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호박으로 세계 사로잡은 전위예술가... 쿠사마 야요이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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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무늬, 그물망 패턴, 노란 호박 조형물로 세계 사로잡은 예술가
물방울 무늬와 그물망 패턴, 노란 호박 조형물로 세계를 사로잡은 쿠사마 야요이 일본 전위예술가가 별세했다. 향년 97세.

27일 쿠사마재단과 일본 공동통신 등에 따르면 쿠사마는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눈을 감았다. 별세 사실은 이날 재단 공식 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장례는 가까운 친족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별을 위한 자리는 이후 따로 마련될 예정이다.
재단은 공식 사이트 부고에서 쿠사마가 미술을 중심으로 퍼포먼스와 소설, 시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른 전위예술가로 국제 무대에서 활동했다고 전했다. 이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은 채 영원한 사랑과 영혼을 탐구한 97년의 생애였다고 애도했다.
쿠사마는 1929년 3월 22일 일본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종묘업(종자·모종 판매)을 하던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물방울과 그물망이 시야를 뒤덮거나 꽃과 동물이 말을 거는 듯한 환각을 겪었다. 이 환각에서 느낀 놀라움과 두려움을 그림으로 옮기며 창작을 시작했다. 열 살 무렵 그린 어머니 초상화에는 이미 인물 주위로 수많은 물방울이 번져 있었다.

1948년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에 들어가 일본화를 공부했다. 1952년에는 마쓰모토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일본 사회의 폐쇄성에 답답함을 느낀 그는 더 넓은 무대를 찾아 미국행을 결심했다.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에게 수채화와 편지를 보내 조언을 구한 일이 결심에 힘을 보탰다. 오키프는 답장을 보내왔다. 1957년 28세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시애틀을 거쳐 뉴욕에 정착한 쿠사마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왕성하게 작업했다. 거대한 화폭을 촘촘한 그물망으로 가득 채운 '무한의 그물(Infinity Nets)' 연작이 이 시기에 나왔다. 1959년 뉴욕 브라타 갤러리에서 선보인 이 작업은 뉴욕타임스 등의 주목을 받았다. 반복되는 그물망은 자신과 세계의 경계를 지운다는 '자기소멸(Self-Obliteration)' 사유로 이어졌다. 젊은 시절의 도널드 저드는 쿠사마의 전시를 높이 평가하며 작품을 사들였다. 프랭크 스텔라 등 동시대 작가들도 그의 작업에 주목했다. 남성 중심이던 뉴욕 전위미술계에서 일본에서 건너온 여성 작가의 존재감은 점점 커졌다.
1960년대 들어 쿠사마의 표현은 평면을 벗어났다. 가구와 일상용품을 천으로 만든 돌기로 뒤덮은 '집적' 연작을 내놨다. 1965년에는 거울로 둘러싼 공간에 붉은 물방울 돌기를 채운 '무한 거울의 방'을 처음 선보였다. 관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 무한히 반사되는 이 형식은 훗날 세계 곳곳에서 긴 줄을 세우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베트남전 반전 운동이 번지던 시기에 쿠사마는 알몸에 물방울을 그리는 보디페인팅과 '해프닝'으로 불린 퍼포먼스를 잇달아 벌였다. 1966년 제33회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는 은색 거울 구슬 1500개를 잔디밭에 깔아놓은 '나르시스의 정원'을 정식 초청 없이 게릴라식으로 선보였다. 구슬을 하나에 2달러씩 팔려다 비엔날레 측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미술과 시장의 관계를 도발한 이런 활동으로 그는 '전위의 여왕'으로 불리게 됐다.
1973년 쿠사마는 약 16년간의 뉴욕 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미술적 성취보다 뉴욕 시절의 파격적 활동만 회자됐다. 이 시기 그는 일본어로 소설과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첫 소설 '맨해튼 자살미수 상습범'을 비롯해 소설과 시집을 잇달아 펴내는 한편 미술 작업도 이어갔다. 오늘날 그의 상징이 된 호박 소재도 1980년대부터 작품에서 비중을 키웠다.
국제적 재평가의 결정적 계기는 1993년 제45회 베네치아비엔날레였다. 미술평론가 다테하타 아키라를 커미셔너로 맞아 일본관 대표로 개인전을 연 것이다. 게릴라 퍼포먼스로 비엔날레에 등장한 1966년으로부터 27년 만에, 이번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같은 무대에 섰다. 1998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을 시작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도쿄도현대미술관 등을 도는 회고전이 열려 뉴욕 시절의 혁신적 작업이 본격 조명됐다.
70대에 접어든 2000년대 이후 작업은 오히려 속도를 냈다. 2004년부터 흑백 드로잉 '사랑은 영원히' 연작을, 2009년부터는 강렬한 색채의 대형 회화 '나의 영원한 혼' 연작을 그렸다. 후자는 2021년까지 약 900점에 이르렀다. 2021년에는 새 회화 연작 '매일 사랑에 대해 기도한다'를 시작해 '무한'과 '사랑', '삶과 죽음'이라는 평생의 주제를 말년까지 파고들었다.
세계 주요 미술관의 대규모 전시도 잇따랐다. 2012년 런던 테이트모던 회고전, 2017년 미국 워싱턴 허시혼미술관에서 출발해 북미를 순회한 '인피니티 미러' 전시가 대표적이다. 2022년 홍콩 M+에서는 1945년부터의 활동을 약 200점으로 정리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미술관 밖에서도 그의 이미지는 증식했다. 2012년과 2023년 두 차례 루이비통과 협업해 세계 주요 도시 매장을 물방울과 자신을 본뜬 조형물로 뒤덮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에서는 가가와현 나오시마에 놓인 노란 '호박'이 섬의 상징이 됐다. 고향인 마쓰모토시립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곳에 작품이 상설 전시돼 있다. 2017년 10월에는 도쿄 신주쿠에 자신의 이름을 딴 쿠사마야요이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2003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오피시에, 2006년 다카마쓰노미야 전하 기념 세계문화상을 받았다. 2009년 문화공로자로 지정됐다. 2016년에는 일본 문화훈장을 받았다.
쿠사마는 2013년 펴낸 자전 에세이 '물방울의 이력서'에 이렇게 적었다. "물방울은 앞으로도 계속 증식하며 사람들에게 내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내 발자취가 멀리, 깊이 이어져 다음 세대에게 끊임없이 전해진다면 그보다 큰 행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