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서 초등학생 친 80대 운전자...“사고 난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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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보호구역 도주치상, 80대 운전자에게 집행유예 선고
스쿨존 사고 인식 못했다는 주장, 법원이 배격한 이유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을 차량으로 치고도 별다른 구호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난 80대 운전자에게 법원이 사고 사실을 인식하고도 도주한 것으로 판단하며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29일 오후 3시 49분쯤 전북 정읍시 상동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11세 B군을 들이받았다. 당시 사고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했다.

B군은 사고로 발목 염좌 등 약 3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하지만 A씨는 사고 직후 피해 아동을 병원에 데려가거나 보호자에게 연락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고 당시 피해자를 충격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며 도주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사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원은 사고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A씨가 충돌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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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는 블랙박스와 CCTV 영상에서 차량에 부딪힌 B군이 튕겨 나가는 모습이 확인된 점에 주목했다. 사고 직후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A씨의 배우자가 피해자에게 상태를 물어본 사실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사고조사 결과 운전자의 시야에서 피해자를 볼 수 있었고, 차량의 충돌 부위도 운전석 쪽 앞 범퍼였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튕겨 나갈 정도의 충격이었다면 차량의 진동이나 충격음 등을 통해서도 사고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법원이 지적한 또 하나의 문제는 피해자가 어린 아동이었다는 점이다.

1심 재판부는 사고 직후 B군이 “괜찮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11세 아동이 자신의 부상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운전자는 피해자가 다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병원에 데려가거나 보호자에게 연락처를 제공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A씨가 사고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를 충격한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도 구호 조치 등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A씨의 모든 사정을 불리하게만 보지는 않았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범행을 인정한 점과 사고 당시 82세의 고령이었던 점, 각종 질환에 따른 시력 저하가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친 측면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 보험회사를 통해 치료비 등이 지급될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를 위해 형사 공탁을 한 점도 함께 참작했다.

이에 따라 1심은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는 취지로 항소했고, 검찰 역시 형이 가볍다며 항소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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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는 2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도주치상 및 어린이보호구역치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씨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A씨가 사고 당시 피해자를 충격했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도 구호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도주했다고 판단했다.

또 A씨와 검사가 주장한 주요 양형 사정은 이미 1심에서 충분히 고려됐다고 봤다.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 조건을 종합해도 원심의 형이 지나치게 무겁거나 가벼워 합리적인 재량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A씨에게 선고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판결은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충격한 사고에서 운전자가 사고를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사고 당시의 영상과 충격 정도, 주변 상황 등을 종합해 사고 인식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피해자가 사고 직후 괜찮다고 말했더라도 어린 아동의 경우 부상 여부를 스스로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운전자가 필요한 구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도 재확인됐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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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부분은 사고가 발생한 장소가 어린이보호구역이었다는 점이다. 어린이보호구역은 단순히 학교 주변이라는 의미를 넘어 어린이의 예측하기 어려운 보행 특성을 고려해 운전자에게 더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를 요구하는 공간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자동차 등의 통행속도를 시속 30㎞ 이내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운전자에게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행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스쿨존의 교통법규가 일반 도로보다 엄격해진 배경에는 어린이가 교통 상황을 성인처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거나 차량의 속도와 거리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운전자에게 더 큰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에는 제한속도 표지뿐 아니라 신호기와 횡단보도, 과속방지시설, 방호울타리 등 어린이의 교통안전을 위한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일명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관련 법 개정 역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크게 높인 계기가 됐다. 현행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운전자가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해 13세 미만 어린이를 다치게 한 경우를 가중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범죄가 인정되면 어린이 상해의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다만 스쿨존에서 사고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교통사고가 동일한 수준으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처벌 여부와 형량은 운전자의 과실 정도, 사고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피해 정도, 사고 후 조치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이 A 씨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집행유예를 유지한 데에는 범행을 인정한 점과 고령, 시력 저하, 자동차 종합보험 가입, 피해자를 위한 형사 공탁 등 여러 사정이 고려됐다.

그럼에도 사고 이후의 행동은 별개의 문제다.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면 운전자는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구호 조치를 해야 한다. 피해자가 어린이라면 더욱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사고 직후 어린이가 “괜찮다”고 말하더라도 외상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 역시 이 부분을 분명히 했다. 11세 피해 아동이 사고 직후 괜찮다고 말했다는 사정만으로 운전자가 그대로 현장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부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병원 진료를 받게 하거나 보호자에게 연락처를 제공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