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보다 편해요”… Z세대, 연애도 진로도 AI에게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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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도구서 '감정 배출구'로… AI 챗봇, 고민 상담 대상으로 급부상
고민이 생기면 친구나 가족보다 인공지능(AI) 챗봇 창부터 여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취업 준비생부터 직장인까지, Z세대 사이에서 챗GPT 같은 AI가 정보 검색 도구를 넘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상담 상대로 자리 잡았다.

Z세대 73% "사람 대신 AI에게만 고민 털어놨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Z세대 구직자 15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6%가 챗GPT 같은 AI 도구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73%는 실제 사람 대신 AI에게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AI와 나눈 고민 주제는 취업과 진로, 이직이 61%로 가장 많았다. 인간관계(33%)와 감정 상태(32%)가 뒤를 이었다. 고민을 나눌 때 어느 쪽이 더 편한지 묻는 질문에서는 AI(32%)와 실제 사람(33%)의 응답 비율이 거의 같았다. 두 대화 상대 사이 심리적 거리감이 그만큼 좁혀졌다는 뜻이다.
국내 이용 규모도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국내 챗GPT 앱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2031만 명으로, 1년 전보다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 5120만 명 중 약 40%가 챗GPT를 쓰는 셈이다. 연령별로는 20세 미만이 13.6%, 20대가 24.2%를 차지해, 20대 이하 젊은 층 비중이 전체의 3분의 1을 웃돌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20대의 챗GPT 월평균 사용자 수 증가율은 46.5%로, 조사 대상 앱 가운데 가장 높았다.
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채용 플랫폼 리줌닷오알지가 18~28세 정규직 근로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34%가 지인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개인적인 고민을 AI에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16%는 정신건강이나 연애 같은 사적인 주제에 대해 자주 AI와 대화한다고 밝혔고, 60%는 직장 동료보다 비슷하거나 더 자주 AI와 소통한다고 했다. 40%는 매일 한 시간 이상 AI 챗봇과 대화한다고 답했다. AI가 가끔 찾아보는 도구를 넘어 일상 대화 상대가 됐다는 얘기다.
사용 패턴 변화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도 있다. 한 글로벌 사용 로그 분석에 따르면 챗GPT 전체 메시지의 46%가 26세 미만 이용자에게서 나온다. 업무 관련 사용 비중은 지난해 27%로 줄었지만, 개인적인 용도의 비중은 같은 기간 73%까지 늘었다. 젊은 세대에게 AI가 일과 무관한 사적 영역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뜻이다.
익명성과 즉각성이 만든 상담 창구
Z세대가 AI에게 마음을 여는 이유로는 익명성과 즉각적인 반응이 꼽힌다. 한 직장인은 가족이나 연인과 사소한 갈등이 생길 때마다 챗GPT를 찾는다고 했다. 주변 사람에게 개인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AI에게 묻는 편이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연애 고민처럼 은밀한 이야기는 친구에게조차 공유하기 망설여지지만, AI는 판단하거나 소문을 낼 걱정이 없다. 국내 조사에서도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때 AI 심리 상담 서비스를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비율이 40%로 나타났다. 전문 상담사를 통한 상담 의향(56%)에는 못 미치지만 적지 않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감정을 드러내면 손해'라는 인식이 젊은 세대 사이에 자리 잡은 점을 배경으로 꼽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했다가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걱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판단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AI가 안전한 감정 배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감정을 기록하고 분석해주는 애플리케이션 이용자 수도 가파르게 늘었다.
국내 관련 앱 이용자는 2023년 50만 명에서 지난해 상반기 200만 명으로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고양이 캐릭터를 앞세운 '상담냥', 청소년 정서상담 챗봇 '상냥이', 스트레스 관리 챗봇 '라임' 등 국내에서 출시된 심리상담 AI 서비스도 여럿이다. 기분 기록 앱 '무디'를 비롯해 하루콩, 마음정원, 콰블 등도 시장에 나와 있는데, 이 가운데 하루콩은 유료 서비스임에도 지난해 전 세계 이용자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화나 대면 대화보다 텍스트 입력이 편한 세대 특성이, 화면 안에서 감정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AI 서비스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 "편리하지만 한계와 위험 뚜렷"
전문가들은 AI 상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AI는 정신건강을 진단할 자격도 권한도 없다. 비슷해 보이는 증상이라도 그 뒤에 숨은 원인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임상 면담 없이 이뤄지는 AI와의 대화만으로는 이런 차이를 짚어내기 어렵다.
해외 연구에서도 위험성이 잇달아 나온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거대언어모델 기반 챗봇은 망상이나 자살 충동을 가진 이용자에게 최소 20% 이상 부적절하거나 위험한 답변을 내놨다. 사용자 생각에 무조건 공감하고 동조하는 AI 특유의 성향이, 잘못된 믿음이나 망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AI 같은 서비스에서는 자신을 '심리학 박사 학위를 보유한 치료사'로 소개하는 캐릭터가 등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AI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 10대 소년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 챗GPT에 구체적인 자살 방법을 물었던 10대가 관련 정보를 받은 사례가 잇달아 알려지며 사회적 충격을 줬다. 미국심리학회는 AI 챗봇이 치료사처럼 행동하면서도 사용자 사고를 건강하게 검토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할 경우 심각한 위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울증과 불안 완화 효과를 살핀 한 임상시험에서도 AI 상담은 8주 시점까지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지만, 3개월 뒤에는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다. 장기적인 치료 도구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