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산상의 양재생, ‘자리’보다 부산경제를 먼저 생각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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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현장 직접 찾고 지역 현안 앞장…부산 경제계 수장의 존재감 키워
- 임기 막바지 향하는 25대 부산상의…마지막 평가는 결국 ‘무엇을 남겼느냐’

양 회장은 2024년 3월 부산 경제계를 대표하는 제25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그의 행보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현장’과 ‘부산’이다. 기업이 상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직접 기업을 찾았고, 부산 경제의 이해가 걸린 현안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경제단체장의 역할은 생각보다 무겁다. 행사장에서 축사를 하고 기업인들과 악수하는 것만으로 임기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 기업이 규제에 막혀 투자를 주저하고, 수도권 집중으로 청년과 기업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부산상의 회장이 조용히 앉아 있다면 상공회의소가 존재해야 할 이유도 희미해진다.
양 회장은 적어도 그런 회장은 아니었다.
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하면 현장을 찾았고, 부산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면 자신의 일처럼 앞에 섰다. 가덕도신공항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 해양수도 경쟁력 강화, 기업 규제 개선과 투자 활성화 등 부산 경제의 굵직한 현안마다 부산상의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최근에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울경 전체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바라보며 기업과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광역 협력에도 힘을 싣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서 양 회장 특유의 기업인 기질이 읽힌다. 그는 오랫동안 기업 현장에서 회사를 일궈온 사람이다. 기업인은 행정 절차 하나가 늦어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규제 하나가 투자계획을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 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하루하루 버티는 일이 얼마나 절박한지도 몸으로 경험한다.
그래서인지 양 회장은 보고서 속 기업보다 현장의 기업을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회의실에 앉아 기업의 애로를 전달받는 것과 공장을 직접 찾아 기업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다르다. 서류 한 장에 ‘규제 개선 요청’이라고 적힌 문제가 현장에서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 때로는 생존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양 회장을 지켜보면서 높이 평가하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그는 부산상의 회장이라는 직함을 명예로만 소비하지 않았다.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라도 한번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계속 문을 두드리는 편에 가까웠다. 부산의 몫을 챙겨야 할 순간에는 부산 경제계를 대표해 앞에 서려 했다.
물론 부산 경제의 굵직한 숙원들이 양 회장 한 사람의 힘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산업은행 이전도, 가덕도신공항도, 부산의 산업구조를 바꾸는 일도 중앙정부와 정치권, 부산시와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경제단체장이 법을 만들 수도 없고 국가예산을 혼자 결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다. 부산 기업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 그 목소리가 서울에서 묻히지 않도록 계속 전달하는 것이다. 정부가 듣지 않으면 다시 찾아가고, 정치권이 부산을 잊으면 다시 부산을 이야기하는 것. 기업이 막힌 곳이 있다면 행정기관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것. 이것이 지역 경제단체 수장이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이다.
양재생은 이 기본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특히 부산 경제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리더십은 더욱 중요하다. 부산은 지금 기업 유치와 청년 일자리, 신산업 육성, 물류·해양산업 경쟁력 강화까지 어느 하나 뒤로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과의 격차는 하루아침에 줄어들지 않는다. 부산이 가만히 있는 동안 다른 지역은 더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 경제계를 대표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행동력이다. 한 번이라도 더 기업 현장을 찾아가고, 한 번이라도 더 정부의 문을 두드리고, 부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더 이야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양 회장이 부산상의 회장에 취임한 이후 보여준 행보에서 기자가 읽은 것도 그런 끈질김이다.
이제 그의 임기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취임 초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가 평가 대상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무엇을 남겼느냐가 평가 대상이 된다. 기업을 몇 곳 방문했는지, 간담회를 몇 번 열었는지가 최종 성적표가 될 수는 없다. 그 현장에서 들은 기업의 목소리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 부산상의가 정부에 던진 요구 가운데 무엇이 실질적인 부산의 몫으로 돌아왔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양 회장 역시 기업인인 만큼 이런 평가를 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는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마지막에는 결과를 본다. 부산상의 회장도 마찬가지다.
다만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한 사람이 조직의 문화를 어떻게 바꿔놓았느냐다. 기업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상의가 아니라 기업을 찾아가는 상의, 부산의 경제 현안이 발생하면 뒤늦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목소리를 내는 상의, 회장이 바뀌어도 현장 중심의 조직문화가 계속 움직이는 상의가 된다면 그것 역시 양 회장이 남길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회장은 언젠가 떠난다. 직함도 내려놓는다. 하지만 리더가 만들어놓은 조직의 습관과 문화는 사람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
기자는 양재생 회장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부산 경제가 힘들다고 모두가 말할 때 그는 관중석에서 바라보는 쪽을 택하지 않았다. 기업이 있는 곳으로 갔고, 부산의 현안이 있는 곳에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 부산의 몫을 요구해야 할 순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부산 경제계에는 이름 앞에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어려운 순간 자신의 자리를 걸고 앞에 서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양재생 회장에게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 그동안 두드린 문 가운데 몇 개는 실제로 열어놓고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후임자가 들어오더라도 부산상의가 계속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는 시스템을 남겨야 한다.
임기를 마친 뒤 양 회장이 무엇을 가지고 부산상의 회장실을 나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부산 경제에 무엇을 남겨놓고 나오는지가 중요하다.
양재생이라는 이름이 부산 경제계에 오래 기억된다면, 아마 그 이유도 ‘회장을 했던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부산경제가 어려울 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