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색도 많은데…의사들이 하필 '초록색 수술복'을 고집하는 숨은 비밀, 알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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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과 파란색, 빨간 피가 만들어내는 잔상에 효과적

흰 가운을 벗고 청록을 택하기까지
의료진이 처음부터 초록색 수술복을 입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수술실 안팎을 가리지 않고 흰색 옷이 주를 이뤘다. 흰색은 청결과 위생을 상징하는 색이었고 병을 다스리는 이들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색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밝은 조명 아래 하얀 벽과 하얀 가운이 만들어내는 강한 반사광은 오랜 시간 수술에 집중해야 하는 의료진의 눈을 쉽게 지치게 했다.
수술실의 옷 색깔이 흰색에서 초록으로 옮겨간 배경에는 단순히 '눈이 편하다'는 막연한 이유를 넘어 사람의 눈이 색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 그 핵심이 바로 '보색 잔상'이라는 시각 현상이다.
사람의 눈에는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가 있는데, 이 세포는 각각 빨강·초록·파랑에 반응하는 세 종류로 나뉜다. 수술 대부분은 출혈을 동반한다. 강한 조명 아래에서 붉은 피와 장기를 오랫동안 응시하다 보면 빨간색에 반응하는 원추세포가 지친다. 이 상태에서 흰 가운을 입은 동료나 하얀 벽으로 시선을 옮기면, 빨간색의 보색인 초록색 잔상이 눈앞에 어른거리게 된다. 카메라 플래시를 정면으로 본 뒤 한동안 눈앞에 반점이 떠다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문제는 이 잔상이 시야를 어지럽혀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자칫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보색인 초록색 옷을 입어 잔상이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초록색 배경 위에서는 초록색 잔상이 자연스럽게 묻혀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또한 오히려 초록을 곁에 두면 붉은색의 미묘한 차이가 더 또렷하게 구분돼 조직과 혈관의 색조를 정교하게 살펴야 하는 수술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도 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초록색이나 청록색 천에는 피가 묻어도 선명한 빨간색이 아니라 어두운 갈색처럼 보인다. 흰옷에 번진 붉은 핏자국이 주는 강렬함과 혐오감을 크게 줄여주는 것이다. 이는 수술을 지켜보는 의료진은 물론 환자나 보호자가 받는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로도 이어진다.

눈과 마음이 먼저 아는 색
특히 초록빛은 우리 눈이 적은 부담으로 또렷하게 받아들이는 색이다. 초록은 빨강이나 파랑에 비해 명도와 채도가 낮아 눈을 자극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도 여기에 더해진다.
이런 특성은 진화의 흔적이라는 해석도 있다. 초록빛 숲과 나뭇잎 사이에서 붉게 익은 열매를 재빨리 찾아낼 수 있도록 인간의 눈과 뇌가 발달해 왔다는 것이다. 빨강과 초록이 서로를 도드라지게 하는 보색 관계 역시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초록이 주는 안정감은 심리적인 차원에서도 설명된다. 초록은 흔히 생명, 자연, 회복을 떠올리게 하는 색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수술실에서 의료진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이런 색의 심리적 작용이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록과 파랑 계열은 차분함과 신뢰의 이미지를 주는 색으로 꼽힌다.
눈의 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도 초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루 종일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눈을 혹사하는 이들에게 창밖의 나무나 초록빛 자연을 자주 바라보는 것은 눈과 마음을 함께 쉬게 하는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수술실의 초록색이 단순한 유니폼을 넘어 하나의 '시각 처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색은 과학이자 심리다…'퍼스널컬러'의 세계

색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수술실 밖에서도 이어진다.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끈 '퍼스널컬러'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피부톤과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 옷과 화장품, 액세서리 선택에 활용하는 이 개념은 알고 보면 오래된 색채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퍼스널컬러의 출발점은 1920년대 스위스 출신의 색채 이론가이자 바우하우스 교수였던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외모와 조화를 이루는 색을 고른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색이 불러일으키는 심리적·감정적 효과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색을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로 나누는 발상도 그에게서 비롯됐다. 이후 이 이론은 서양에서 하나의 연구 주제로 발전했고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웜톤'과 '쿨톤'의 사계절 분류 체계로 이어졌다.
퍼스널컬러의 기본 축은 색의 온도다. 피부 아래 노란빛이 도는 웜톤에는 봄과 가을이, 푸른빛이 도는 쿨톤에는 여름과 겨울이 속한다. 흥미로운 점은 앞서 살펴본 초록색의 위치다. 초록은 따뜻한 색의 대표인 노란색과 차가운 색의 대표인 파란색이 섞인 색이어서 그 자체로는 웜톤도 쿨톤도 아닌 중간색으로 분류된다. 노란기가 강해지면 연두색으로 기울어 웜톤에 가까워지고, 푸른기가 강해지면 청록색으로 기울어 쿨톤에 가까워진다.
퍼스널컬러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배경에는 '동시대비'라는 색채 현상이 있다. 서로 다른 두 색이 나란히 놓이면 각각의 영향으로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원리다. 얼굴 가까이에 어떤 색의 옷을 두느냐에 따라 안색이 맑아 보이기도, 칙칙해 보이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색이란 과학의 언어인 동시에 사람의 눈과 마음을 은근하게 움직이는 심리의 언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