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씨 유족 "경찰이 앉은 자세로 극단선택 했다더라...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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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야자수줄기에 어떻게 끈을 매 숨질 수 있었나'
인근 주민 “하필이면 야자수 농장에서?” 의문 제기
사망 경위 놓고 유족과 경찰 설명 서로 엇갈려 논란
제주에서 실종된 지 10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장미란씨의 사망 경위를 놓고 의문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유족이 부검 당일 경찰로부터 '목뼈 골절' 소견을 전달받았다고 밝힌 반면 경찰은 공식 브리핑에서 특이 골절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양측 설명이 엇갈렸다.

SBS 26일 보도에 따르면 장씨 유족은 부검이 진행된 지난 25일 제주서부경찰서 수사팀 관계자로부터 부검 결과를 전해 들었다. 수사팀 관계자가 장씨 목에 있는 뼈 일부가 부러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유족에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나타나는 흔적인 만큼 극단적 선택 쪽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취지였다고 유족은 전했다.
유족은 SBS에 경찰이 장씨가 앉은 자세로 야자수 나무에 목을 맨 것으로 보인다고 알려왔다면서 얇은 야자수 줄기에 어떻게 끈을 걸어 목을 맬 수 있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장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는 점, 시신이 발견됐을 당시 자세 등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고 거듭 밝혔다.

문제는 경찰이 공식적으로 밝힌 부검 결과가 유족이 전해 들은 내용과 달랐다는 데 있다. 제주경찰청은 브리핑에서 골절 등 특이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족에게는 골절이 있어 극단적인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설명해 놓고 대외적으로는 골절이 없다고 밝힌 셈이어서 유족의 혼란과 경찰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경찰은 26일 브리핑에서 장씨가 자택에서 본인 소유의 끈을 가지고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장씨는 목에 끈이 감긴 채 신체 일부가 땅에 닿아 있는 이른바 '불완전 의사(縊死)' 상태로 발견됐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끈은 야자나무의 굵은 몸통이 아니라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에 묶여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매듭 형태와 묶인 높이 등을 정밀 감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장 감식과 부검의 구두 소견을 종합할 때 범죄 피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시신이 발견된 자리 주변에 낙엽이 흐트러진 흔적이 없어 다툰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패가 심해 주저흔이나 방어흔은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발견 당시 장씨의 주머니에는 휴대전화와 전자담배가 들어 있었다. 실종 당시 착용했던 머리띠와 금팔찌, 반지, 슬리퍼 등도 함께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제주분원은 시신 부패가 심해 정확한 사인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목맴사로 추정된다는 구두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장씨는 지난 5월 12일 밤 제주시 한림읍의 숙소를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 실종 당일 밤 폐쇄회로(CC)TV에 장씨가 홀로 집을 나서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담겼다. 시신은 실종 104일 만인 지난 24일 오전 10시 46분쯤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의 한 야자수 농장에서 발견됐다. 경찰이 민·관·군 400여 명을 투입해 합동수색에 나선 지 약 1시간 만이었다. 장씨가 장기 투숙하던 숙소에서 400여 m, 걸어서 5분 안팎 거리다.

발견 당시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육안으로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지문도 소실됐다. 경찰은 법의관의 치아 감정에서 장씨와 일치한다는 구두 소견을 받았다. DNA 감정도 진행 중이다.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배경에는 이 사건의 초기 대응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리한다. 장씨 남자친구는 장씨가 숙소를 나선 사흘 뒤인 지난 5월 15일 112에 실종 신고를 했다. 신고를 접수한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부 경장은 접수 두 시간여 만에 '장씨와 연락이 닿았으며 위치를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취지의 거짓 내용을 남긴 채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등록돼 있던 장씨 관련 자료도 삭제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에도 장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남자친구는 지난달 17일 다시 신고를 시도했다. 그러나 부 경장이 남긴 종결 기록 탓에 접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장씨 가족이 이틀 뒤 서울 노원경찰서를 찾아 다시 신고하면서 수색이 재개됐다. 실종 석 달이 지난 탓에 한림항 일대 CCTV 상당수는 이미 삭제된 뒤였다. 실종 사건의 골든타임으로 꼽히는 72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부 경장을 둘러싼 의혹은 장씨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경찰은 부 경장이 단독으로 처리해 종결한 실종 신고가 20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재조사에 들어갔다. 지난달 2일 실종 신고가 접수됐던 60대 남성도 비슷한 방식으로 허위 종결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남성 역시 가족의 재신고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부 경장은 경찰 조사에서 장씨와 분명히 통화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통화 기록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 경장은 구속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타살 가능성을 성급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약물 등 다른 수단이 많은 상황에서 젊은 여성이 야밤에 야자수 나무에 목을 맸다는 설명은 자살 방식으로 보기에 의문이 크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교수는 범죄 피해 가능성이 없다고 선언한 뒤 사건화도 하지 않고 종결하면 누구도 다시 열어보기 어렵다며 초기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장은 신중한 입장을 냈다. 표 소장은 라디오 방송에서 현 단계에서는 어떤 단정도 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현재까지 뚜렷한 타살 정황이나 제3자가 개입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표 소장은 현장 검안상 목맴사로 추정된다는 점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극단적 선택이라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신 부패가 상당히 진행됐더라도 철저한 부검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시신이 발견된 야자수 농장을 두고도 의문이 이어진다. 4m 안팎의 야자수가 빽빽이 심겨 한낮에도 안쪽이 어둡다. 야자수 특성상 뾰족하고 단단한 가시 같은 부분이 많아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인근 주민 설명이다. 어두운 밤 슬리퍼 차림으로 들어가기는 더욱 어려웠으리라는 것이다. 한 주민은 목을 맬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며 의문을 나타냈다. 폭염과 폭우로 시신이 빠르게 부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는데도 바로 옆에서 일하던 주민조차 낌새를 채지 못했다는 점도 의문으로 남는다.
장씨 남자친구는 실종 당일까지도 장씨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한 힘든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첫 실종 신고자이기도 하다. 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우울증 치료나 관련 약물 복용 내역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이 부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범죄 피해 가능성이 낮다는 취지로 설명한 점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경찰 판단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숙소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인데 석 달 동안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점, 슬리퍼 차림으로 나선 사람이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설명 등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장씨 유족은 과도한 억측은 경계했다. 장씨의 사촌동생은 함께 마음 졸이며 언니를 찾아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수색에 힘을 보탠 경찰과 해경, 자원봉사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모든 경찰이 부패하거나 무능한 것은 아니라며, 사건과 관련 없는 비난과 억측, 정치적 논쟁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장씨가 숙소를 나선 당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 사이에 숨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사인과 제3자 개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과수 부검과 과학수사 결과를 종합할 방침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다면 자살예방 상담전화(☎109)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