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점 만점에 9점 매긴 평론가까지... 전문가 평점 예사롭지 않은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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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잃은 엄마와 세 딸, 봉고차 트렁크의 복수 여행
평점 짜기로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도 6점 매기며 호평
막내딸을 잃은 엄마와 세 딸이 복수를 위해 봉고차에 남자 하나를 싣고 경주로 향한다. 웃다가 울고 서늘하다가 뭉클해지는 이 기묘한 가족여행에 국내 평단이 열렬하게 반응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경주기행'의 씨네21 전문가 평점이 공개됐다.

씨네21 평론가 4명이 매긴 별점을 종합하면 평균 7점(10점 만점)이다. 4명 모두 후한 점수를 줬고, 특히 짧은 단평에서 이 작품이 여성·가족·범죄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했다.
가장 높은 점수는 이자연 평론가의 9점이다. 이 평론가는 "이따금 사회가 통째로 앓는 범죄가 있다. 그들에게 성숙한 애도를 전하며"라고 적었다. 정재현 평론가는 7점을 주며 "한국영화, 여성영화, 가족영화의 임계점을 높이다"라고 평했다. 김혜리 평론가는 6점과 함께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를 베어내려는 장미칼"이라는 단평을 남겼다. 평점이 짜기로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 역시 6점을 주며 "우습고 사납고 축축한 '넋풀이'"라고 압축했다.

여성·가족·범죄를 한 작품에 겹쳐 놓았다는 점, 그러면서도 피해자에게 특정한 모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 슬픔을 다루되 통곡이 아니라 넋풀이처럼 풀어냈다는 점이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짚은 지점이다.
'경주기행'은 8년 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남은 네 모녀가 직접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엄마 '옥실'과 세 딸 '장주', '영주', '동주'는 막내의 생일에 맞춰 단체 티셔츠까지 맞춰 입고 경주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얼핏 단란한 여행처럼 보이지만 봉고차 트렁크에는 낯선 남자가 실려 있다. 여행은 알리바이일 뿐 진짜 목적은 8년을 기다려온 복수다.

이 영화가 기존 복수극과 구별되는 지점은 복수의 주체다. 냉혹한 킬러나 치밀한 범죄자가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온 네 여성이 갑작스럽게 복수라는 목표를 짊어지면서 벌어지는 서툰 행동과 예상 밖의 상황들이 독특한 재미를 만든다. 사람을 납치한 상황에서도 끼니를 걱정하고 작은 벌레 하나에 놀라는 일상적 면모가 극의 긴장을 엉뚱한 방향으로 튼다. 피와 폭력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생활감 넘치는 유머를 끼워 넣은 것이 '경주기행'만의 색깔이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김미조 감독은 작품의 핵심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네 여자의 복수에서 찾았다. 김 감독은 "벌레 한 마리 죽여본 적 없는 네 여자가 직접 처벌에 나선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서툴고 삐걱거리는 여정이 오히려 삶의 진짜 모습이며, 복수의 기저에는 서로를 향한 지독한 사랑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비극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무겁기만 한 톤을 피하고 희극적 순간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긴장과 웃음이 번갈아 작동하도록 했다는 것이 김 감독의 연출 의도다.
이 이야기는 김 감독 자신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네 자매 중 막내로 자란 김 감독은 자신이 잘 아는 엄마와 언니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김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막내의 시선에서 엄마와 언니들을 보면 너무 충동적이고 신기하다"며 "제가 잘 아는 가족 구성원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제목의 '경주'는 지명과 인명을, '기행'은 여행의 기록과 기이한 행동을 동시에 의미하는 중의적 제목이다.

배우들의 조합이 장르적 매력을 뒷받침한다. 이정은은 딸을 잃은 엄마 옥실 역을 맡아 깊은 상실과 분노를 표현한다. 공효진은 가족을 최우선에 두는 첫째 장주, 박소담은 냉정하게 상황을 계산하는 둘째 영주, 이연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셋째 동주로 분해 서로 다른 성격의 자매를 그려낸다. 여기에 변요한이 네 모녀가 8년 동안 기다려온 인물 '백상현'으로 등장한다.
옥실 역의 이정은과 장주 역의 공효진은 이번 작품으로 다시 모녀가 됐다. 두 사람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 이후 두 번째로 모녀 호흡을 맞췄다. 이정은은 "한 작품에서 진하게 호흡을 맞추고 나면 다음 작품에서 다시 만나기 쉽지 않다"며 "공효진과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촬영 내내 느껴져 감사했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공효진의 합류에는 사연이 있었다. 공효진은 "처음 장주 역을 제안받았을 때는 촬영 중이던 작품과 일정이 겹쳐 함께하지 못했다"며 "대본이 워낙 재미있어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박소담과 이연의 캐스팅이 확정된 뒤 다시 출연 제안을 받았다"고 캐스팅 과정을 전했다. 이정은과 박소담은 영화 '기생충'(2019) 이후 다시 한 작품에서 만났다.
둘째 영주를 연기한 박소담은 캐릭터에 자신을 겹쳐 봤다. 박소담은 "계획적이고 생각이 많다는 점은 저와 비슷했다"며 "이 계획이 틀어지지 않게 준비하면서도 형부와 조카를 불러들이는 선택을 하는 영주가 이해되지 않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가족을 지키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셋째 동주 역의 이연은 프로레슬러 출신 캐릭터를 위해 몸무게를 10㎏ 늘렸다. 극 중 동주의 링네임 '퍼플 마그마'는 연출부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이연은 "연출부 중에 프로레슬링 팬이 있어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고, 투표 끝에 퍼플 마그마로 결정됐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외동딸인 이연은 "이번에 가족을 얻게 돼서 행복하다"며 "선배들이 막내라고 더 챙겨줘서 훨씬 끈끈해진 느낌"이라고 촬영 소감을 밝혔다.

변요한은 노개런티로 출연하며 힘을 보탰다. 변요한은 "이정은과 네 작품을 함께했는데 뵐 때마다 배우고 영감받아 또 같이하고 싶었고 공효진은 워낙 팬이었다"며 "박소담은 학교 동문이라 얼마나 성장했을지 궁금했고 이연도 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출연 이유를 설명했다.
김 감독은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단편 다섯 편을 연출했고, 첫 장편 '갈매기'(2020)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제68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TVE-어나더룩 부문 특별 언급, 제22회 여성영화인상 각본상을 받았다. '경주기행'은 김 감독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경주기행'은 국내 개봉에 앞서 해외에서 먼저 작품성을 입증했다. 지난해 제45회 하와이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돼 다크 유머와 감정을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어 제24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제30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됐고, 오는 9월 2일 열리는 제6회 바르셀로나한국영화제 초청 소식도 더해졌다.
30억원의 제작비로 만든 작품은 복수극이라는 외형을 취하면서도 그 안에 가족의 상처와 유머, 생활의 질감을 채워 넣어 기존 장르물과 다른 결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주의 관광 명소를 배경으로 한 밝은 장면과 서늘한 추격전이 한 작품 안에서 교차하는 점, 네 모녀의 삐걱거리는 호흡이 만들어내는 재미도 개봉 전 시사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개봉 전 흥행 지표도 청신호를 켰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경주기행'은 21일 기준 한국영화 예매율 1위를 기록 중이다. 다만 경쟁작인 ‘오디세이’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기세가 워낙 센 만큼 전체 박스오피스 성적이 어떨ㄹ지는 개봉 이후를 지켜봐야 한다.