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리노공업을 국회로 부르기 전에 정치권이 답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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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 교섭 중인데 국회 소통관까지 간 갈등…정치권 가세는 해법인가
-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우는데 기업 현장에는 또 다른 부담
- 노동권 보호와 기업 경쟁력은 양자택일 아냐…해답은 정치가 아닌 노사 자율교섭에서 찾아야

[부산=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대한민국은 지금 반도체에 국가의 미래를 걸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에 새로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직접 챙기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목표 역시 첨단산업의 성장축을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넓히고 대한민국의 산업지도를 다시 그리는 데 있다. 그만큼 반도체는 이제 한 기업의 사업이 아니다. 국가 경쟁력의 문제이고 지역의 미래이며 일자리의 문제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반도체 부품기업 리노공업의 노사갈등이 공장을 넘어 국회 소통관까지 올라갔다. 25일 국회 소통관에서는 ‘리노공업 노동환경 개선 및 성실교섭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리노공업지회와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 진보당 정혜경 의원 등이 함께했다. 노조는 노동환경 개선과 대표이사의 직접 교섭을 요구했고, 이용우 의원은 원만한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하반기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노사가 교섭하고 있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국회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노동자가 더 나은 근로조건을 요구할 권리는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노동조합이 회사를 상대로 교섭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역시 법이 보장한 권리다. 회사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 하고 법을 위반했다면 법에 따라 책임지면 된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정치권이 개별 기업의 노사협상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교섭이 끝난 것도 아니다. 회사 측 역시 노조와 입장 차이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교섭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어느 한쪽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스스로 해답을 찾을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리노공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기업이 아니다. 부산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안고 반도체 부품 한 분야를 파고들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도 해외 기업들과 기술과 품질로 경쟁해야 한다. 기업이 성장했다고 노동자의 요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회사의 실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의 모든 경영 판단이 비난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좋은 노사관계는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굴복시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협상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조금씩 양보해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어렵다고 해서 국회와 정치권이 협상 테이블 밖에서 압박하기 시작하면 노사 자율교섭의 의미는 그만큼 작아질 수밖에 없다.
더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은 지난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노동계는 실질적인 교섭권 확대와 노동권 보호를 강조하지만 경영계에서는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 확대 등에 따른 불확실성을 계속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노사관계의 제도적 환경 자체가 크게 변하는 시기에 정치권의 직접적인 개입까지 일상화된다면 기업들은 법과 시장뿐 아니라 정치의 움직임까지 살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노동하기 좋은 나라는 서로 반대말이 아니다. 좋은 기업이 있어야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노동자가 존중받아야 기업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정치가 신중해야 한다. 정부는 한편으로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와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기술을 축적하며 세계 시장과 싸워온 반도체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투자, 고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국가의 역할이다.
공장을 새로 짓는 것만 산업정책이 아니다. 이미 있는 기업이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고 더 투자하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한 산업정책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과 기업을 지키는 일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어느 한쪽의 확성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치가 함께 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리노공업 노사 역시 결국 다시 협상 테이블에서 만나야 한다. 파업도, 기자회견도, 정치권의 압박도 마지막에는 교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답은 분명하다. 회사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더 듣고, 노조 역시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그 테이블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을 이야기하는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공장 몇 동만이 아니다. 기업가가 다시 투자할 수 있는 환경,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노사가 정치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서로 마주 앉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까지 함께 지켜야 한다.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그 기업들이 대한민국에서 계속 도전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리노공업을 국회로 부르기 전에 정치권이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