 덧붙였다.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는 고평기 제주경찰청장 / 뉴스1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는 고평기 제주경찰청장 / 뉴스1

이어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제때 살피지 못한 점에 대해, 제주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청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경찰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큰 실망과 불안을 느끼셨을 도민과 국민 여러분께도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고 청장은 실종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도 약속했다. 그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찾아내어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단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그 결과도 어떠한 숨김이 없이 공개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실종사건을 처리하는 시스템, 절차, 인력구조 등 전반적인 실태를 확인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소홀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과는 장미란 씨 실종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이 신고를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허위로 종결한 사실이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장씨 사건뿐 아니라 해당 경찰관이 처리한 다른 실종사건에서도 허위종결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는 고평기 제주경찰청장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는 고평기 제주경찰청장

앞서 지난 5월 15일께 제주에서는 장미란 씨에 대한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제주서부경찰서 실종팀 당직 근무자였던 부 모 경장은 장씨의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 경장은 장씨 사건을 실제 수색과 확인 절차를 충분히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종결한 뒤 실종 프로파일링시스템에도 장씨가 ‘교통사고 사망’한 것으로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장씨는 경찰의 실종 관리 목록에서도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 프로파일링시스템은 경찰이 실종자 정보를 관리하고 관련 수사와 수색에 활용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실종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실종자의 인적사항과 마지막 행적, 위치정보 등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관리하면서 발견을 위한 수색과 탐문 등을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실제 사망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를 사망한 것으로 입력해 관리 대상에서 제외했다면 이후 수색과 확인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러한 허위 입력까지 이뤄졌다는 점에서 경찰의 실종사건 처리 절차가 제대로 작동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부 경장이 장씨 사건에서만 허위로 사건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지난 7월 2일께 60대 A씨에 대한 실종 신고를 접수한 뒤에도 실제 연락이 이뤄진 것처럼 내용을 기재하고 사건을 허위로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 경장은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다. 제주경찰청은 부 경장이 그동안 종결한 실종사건 298건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추가 허위종결 사례가 확인된 만큼, 조사 결과에 따라 허위로 처리된 사건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개인의 업무상 실수에 그치는지 여부다. 실종 신고는 가족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첫 단계이자 국가가 실종자의 생명과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개입하는 출발점이다. 신고가 접수된 뒤 경찰이 마지막 행적을 확인하고 필요한 수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기록이 남는다면 실종자 발견에 필요한 대응 자체가 늦어질 수 있다.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는 고평기 제주경찰청장 / 뉴스1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는 고평기 제주경찰청장 / 뉴스1

특히 실종사건은 시간이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신고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실종자의 이동 범위가 넓어지고,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이 삭제되거나 목격자의 기억이 흐려지는 등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실종 신고를 접수한 뒤 정확한 정보를 기록하고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과 협조해 수색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경찰이 자체적으로 처리한 기록과 실제 상황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는 점도 확인 대상이다. 경찰이 어떤 판단과 절차를 거쳐 장씨 사건을 종결했는지, 허위로 작성된 기록이 어떤 경위로 시스템에 입력됐는지, 상급자가 해당 사건 처리 과정을 확인했는지 등이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경찰 지휘부의 관리·감독이 적절했는지도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일선 경찰관 한 명의 업무 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상급자가 발견하거나 사후 점검할 수 있는 절차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장기간 문제를 방치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 청장이 이날 시스템과 절차뿐 아니라 인력구조까지 전반적으로 확인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문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실종사건 담당 인력의 업무량과 당직 체계, 사건 종결 절차, 전산 기록 관리, 상급자 확인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건 종결은 실종자의 생존 여부와 소재가 확인됐는지 등을 정확하게 확인한 뒤 이뤄져야 하는 만큼 종결 과정에서 다른 경찰관이나 상급자가 내용을 확인하는 이중 점검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같은 유형의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경찰청은 현재 부 경장이 처리한 298건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면서 추가적인 허위종결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허위 처리나 관리·감독상 문제가 발견될 경우 관련자에 대한 책임 규명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굳은 표정으로 고 장미란 씨 빈소 찾은 고평기 제주경찰청장 / 뉴스1
굳은 표정으로 고 장미란 씨 빈소 찾은 고평기 제주경찰청장 / 뉴스1

고 청장은 지휘부 회의를 마친 뒤 출입기자단과 허위종결 사건 및 부 경장과 관련한 질의응답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장씨 빈소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번 사과를 계기로 경찰이 실제로 어떤 개선책을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실종 신고 접수부터 사건 종결까지 각 단계의 기록을 어떻게 검증할지, 담당 경찰관의 판단을 누가 재확인할지, 장기 실종사건을 어떻게 주기적으로 점검할지 등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수사를 통해 장씨 사건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경찰은 장씨 사건뿐 아니라 부 경장이 처리한 전체 실종사건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으며, 고 청장 역시 조사 결과를 숨김없이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장미란 씨 실종사건은 결국 104일 만에 제주시 한림읍 인근 야자수 숲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의 허위종결 사실이 드러난 뒤에는 단순히 한 경찰관의 잘못을 넘어 실종사건 대응 체계와 경찰 내부의 관리·감독 시스템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